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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방인 - 단편소설 -

writerjang 2023. 1. 10. 22:02

대만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뉴욕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고 있다. 함께 탑승한 사람들이 품은 한의 무게를 모두 합하면 천근만근도 넘으련만 비행기는 이를 무시하듯 잘도 날아간다.

 

나를 비롯해 함께 미국행에 오른 사람은 모두 여섯 . 안내원을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정상적으로는 미국 땅을 밟을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서울 종로통을 수도 없이 헤맨 사람들이다. 겨우겨우 이주공사를 잡고 대만을 경유해 미국땅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대만에서 가짜 비자를 만들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잘나가던 사업체가 하루 아침에 부도를 맞아 무작정 도피하는 사십대 후반의 중소기업 사장 아무개. 가족들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갔는데 자신만 서류가 누락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린 아무개. 아마도 당국의 잘못은 아닌듯하다. 그렇다면 저렇게 아무런 원망이나 불평도 없이 얌전할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영주권을 받으면 부르겠다며 먼저 떠난 남편이 이년째 소식이 끊기자 답답함을 못견뎌 찾아나선 아무개. 그는 우리 유일한 여자였다.

 

밖에도 달러를 벌어볼 양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십대의 아무개. 말은 그럴듯하게 달러벌이에 애국심의 발로라고 떠벌이지만 사실 그는 직장에 입사한지 며칠 만에 해고된 시대의 불운아였다.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감원바람의 희생양인 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이주공사 소속 인솔자 .

 

이들은 모두 미국행을 선택한 나름대로의 속사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정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 대만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도, 대만에 도착해서 싸구려 호텔에 하룻밤을 묵을 때도 서로에게 낯선 탓인지, 자기 얘기를 남들이 알게되면 일이라도 것처럼 서로를 경계하기에 바빴다. 이리저리 눈치만 볼뿐 누구 하나 먼저 이렇다하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대만 체류 이튿날 저녁식사와 함께 곁들인 반주 잔이 먼저 사십대 사업가의 말문을 열었고, 술이 서너순배 돌자 모두들 자기 얘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술은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인솔자의 배려로 주문된 것이다.

 

"제길헐! 놈의 아이에무에프만 아녔어도……"

 

한참 나갈 때는 점잖았을 사장님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게도 걸쭉한 욕설조의 한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빛은 여전히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같이 떠난 사람들이야 어차피 모두들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테니까 알아도 무방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주변에 자신을 좇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냐, 놈이 배신만 안했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어. 육시랄 !"

외환위기 통에 동업자에게까지도 버림받은 뻔한 스토리가 그의 짧은 한탄에서 훤히 읽혀졌다.

 

"형씨들은 무슨 일땜에 이렇게 길을 가쇼?"

자기 얘기를 기울여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가 다그치듯 물어왔다. 아주 도발적으로. 다들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서로 눈치만 살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모두들 자기 사정이 억울하고, 비참했던지 참을 없다는 하나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말에서 말이 이어지고 말꼬리가 한탄조로 바뀌면서, 그렇게 이틀째 밤은 시간가는줄 모르고 넋두리로 꼬박 채워졌다. 누구의 얘기든 꺼내놓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 했다. 그야말로 동병상련의 정이 무르익는 밤이었다.

 

출소하던 청주교도소 입구에서 나를 맞아준 사람은 아내가 아니었다. 학교 선배이자 작업장 상사였던 연희선배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은 버리지 않았었다. 결국 한낱 미련에 불과하다는걸 깨닫게 되었지만.

 

아직 한여름의 열기가 식지도 않은 계절이었는데 나의 체감온도는 감방 보다도 오한으로 밀려왔다. 그런 상황이 오리라 짐작했었지만 내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8·15 특사. 10년형을 언도받고 꼬박 7년을 채운 뒤에야 찾아온 행운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예뻐서 내보내준 아니라는 사실은 너무도 알고 있었다. 단지 세상이 바뀌고 누가 되었든 선착순으로 내보내야만 했던 사회분위기 때문이었겠지.

 

"근우야, 현정이는 찾지 않는게 좋겠어."

