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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6회> - 조형사를 울컥하게 한 고아원 식사 풍경

writerjang 2023. 2. 1. 00:02

  "아이 엄마에 관한 내용은 기록이 안 돼있군요?"

  "여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부모는 바로 저하고 선생님들이죠."

  "그렇겠군요. 그러면 손중선, 아니 김경호씨 하고 이 아이 엄마하고는 남매간이겠군요?"

  "누나라고 들었어요."

  "네에."

 

  조형사가 질문이 없자 잠깐동안 적막이 흘렀다. 잠시 후 조형사가 신상명세서를 훑어보다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어 원장에게 말을 꺼냈다.

  "아이가 정상이 아닙니까?"

  "아니요. 그렇다고 비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죠. 다리만 조금 불편한 정도니까."

  "아이를 좀 볼 수 있습니까?"

  "지금은 좀 곤란한데, 저녁 식사 시간이거든요."

  "그러면 먼 발치에서라도......"

  "좋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원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조형사가 그 뒤를 바싹 따랐다. 복도를 구불구불 지나 몇 번 꼬부라지자 불빛이 환하게 쏟아져나오는 넓은 유리창이 있는 식당 앞에서 원장의 발걸음이 멈췄다. 창문 안을 들여다 보니 아이들이 식탁에 빙 둘러앉아 얌전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조형사는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얼른 천장쪽으로 돌렸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조막만한 것들이 이 더러운 세상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저렇게 버티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가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무엇인가 크게 뭉쳐진 덩어리가 넘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저녁식탁 풍경이 차라리 시끌벅적하고 산만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이가 제각각 다른, 크고 작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너무도 어른스럽게 제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진정한 믿음의 대상인지 판단할 수도 없는, 우리에게 양식을 주신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아마도 아이들은 그렇게 고마워하며 밥을 먹고 있을 것이다.

 

  "저기 저 아이가 바로 주희예요, 오주희."

  원장이 손으로 여자 아이 하나를 가리켰다. 조형사가 원장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던졌다. 아이들 중 앉은 키가 중간쯤 되는 여자 아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정말 얼굴이 손중선과 닮은 구석이 아주 많았다. 삼촌이 아니라 아빠라고 해도 믿겠다, 싶었다.

 

  "이제 됐습니다. 저는 이제 돌아가봐야 할 것 같군요. 이 친구가 오면 제가 왔다갔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직접 이 친구에게 연락해서 만나면 되니까요."

  ",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움을 주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 뭐 별 말씀을......"

 

  조형사는 '천사의 집'을 떠났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왜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감상적인 기분을 털어내야겠다고 다짐을 하는데도 잘 안된다. 본래 조형사는 덩치만 컸지 마음은 여린 사람이었다.

 

 

19: 백파일

 

  또 하루가 지났다. 애초 사건을 맡길 때 국장의 호의적인 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냉랭하게 변해갔다. 언제나 그랬지만 국장은 임무를 맡긴 뒤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동찬을 재촉하곤 했다. 아마도 그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라는 국장의 재촉이 하루가 다르게 심해져만 갔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멀쩡한 '포에버 21' 프로그램 원본이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된 마당에 살인범은 물론이거니와 CD를 찾아내라는 명령이 엄중했다.

 

  동찬은 오늘도 역시 새벽에 일어났다. 오늘은 집안에서 간단한 팔굽혀펴기로 운동을 대신했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바깥으로 나가 운동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질 않았다.

 

  이제까지 수사한 내용을 종합하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봤다. 정리를 할 때가 됐다.

 

  원본 CD를 태산에서 강탈해 갔다면 그들의 연구는 지지부진했다는 얘기가 된다. 단순하게 참고를 하기 위해 그런 모험을 감수했을 리는 없겠고, 발표회 일정이 곧 다가온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도 '포에버 21'을 여과없이 바로 그들의 작품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아직 수성그룹 연구소에서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놓지도 않은 터에 태산에서 발표를 한다면 표절시비 정도는 벌어질지 몰라도 소유권은 역시 태산이 가져갈 수밖에 없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수성 연구소에서는 '포에버 21'을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았으니까.

 

  정박사의 옛애인 오혜진이란 여자의 행방도 문제였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됐고, 서울 어딘가에 있다는 정박사 친구들의 추측만 있을 뿐 생사도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사건의 열쇠가 나올지도 아직은 의문이다.

 

  동찬은 먼저 정나리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사건 때문인데 별 상관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대여섯 번쯤 신호음이 울렸을 때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칙칙한 목소리였다. 미인도 꾸미지 않은 목소리는 다 그저그런가 보다.

  "서동찬입니다."

 

  상대가 목소리를 가다듬는지 대답없이 뜸을 들였다.

  "...... , 무슨......?"

 

  정형사는 침대에서 일어나 탁상시계를 들여다봤다.

  "다름 아니라 지금 태산그룹을 조사하고 계시죠?"

  ", 그런데요?"

  정형사는 자기가 태산그룹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동찬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반장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자기하고 제보자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쪽에서 무슨 단서를 얻은 게 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컴퓨터시스템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권남우 박사를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좀 있었어요. 태산에서 개발하려는 초고속 정보통신망 프로그램은 아직 미완성인데, 이달 7일날 발표회가 있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신문에 공개된 발표회 날짜를 권박사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그럼 권박사 말고 어디 다른 부서에서 일을 진행시키고 있겠군요?"

  ", 비서 말로는 기획실에서 담당하고 있답니다."

  "혹시 노반장님한테 얘기 들었나요?"

  "무슨......"

  "반장님이 제보를 받고 용산 사람을 만나보셨다는데, 그들이 '포에버 21' 프로그램으로 보이는 CD를 보관하고 있다가 괴한들에게 탈취당했다는군요. 제 생각엔 태산에서 저지른 짓 같아보이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요? 그럼 그것도 기획실에서......?"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정형사가 오늘 기획실을 조사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 알겠습니다."

  "그리고 권박사가 정박사 장례식 때 왔었는데, 자기 모습을 보이길 꺼리는 것 같더군요.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가버렸어요."

  "아니 어떻게 둘도 없는 친구 장례에 그럴 수가 있죠?"

  "그러게 말이예요. 정박사에게 미안한게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이 아닌가 하는데."

  "그럼 기획실에서 꾸미고 있는 일을 권박사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되나요?"

  "그래요. 그럼 오늘은 그쪽으로 좀 알아보셔야겠어요."

  ", 알겠습니다."

 

  예상대로 태산에도 걸리는 점이 많았다. 동찬은 일단 그 부분은 정형사에게 맡기기로 하고, 오늘은 오혜진을 찾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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