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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5회> - 손중선의 조카 주희를 찾아 고아원으로

writerjang 2023. 1. 30. 23:36

  민원실 현관을 나서면서 조형사는 리스트를 들여다봤다. 너무 막연했다. 이 시간에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조사한단 말인가? 우선 급한대로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손중선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다녔을까? 고아원을 찾은 이유가 그냥 단순하게 봉사활동 수준일까?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일단 부딪치는 수밖에 없었다. 차에 들어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우선 가학동에 소재한 고아원부터 전화를 걸었다. 가학동엔 고아원이 한 군데 있었다.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참사랑보육원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조형사는 망설였다.

 

  ", 말씀하세요."

  "실례합니다만 사람을 좀 찾으려고 하는데, 원장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제가 원장입니다만......"

  ", 그렇습니까? 다름아니라, 저는 최근에 소식이 끊긴 친구를 좀 찾으려고 알아봤더니, 그 친구가 이 지역 고아원을 자주 찾는다기에 한 번 알아보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아 네......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되나요?"

  고아원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원장이라는 여자는 전화상으론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그곳을 방문하는 봉사자 중에 손중선이란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봉사활동자 분들의 이름을 저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네에. 그런데 이 사람은 혼자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는 거로 알고 있거든요.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잘 좀 생각해봐 주시겠어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런 이름을 가진 분이 봉사활동자 중에는 없는 것 같아요."

  "저 그럼...... 이 사람 인상착의는 중키에 좀 날씬한 편이고 안경을 꼈는데, 안경이 금테에 조금 작은 둥그런 안경을 쓰거든요."

  "글쎄요, 그런 인상착의를 가진 분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그럼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형사는 전화로 알아보는 것도 꽤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비로소 확인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몇 마디를 한꺼번에 쏟아놓고는 통화를 끝냈다.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말해도 상대편이 확실히 알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나머지 고아원도 일단 전화로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 고아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광명동에 소재한 두 개의 고아원에 똑같이 물었다. 그러나 역시 두 군데 다 그런 사람은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이래가지곤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전화로 안되면 직접 전부 찾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다시 다른 고아원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알아본 결과는 그나마 봉사활동자 중에 손중선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하나,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 셋이 있었다. 여러 명도 아니고 혼자서 매주 찾아갈 정도면 이름이나 그 사람 신분에 대해선 잘 알텐데 원장들은 하나같이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들 했다. 대부분 그냥 안면이나 익혀 맞이하는 모양이었다.

 

 

  우선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다는 철산동 소재 고아원부터 가보기로 했다. 원장이 전화에 대고, 이 사람은 여태 두 번 정도밖에 봉사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찾는 사람이 아닐 것 같다고 얘길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형사는 단숨에 달려갔다. 그러나 아니나다를까 수성그룹의 손중선과는 역시 다른 사람이었다. 조형사가 내민 손중선의 사진을 들여다 보더니 원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동명이인이란 게 확인됐다. 처음부터 짐작은 했지만 조형사는 맥이 쏙 빠져버렸다.

 

  조형사는 어쩔수 없이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두 군데 고아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확인을 해봤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하안동의 '천사의 집' 밖에 없었다. 고아원에서 무슨 단서를 얻어보겠다고 자기가 이렇게 노심초사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면서도 조형사의 마음은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천사의 집'이라는 데는 하안동에서도 꽤 후미진 외곽에 있었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잘 자랄 지 의문이었다. 음지에서 키워진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밝을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섰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래도 바깥 환경보다는 꽤 깔끔하게 꾸며놓은 편이었다. 집도 깨끗했고 앞마당 뜰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마당 옆에는 놀이시설도 갖추어져 있었다. 조형사는 노파심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촘촘하게 박힌 유리창에는 모두 불이 꺼져있어 캄캄했는데 유난히 넓은 유리창 쪽에만 불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원장실을 찾아 들어갔다. 원장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조형사의 전화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조형사는 이제 녹초가 다 되어 큰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기는 사정이 좀 달랐다. 조형사가 사진을 보이자 원장에게서 곧바로 반응이 나타났다. 사진을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제 일이 좀 되려는 모양이었다.

 

  "이 친구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이 분은 자원봉사자가 아닙니다."

  "? 그럼......"

  "저희 집에 주희라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의 외삼촌입니다."

  "그렇습니까?"

  ", 그리고 이름도 다른데....."

  "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김경호씨라고 들었습니다. 여태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만......"

  ", 네에......"

  "친구분이라고 하셨죠?"

  원장이 안경 너머로 의심스런 눈초리를 하고는 조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만. 사실...... 아주 어렸을 적 친군데, 제가 이사를 가면서 지금껏 만나질 못했습니다. ......그 땐 이름이.....손중선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이름을 쓰는 모양입니다."

  조형사가 거짓말로 둘러대면서 쩔쩔맸다. 그러나 원장은 그에게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조형사는 혐의자에게 이렇게까지 배려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다시금 회의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줄곧 결론은 그래도 신중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리가 됐다. 나중에 범인을 잘못 짚어 곤란한 경우를 당하는 것 보다는 백배 낫다는 생각이었다.

 

  "삼촌이 있는데도 고아원에 계속 맡겨두는 이유가 뭐랍니까?"

  "그 분 얘기론 아직은 아이를 데려갈 형편이 못된다는 거였습니다."

  "네에...... 이 친구 조카라는 아이의 신상명세서를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조형사가 원장에게 서류를 요청하면서 형사티를 냈다. 그런 조형사를 원장이 다시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아니, 그것까지 보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미 친구분이 맞다는 게 확인됐는데."

  "네 그렇긴 한데...... 이 친구 형편이 어렵다면 친구로서 좀 도움이 될만한 게 없을까 해서 그럽니다. 이왕이면 이 친구가 모르게 했으면 합니다."

 

  조형사가 이번엔 똑소리 나게 둘러댔다. 거짓말도 자꾸 하면 는다더니, 지금의 조형사가 바로 그랬다.

 

  "네에, 아주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걸 제가 좀 이상하게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장도 여자치고는 성격이 꽤 화통한 편이었다. 금방 사과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함을 뒤지더니 오주희라는 아이의 신상명세서를 찾아왔다. 원장이 조형사 앞에 김경호의 연락처와 아이의 신상이 담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바로 이 아입니다. 이건 어릴 때 사진인데 이젠 아주 어엿한 숙녀가 됐습니다. 나이가 벌써 열두 살이나 되었어요."

  "그럼 갓나서부터 여기서 자랐습니까?"

  신상명세서를 훑어보며 조형사가 질문했다.

 

  ". 12년 전에 아기바구니를 타고 이리로 들어왔어요. 혼자서 바구니를 운전해 왔으니 내쫓을 수도 없고 해서 받아줬어요. 원래 젖먹이 아기는 안 받아요, 저희 규정상."

 

  원장의 표현은 아주 썰렁했다. 나름대론 슬픈 이야기를 슬픈 티 내지 않고 얘기하려 한 것 같은데 조형사에겐 그게 오히려 더 어색하게 들렸다. 어찌됐든 주희라는 아이는 갓난아기 때 버려졌다는 걸 알았고......, 문제는 손중선과 아이 엄마의 관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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