연희 선배의 첫마디였다. 선배는 얼굴에 깃든 수심을 뻔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찾지 않는게 좋겠다? 도대체 자기 아내를 찾지 말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연희 선배는 이상 자세한 얘기는 들려주지 않았다. 자세히 모르고 있다기 보다는 자세한 것을 알려주기 어려운 눈치였다. 그런 그녀에게 닥달을 해도 소용없을 같았다. 아니, 그녀의 입에서 나올 얘기가 오히려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연희 선배에게서 전해들은 얘기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 동부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부였다. 얼마전 뉴욕 어딘가에 햄버거 가게를 차렸는데 정확한 주소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나는 차디찬 감옥에서 옮아온 독기를 추스릴 새도 없이 다음 곧바로 구청으로 향했다. 호적엔 여전히 아내가 나의 배우자로 기록돼 있었다. 아이의 이름도 있었다. 아이의 이름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면회 아내의 입을 통해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이 이름은 슬기예요, 현슬기. 당신한테 물어볼 틈도 없어 그냥 어머니랑 상의해서 그렇게 지었어요. 맘에 안들어요?"

"아니, 괜찮아. 예쁘네……"

 

옥살이를 시작하자마자 얻은 딸아이. 홀몸이 아닌 어린 아내에게 나의 투옥은 크나큰 충격이었을 게다. 아내 역시 같은 활동을 하던 사람으로 이런 상황을 마음으로나마 대비하고 있었겠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내는 뱃속에 아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아내는 3 동안 꾸준하게 옥바라지를 하면서도 좀처럼 아이는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야 어쩔 없는 시대에 태어나 이렇게 살고있지만 자식들에게 만큼은 우리의 고통을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덕분에 나는 백일날 아이를 있었을 뿐이다. 때도 나는 아이의 이름이 언뜻 떠오르지 않아 이름 제대로 불러볼 틈도 없이 면회시간을 넘기고야 말았다.

 

호적엔 어머니 이름이 빠져있었다. 그랬다. 호적에서 달라진 바로 그거였다.

 

어머니는 내가 투옥되고서 얻은 병이 깊어져 년만에 돌아가셨다. 그래도 자식이라곤 달랑 하나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죽는 날까지 걱정만 하셨다고 들었다. 저녁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내겐 특별한 배려로 장례식에 참관할 자격이 주어졌다. 할애된 시간은 시간 뿐이었지만 3 동안 꼬박 갇혀있던 몸이 세상을 구경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세상구경을 하게 되었다는 환희가 뒤범벅 되어 어느 감정이 우선인지 혼돈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당시 상황이 그랬다. 저들의 배려에 선뜻 동의할 없는 상황이었다. 중대한 사안을 걸고 단식투쟁을 벌이던 기간이었다. 그러한 결정이 나를 믿고 따르는 동지들에 대한 의리이며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겼었다. 가슴 찢어지는 고통으로 날밤 괴로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7년이 흘러갔고 지금은 많은 변해있었다. 밤마다 차가운 등짝을 타고 엄습해오던 가위눌림이 지금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어느새 아메리카 대륙 서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들 작디작은 창으로 고개를 바싹 대고 내려다보기 바빴다. 그저 지도 위를 날아가듯 보이는건 까만 땅덩어리 뿐이었는데도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이국땅이 신기했던지 좁은 창에서 눈을 뗄줄 몰랐다.

 

나는 선잠이 잠깐 새에 가위눌려 머리가 멍해지고 목이 뻣뻣해져 고개를 돌릴 수도 일어설 수도 없었다. 바깥 세상에 나와서도 그놈의 가위눌림은 여전했다. 그냥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창가쪽에 앉은 사내들의 촌스런 행동이 얼핏얼핏 곁눈질에 들어왔다.

 

우리 유일한 여자인 아무개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통로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사내들과 그녀 사이에 안내원이 경계선을 긋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 유일한 여자에 대한 안내원의 배려였으리라.

 

그런데 안내원이 화장실에 갔는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의외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조금 까지만 해도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던 그녀였다. 다들 사내들이고 자기만 유일하게 여자였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남편을 찾으러 나선데 대한 남들의 비웃음을 사는게 싫었을 터였다. 사실 다들 자기 사정 챙기기에도 바쁜 사람들이라 그녀를 비웃는다거나 그녀의 일에 일말의 관심을 갖는 조차도 어려웠을 것이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때까지도 고개를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잠들었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고 멋쩍게 웃자 그녀도 안심이 되었던지 놀란 표정이 금세 가셨다. 그런데 그녀가 느닷없이 내게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던져 적잖이 당황스럽게 했다.

 

"선생님은 부인을 만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자의 질문은 내가 결코 아내를 만날 없을거라는 얘기로 들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만나봐야 소용이 없을거라는 얘기로 들렸다.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이었겠지만 그녀의 목소리엔 확신에 무언가가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했다. 사실은 나도 아내를 만나리란 기대는 털끝 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령 만난다해도 나를 얼마나 반겨줄지, 아니 아는 척이라도 해줄지 의문이었다. 이미 내심 아내를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그마치 십년이었다. 십년을 감옥에서 썩어야할 남편만 바라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여자가 과연 세상 어디에 있을까? 더군다나 아내는 올해 서른 셋의 한창 나이였다. 아내를 탓할 자격이 이미 내겐 없었다. 원망도 내겐 너무 뻔뻔스런, 어찌보면 사치스런 감상일 뿐이었다. 나도 너무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의 질문은 끝내 나를 자극하고야 말았다. 나의 속내에선 그녀의 질문에 대한 강한 반발이 일었다. 절대 아내는 나를 저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 그녀의 뼈있는 질문에 대해 송두리째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게 말이 되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듯 말을 보탰다.

"저는 사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아요. 그냥 남편 얼굴 봐야겠다는 뿐이예요. 만나보고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야 포기하든 말든 속이 시원해질거 같아서요. 결국 그건 남편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기 보다는 자신을 추스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맞다. 그녀의 말이 맞다. 아내를 포기한건 이미 오래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아내는 삼년을 꼬박 옥바라지로 보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일년을 그렇게 보냈다. 아내는 어느 날부턴가 발길이 뜸해졌고 급기야는 소식이 끊겼다. 그렇게 삼년이 흘렀다.

 

그때까지도 아내의 환경이 달라진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막연하게나마 무슨 일이 있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이틀이 지나갔고 아내는 결국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떠나버린 아내를 찾아나선 어쩌면 내가 아내 없이 살아갈 있을까, 하는 막연한 숙제를 풀어내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무작정 가서 찾아보자. 만나서 물어나보자. 어떻게 일인지. 그리고 사정을 해서라도, 아니 떼를 써서라도 아이 만큼은 데려오자는 생각에서 어려운 길을 나선 건지도 모른다.

 

"부인을 많이 사랑하셨나봐요?"

 

사랑? 그렇지. 사랑은 사랑이었지.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우리의 결합은 사랑이라고 믿어왔었다. 최소한 나는.

 

사실 아내는 결혼하기 직전까지도 마음엔 다른 남자를 품고있었다. 아내가 입학해서 신입생이었을 때부터 줄곧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와 나는 동기생이었다. 그는 당시 학생운동의 선봉에 인물이었다. 그의 몸에는 카리스마가 배어있었다. 남자인 내가 봐도 더없이 멋있었다. 당국의 숱한 추적을 피해가며 단련된 능숙함으로 언제나 우리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는 우리에겐 신화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활동가라면 나는 이론가였고, 그가 선봉장이었다면 나는 언제나 뒤에서 그런 그를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사람이었다. 그는 학생운동의 지도자답게 얼굴도 생겼다. 반면 나는 두꺼운 뿔테 안경에 공부만 파게 생긴 학구파 스타일이었다.

 

그는 학교 여학생들에겐 단연 인기를 모았고 아내도 그를 추종하는 집단에 속해있었다. 아내의 열성이 그에게 통했는지 언제부턴가 사람은 부쩍 가까워졌고 나는 그들 사이를 더욱 공고히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됐다. 좋든 싫든 나는 그런 역할을 해야할 입장에 처해 있었다. 아내는 나의 직속 후배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들은 이미 뗄래야 없는 그런 관계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그가 우리 앞에서 사라졌고 그의 행방은 여학생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경찰에 붙들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 어딘가에 잠적해 뭔가 새로운 일을 꾸민다는 , 난국을 피해 해외로 망명했을 거라는 별의별 추측이 난무했다.

 

묘연히 사라지고 그는 더욱 인기를 끌었다. 일종의 신드롬처럼 그의 행방에 대한 구설수는 대학으로 번져나갔다. 그의 명성은 과히 우상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해나가고 있었다.

 

아내도 그를 추종하는 데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다. 아내는 내게 집요하게 물어왔었다.

"근우 선배! 선배는 알고 있잖아요!"

"나도 모르는 일이야……"

"선배가 모르면 어떡해요?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선배가 알거 아녜요!"

"현정아……"

"제겐 알려줘도 되잖아요. 아니 제가 알아야 하는건 당연한 아닌가요?"

 

결국 나는 조직의 안위를 이유로 함구해오던 극비사항을 아내에게 말하고야 말았다. 그를 향한 아내의 사랑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니, 보다 어쩌면 아내에 대한 나의 감정을 숨기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비굴하게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그의 거처를 알려주도록 종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수배를 피해 해외로 떠났다. 뉴욕으로.

 

나는 부인을 많이 사랑했었냐는 여자의 물음에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답 대신 입술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도 상황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하는 그녀에게 이상 말을 찾을 없었다.

 

대륙을 횡단하는 데만도 비행기로 시간이 넘게 걸린다더니 지금 그걸 현실에서 겪고 있다.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대만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건널 때까지 걸린 시간보다 지금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결과가 어찌 되든 빨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만약 아내가 남의 사람이 되어 있더라도 그녀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다. 그녀를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아니, 오히려 그런 아내의 행복을 빌어주는게 나의 도리가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순순히 받아들일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말로만 듣던 미국땅은 드넓은 평원으로 펼쳐져 있었다. 가도가도 끝없는, 포기 없는 사막을 지나갔다. 복받은 나라. 과정이야 어찌됐든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세계의 패권을 손에 쥐고 있는 나라. 우리는 나라를 욕하면서도 내심 부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뉴욕의 거리엔 하얗게 눈이 쌓여있었다. 겨울은 유난히 춥다는 기상예보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하지 못하는 영어지만 그나마 듣는건 조금 되는 편이었다.

 

뉴욕은 듣던대로 알던대로 세계적인 도시다. 공항에서부터 엄청난 규모에 눌려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인종의 전시장이라더니 피부빛, 머리 색깔, 그리고 언어는 물론 그들 몸에서 풍기는 체취까지도 가양각색이었다.

 

막막했다. 충분히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자신이 없었다. 연희선배에게서 얻은 정보는 뉴욕 어딘가에 아내와 아이가 살고 있을거라는 . 최근에 햄버거가게를 열어 이젠 조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얘기. 그런데 뉴욕엔 햄버거가게가 수천수백 개가 넘었다. 이걸 뒤지기엔 역부족이었다. 내겐 그만큼 버틸 돈도 없었다. 연희선배와 친구들이 모아준 백이 고작이었다.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흥신소에 아내와 아이의 인적사항을 알려주고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찾아줄 것을 다짐받았다. 선불로 백불을 넙쭉 받아들고 야릇한 웃음을 보이는 흥신소 탐정의 얼굴에선 신뢰감이라곤 눈꼽 만큼도 찾아볼 없었다. 그러나 아쉬운 사람은 나였으니 그나마도 기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같은 한국사람이라 바가지를 씌울 염려가 없으리란 어설픈 믿음도 선뜻 그들을 선택한 이유였다.

 

뉴욕 맨하탄 뒷골목의 허름한 모텔을 숙소로 정하고 가져온 짐꾸러미를 펼쳤다. 짐이라곤 달랑 배낭 하나가 고작이었다. 출소하자마자 떠난 여행에 짐이 많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연희선배가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챙겨준 어머니의 영정에 쓰인 사진과 살아생전에 간간히 채워넣던 일기장이 고작이었다. 어디 놓아둘 데도 없고 다시 연희선배에게 되맡기기엔 염치가 없어 그냥 배낭에 넣어 다니기로 했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눈가에 물기가 절로 어른거렸다. 어머니를 향한 회한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초라함이 눈물샘을 자극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초저녁인데도 뉴욕의 밤거리는 한산했다. 을씨년스럽게도 눈발이 간헐적으로 날렸다. 텅빈 거리에 도시버스만 빵빵거리며 밤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서울시내 거리와도 흡사한 뉴욕 중심가 맨하탄.

 

나는 바바리 코트에 손을 깊숙히 찔러넣은 고개를 잔뜩 움츠리고 천천히 거리를 걷고 있었다. 두꺼운 풀테 안경을 쓰고 바람에 날려 헝클어진 머리칼을 휘날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누군가 봤다면 아마도 고뇌하는 시인이나 철학자 쯤으로 착각했을 게다.

 

한참을 걷다보니 현란한 네온사인 사이로 자그마하게 총포상이라고 쓰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글간판이었다. 간판을 중심으로 언뜻언뜻 한글간판이 늘어서 있는 같긴 한데 정확하게 어떤 글자가 쓰여져 있는지는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한글이었다는 밖에는. 다른 유흥업소 간판은 총포상 보다 훨씬 현란하고 훨씬 큼지막했는데도 눈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흐릿흐릿 한글이라는 밖에는 인식할 없었다. 아마도 초조한 심리상태가 간판 글을 판독할 능력을 앗아가버린 했다.

 

총포상 앞을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걸음 걸어나가다 다시 발길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총포상이 다시 서서히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러는 사이 마음 갈등은 아마도 십수년 겪어야할 번뇌를 한꺼번에 겪는 기분이었다. 갈등의 무게가 점점 힘겹게만 느껴졌다.

 

총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나는 살인자의 화신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게 가늠할 없는 지경에 이르리라.

 

해거름. 아직 줄기 흐릿한 햇살이 도로 위에 깔려 있는데도 몸은 오싹오싹 한기를 느꼈다. 하늘은 이미 양껏 굵어진 눈덩이를 인도에 두텁게 쌓일 정도로 펑펑 쏟아붓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 날씨는 오히려 포근한 법인데 지금 내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체감온도가 이토록 곤두박질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총포상 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순간,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던 갈등이 산산히 조각나 파편으로 날아갔다.

 

주저하지 않았다. 총포상의 두꺼운 철문을 벌컥 열어제끼고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내가 너무도 거칠게 점포로 들어선 탓인지 방탄유리 안쪽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주인 영감이 소스라치게 놀라 깨었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그의 코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두꺼운 돋보기가 주인의 갑작스런 행동에 견딜 없었는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려는 찰라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돋보기는 영감의 가슴팍께에서 널뛰듯 간당간당 매달렸다. 아마도 이게 처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돋보기 다리에는 튼실한 쇠줄이 붙들어 매여져 그의 목에 엉거주춤 걸여있었다. 번쯤은 돋보기를 해먹은 경험이 있었겠지.

순간, 우습게도 번지점프가 떠올랐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번지점프 장면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점프를 마치고 뒤에 손을 흔들며 마치 지독한 고난을 이겨내고 뭔가 일을 해낸 승리자인 우쭐대던 참가자들의 득의양양한 모습에 속이 메스꺼웠던 기억이 있다.

 

이런 절박한 순간에도 그런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는걸 보면 아직 제정신이 붙어있긴 한가 보다.

 

나는 총포상 벽에 촘촘히 걸려있는 갖가지 종류의 무기들을 둘러봤다. 영감에겐 일언반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그런 나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던지 그는 의레 갖춰야할 손님에 대한 예식을 까먹고 말았는가 보다. 인사가 없었다.

 

영감이 다짜고짜 내게 물어왔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란걸 대번에 알아본 했다.

" 찾으시우?"

"……"

언뜻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답 대신에 나는 고개를 돌려 영감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그리곤 이내 다시 벽에 걸린 총기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뭔가 특별히 찾는 물건이 있는 것처럼.

 

벽에 걸린 제일 값싸 보이는 권총을 쳐다보면서 영감에게 물었다.

" 자루에 얼맙니까?"

 

영감이 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와 눈높이가 엇비슷했다. 그의 눈가에 야릇한 미소가 스쳤다.

" 쓰고 찾으시우?"

 

나는 영감의 말에 마치 발가벗은 채로 목욕탕에서 뛰어나오다 누군가에게 틀킨 사람처럼 수치심 내지는 모멸감 같은 것에 휩싸였다. 오랜 세월 총포상을 운영하면서 접한 수많은 고객의 옷차림과 표정을 통해 그들의 심리를 읽는 법을 영감은 충분히 터득한 했다. 영감은 내가 원하는게 뭔지, 무엇을 하려하는지 쪽집게 같이 알아맞추고 있었다.

 

영감은 대답이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자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손은 책상 서랍에 열쇠를 꽂고 있었다. 고이 간직해두는 물건인듯.

 

그러나 그가 내어놓은 권총은 여러 사용했는지 꽤나 낡은 것이었다. 작동이 지도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귀한 물건이기 때문에 자물쇠까지 채워놨으리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는 낡은 물건. 그렇다면 수배된 무기?

 

이번에도 그는 생각을 맞추고야 말았다.

"발사되기 어려울 같우? 천만의 말씀. 이거 이래봬도 여러 해낸 놈야!"

영감은 듣기에도 섬칫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냈다. 아무렴 여기 있는 총들이 정의를 위해 쓰였을라고. 그가 말하는 일이란 결국…….

 

하긴 지금 내겐 그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번을 사용하더라도 제대로 발사만 된다면 바랄 나위 없었다.

 

영감은 물건값을 말하면서 값에 이보다 성능 좋은 놈은 어딜 가도 없을거라고 확신에 어조로 덧붙였다.

 

선뜻 내키지 않았다. 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과연 내가 이래도 되는건지 다시 심적 갈등에 휩싸였다. 영감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봐, 젊은이!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런 일은 함부로 맘먹을 아냐. 돌아가라구!"

 

내심 오기가 발동했다. 그렇지만 오기만 가지고 결행을 하기엔 부족했다. 이내 총포상과 주인 영감, 그리고 낡은 권총 자루를 뒤로한 발길을 돌리고야 말았다.

 

눈발은 여전히 함박눈이었다. 하늘은 무엇을, 누구를 축복해주기 위해 인간세상에 저토록 아름다운 꽃송이를 아낌없이 뿌려주는가.

 

호텔 프론트에 알아보니 남겨진 메시지가 없었다. 전화 걸려오지 않았다. 시간만에 찾아낼 수는 없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여유롭지가 않았다. 일분일초가 초조함으로 휩싸여 있었다.

 

배낭에서 다시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꺼내들었다. 낡은 일기장도 꺼냈다. 그러나 멀쩡한 정신으로는 결코 어머니의 일기를 읽어낼 없을 같았다. 삶의 막바지에 다다른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진에 고개를 파묻고 그대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제였던가. 학생운동에 가담해 가엾은 홀어머니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시절. 어머니는 당신의 나이 보다 십년은 늙어 보였다. 덧없는 세월의 징검다리를 가까스로 건너온 흔적이었다.

 

아까 분명히 총포상을 나와 호텔로 돌아온 같은데, 어느새 나는 주인 영감이 책상서랍에 보물처럼 소중하게 보관하던 낡은 권총을 버젓이 바바리 코트 주머니에 찔러넣고 총포상 철문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내가 아니라 죽음의 화신이었다.

 

이젠 마음도 진정돼 갈등이나 긴장 같은건 찾아볼 없을 정도로 무덤덤해졌다. 아니, 진정됐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감정 덩어리란건 내게 없었던 같았다. 마치 거사를 앞둔 저격수의 마음 상태가 이러하지 않을까?

 

낯선 뉴욕의 밤거리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이야기로만 들었던 뉴욕의 할램가가 떠올랐다. 경찰도 봉변이 두려워 감히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살벌한 . 흑인들의 무분별한 총알세례가 선량한 시민을 위협한다는 사고사례를 보도하는 텔레비전 뉴스. 그런 할램가라도 들어가라면 있을 같았다. 지금의 마음가짐이라면.

 

지금 악명높은 할램가는 아니지만 뉴욕 한복판 맨하탄을, 그것도 대부분의 가게가 철시하고 직장인들이 모두 퇴근해 인적이 드문 썰렁한 도심을 홀로 걷고 있었다.

 

뉴욕은, 미국의 밤거리는 외국인에겐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도시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마도 바바리 깊숙히 숨겨놓은 살인무기 덕분이리라. 살인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하여금 믿음직한 수호신을 거느리고 있다는 환상에 깃들게 했음이라.

 

아니 보다도 언제든, 누구든 있다는 마음가짐이 나약한 두려움 따위를 날려버렸을 게다.

 

추위도 가셨다. 꽃송이로 날리던 눈도 이젠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뉴욕거리의 이국적인 색채도 이제 내겐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드문드문 곁을 스쳐가는 각양각색의 인종들도 신비할게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뚜렷하게 기억하던 아내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기억을 쥐어짜내도 머릿속에 아내의 얼굴이 새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곱게만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터덜터덜 걷는 사이 햄버거가게 앞에 다다랐다. 건물벽에 검정 페인트로 두껍게 쓰여진 주소는 365였다. 맨하탄가 365번지.

 

 

쇼윈도를 통해 들여다보이는 가게는 규모는 작았지만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다. 아내의 성격이 바로 그랬다. 자신에게 맏겨진 일은 언제나 깔끔하게 처리해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야 잠도 제대로 있노라고.

 

저쪽 한켠에서 빗자루질을 하느라 허리를 굽힌 여인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 낯설지 않았다. 유난히 그녀의 뒷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내게 등을 보였었다. 나는 누군가를 좇던 그녀의 꼭뒤를 바라보며 동안을 살아왔었다.

 

반듯한 직선과 곡선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어깨선과 잘룩한 허리, 달라붙은 청바지 바깥으로 터져나올듯 말듯 탐스런 엉덩이, 그리고 허리와 엉덩이 사이를 이어주는 자연스러운 굴곡.

 

그런데 쇼윈도 너머 여인의 뒷모습은 4 전의 아내와 같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내의 몸매 보다는 조금 풍만해 보였고 굴곡이 뚜렷할 아니라 여기저기 군살이 붙어 전체적으로 아래로 쳐진 보였다. 세월탓이리라.

 

몸도 몸이지만 아내와 확연하게 다른 까무잡잡한 피부 빛깔이었다. 그녀의 피부는 적당하게 그을려 건강미를 더해 주고 있었다. 본래 눈이 부실만큼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아내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편이었다.

 

쇼윈도를 통해 가게를 둘러봤다. 누군가 틀림없이 함께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며 있기를 십수 . 진열장 뒤편에서 사내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여인을 바라보며 뭔가 말을 했다. 사내가 일어서자 가게가 좁아보였다. 훤칠한 때문이리라. 그의 말쑥한 얼굴이 내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카메라의 초점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처럼.

 

순간 호흡이 , 하고 멈추는 느꼈다. 심장의 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정신을 수습할 길이 없었다. 손끝 마디에서부터 서서히 잔떨림이 일어났다.

 

그러나 묘하게도 금세 심장박동도 호흡도 잔떨림까지도 모두 진정되었다. 지극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평소 보다 오히려 담담해진 기분이었다. 긴장된 순간엔 습관처럼 해오던 깊은 심호흡을 지금 순간엔 까먹고 있었다. 다짜고짜 가게문 쪽으로 다가갔다. 성큼 가게문을 열고 들어선 나의 갑작스런 등장에 남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 그렇겠지. 놀라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을거다.

 

나는 그들을 확인이라도 하듯 한참을 쏘아보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내의 곱던 얼굴이 많이 늙어 보였다. 놈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도 않았다.

 

"아아니, 너는?"

희뿌연 놈의 얼굴에서 놀라움 섞인 일갈이 터져나왔다.

"그래, 자알 있었냐? 흐흐……"

내가 뱉은 웃음이 머리를 휘돌아 귀청을 공명시켰다. 내가 들어도 음침하기 짝이 없었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나는 이어 바바리 코트 깊숙한 곳에서 권총을 뽑아들고 그를 향해 겨누었다.

 

"여보!"

뭐라고. 여보? 내가 당신의 남편이었나? 그랬군. 내가 남편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솔직해보라구.

 

입가에서 많은 말들이 맴돌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 몰랐다. 저주 섞인 원망이라도 터져나올 한데 역시 아내에겐 그럴 없나보다. 다만 지금은 행동을 해야할 때라는 밖에는 떠오르는게 없었다.

 

순간 낡은 권총이 불을 뿜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의 움직임이 없었는데도 이미 총알은 총구를 떠나 그의 가슴을 관통해버렸다. 정말 아득했다. 아찔했다.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내가 이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통쾌했다. 나를 배신한 여자에 대한 응징이었고 가슴 깊이 맺힌 오랜 응어리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쾌감이 바로 이런거였다. 속이 후련해졌다. 인간 현근우 답지 않은 잔인한 면모였다. 스스로도 이런 내가 놀라웠다. 사형수에게도 최후의 진술은 주어지는 법인데…….

 

총소리와 동시에 그의 비명이 울렸고, 그보다 소리로 아내의 절규가 이어졌다. 혼란스러웠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내는 절규를 하며 손으로 귀를 감쌌다. 와중에도 나는 그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희고 가늘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변하지 않은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의 아름다운 손가락이었으리라.

 

이번엔 아내에게 총구를 겨눴다. 지금은 방아쇠가 제대로 말을 들었다. 나의 뇌리에선 아직 아무런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구석으로 내실 쪽에서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어깨를 들썩이는 낮은 움직임이…….

 

, 거기 아이가 있었다. 나의 아이가. 꿈에서도 그리던 나의 딸이.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아빠……!"

나는 귀를 의심했다. 분명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빠였다. 아이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가 부른건 나란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어. 아이는 나를 알아볼 리가 없다. 백일 잠깐, 그것도 면회실에서 밖에는 없었다.

 

아이는 나의 의문에 확인이라도 해주듯 이번엔 소리로 불렀다. 분명하게 아빠라고 했다.

그래 맞다. 내가 너의 아빠란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없는 진실이란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걸까? 답답함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이상 이런 상황에 나를 맡겨둘 자신이 없었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리곤 어떻게 가게를 빠져나왔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정신이 몽롱했다. 아직 사위는 고요한 한밤중이었다.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흠뻑 배어있었다. 아찔했다. 현실과 꿈이 뒤엉켜 어느 것이 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악몽을 한꺼번에 떨쳐내려는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댔다. 도저히 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생했다.

 

커튼을 제끼고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 눈발이 성성했다. 초저녁부터 차곡차곡 쌓인 눈이 이젠 건물 밑둥까지 차올랐다. 눈오는 밤거리가 아름다워야 마땅했지만 뉴욕 뒷골목의 풍경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도로 위에 너저분하게 뒹굴던 쓰레기 조각들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더럽다는 이미지는 면했다. 그래도 달빛 만큼은 서울의 남산에 걸려있던 모양 그대로 둥글둥글 복스러웠다. 뉴욕의 밤풍경이 서울과 비슷한 구석은 단지 그것 뿐이었다.

 

어슴프레 달빛이 물러가는가 싶더니 새벽녘 덜깬 햇살이 넌즈시 방안을 엿보았다.

 

뜬눈으로 날을 지샜다.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가져온 것도 별로 없고 풀어놓은 것도 별로 없어 분만에 짐을 꾸릴 있었다. 야반도주 하는 빚쟁이가 따로 없었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공항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비행기에 오르려면 아직 시간도 남았다. 내겐 부칠 짐꾸러미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뉴욕을 뜨려는 맘에 일찍 공항으로 나와보니 막상 일이 없었다.

 

나는 공항 대합실 구석 의자에 앉았다.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이놈들은 나를 쉽사리 놓아줄 기세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마냥 즐겁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순순히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번민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털면서 눈을 번쩍 떴다.

 

누군가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개운치가 않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이쪽 구석엔 혼자였던거 같은데 얼핏 곁눈질로 사람의 형상이 밟혔다. 그것도 한참 전부터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래서 뭔가 자신만의 비밀을 몽땅 들켜버린 참담한 기분을 바로 지금 내가 겪고 있다.

 

한국에서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 유일한 여자인 아무개였다. 그녀 역시 예정에 없이 일찍 귀국하는 모양이었다. 하루만에.

 

"역시 자신이 없었어요.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질 같았어요."

말은 눅눅하게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많이 밝았다. 모든걸 체념한 사람의 표정이 이런 것일까? 그래도 당장에 이런 표정을 짓기란 쉽지 않을텐데. 믿어지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그런 그녀가 부러웠다.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건너편 공중전화 부스쪽으로 걸어갔다. 나의 느닷없는 행동에도 그녀는 놀라거나 꿈쩍하는 기색이 없었다. 단지 움직임을 따라 시선만 옮겨올뿐.

 

수화기를 통해 발신음이 길게 울렸다. 부스 위편에 걸린 벽시계를 슬쩍 올려다봤다.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정도면 누구든 나와있겠지? 번째 발신음이 역시 길게 울렸다. 발신음이 끝나기 전에 깊은 심호흡을 짧게 끊어서 했다.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없었다. 후회 역시 내가 품을 만한 감정이 아니었다.

 

번째 발신음이 울렸다. 역시 길게. 이번엔 발신음이 끝나려는 순간 동전 떨어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저쪽에서 헬로우, 하며 영어로 인사를 했다. 예상대로 사람이 나와있었다. 부지런한 뉴욕이었다.

 

"……."

", 말씀하세요."

한국 사람이었다. 어제 비서 아가씨일 게다.

"어제 사람 찾아달라구 의뢰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가씨가 나를 알아봤다.

", 선생님? 그러잖아도 전에 호텔로 연락했는데 체크아웃 하셨더군요."

"……."

"어젯밤에 찾았어요. 선생님이 의뢰하신 햄버거숍. 맨하탄가 365번지. 시쯤 오시겠어요? 사무장님이……."

 

뒤엣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수화기를 귀에 대고만 있었다. 뇌리에 계속 삼백육십오란 숫자만 맴돌았다. 수화기를 제대로 내려놨는지 어떻게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공항 출국장으로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졌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했다. 그리고는 앞에 펼쳐진 세상이 시나브로 흐려지면서 온통 새하얗게 얼룩져버렸다. -by KJ (20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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