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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4회> - 지점장과 은행 직원들의 수사 협조

writerjang 2023. 1. 29. 22:58

  "아닙니다. 은행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에요."

  "그럼, 무슨.......?"

  "다름아니라, 뭣 좀 여쭤볼게 있어서요."

  "아 네에. 무슨......"

  "요즘엔 자기 통장에 입금시킬 때에도 실명 확인을 하게 돼있죠?"

  "물론이죠."

  "혹시 본인이 아니더라도 통장을 만들어 주거나 입금 처리해주는 경우도 있나요?"

  ", 몇 가지 예금은 본인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 적금통장을 부모가 대신 만들어주는 경우라든가......"

  "아니, 그런 상식적인 얘기 말고요, 본인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보통예금이나 적금통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얘깁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럼 변칙적으론 가능하다는 얘깁니까?"

  지점장은 형사가 던져놓은 올가미에 걸려든 기분이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니요,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조형사가 당황스러워 하는 지점장 앞에 통장 하나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여기 이 통장의 돈이 어떻게 입금된 건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제가 한 번 보죠. 우리 지점 통장은 맞고......"

 

  지점장은 말을 하다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일 가까이서 일을 보고 있는 남자 행원을 불렀다. 아까 지점장을 불러온 행원이었다. 아주 작은 소리로 낮게 불렀는데도 업무에 여념이 없는 것 같던 행원은 잘도 알아듣고 총알같이 달려왔다. 아무래도 지점장이 창구에 나와있으니 적잖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김대리 이거 3억원이 입금돼 있는데 예금주가 직접 통장을 개설한 건지 한 번 알아봐요. 그리고 또...... 뭘 알아봐달라고 하셨죠?"

  지점장이 행원에게 지시를 하다말고 조형사에게 되물었다.

 

  "본인이 개설한 게 아니면 누가 한 건지 알아봐주세요. 여기 예금주 사진이 있으니까 통장을 발급한 행원에게 물어 대조해보면 될 거예요."

  조형사는 신상명세서 복사본에서 오려둔 손중선의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지점장에게 내밀었다.

 

  "복사본이라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을 지 의문이네요."

  지점장이 조금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점장은 행원에게 조형사가 주문한데로 지시했다. 복사본 사진도 건네줬다. 행원이 창구로 걸어갔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알아 올겁니다. 그나저나 아직 음료수도 한 잔 대접을 못했군요. 미스 리! 여기 음료수 좀 가져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행원이 오렌지 주스를 두 잔 가지고 와서 조심스럽게 내려 놓았다. 그러고 보니 이 은행 여직원들은 하나같이 미인이었다. 조형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한 번 휘 둘러봤다. 그리고 지점장에게 물었다.

  "여직원들이 꽤 미인이네요?"

  ", ......"

  "여직원들은 얼굴을 보고 뽑나보죠?"

  드디어 조형사의 심술이 발동했다. 요즘 신문에 자주 나오는 신입사원 채용백태가 생각나서였다. 같은 값이면 좀 더 잘생긴 사람을 합격시키는 게 요즘 채용기준이라나? 그래서, 심지어 채용시즌만 되면 성형외과는 일년 중 가장 큰 대목을 맞는다는 얘기도 조형사는 잘 알고 있었다.

 

  "채용은 본사에서 담당하니까 저희야 잘 모르죠."

  지점장이 책임을 본사에 떠넘겼다. 그런 지점장을 조형사는 거리낌없이 비꼬았다.

  ", 그러십니까? 아무튼 보긴 좋네요. 은행에 자주 와야겠어요."

 

  그 때 심부름을 보낸 김대리란 자가 여자 행원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조형사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지점장 앞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리란 자가 지점장에게 보고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 이 통장을 개설한 사람은 태산그룹 경리부 직원이랍니다. 태산은 매달 저희 은행에서 급여이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친구가 경리부 직원들을 잘 안답니다."

 

  행원의 입에서 태산그룹이 거론되자 조형사는 귀가 솔깃했다. 태산그룹이라면 정형사가 어제 얘기했던 그 정보통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기업이 아니던가? 그것도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으로 정형사는 자기의 의견을 얘기했었다.

 

  "그래? 그럼, 이 통장도 급여이체 명목으로 만든건가?"

  지점장이 여자 행원을 향해 물었다.

  "."

  여자 행원이 간단하게 대답하자 김대리가 부연설명을 했다.

  "경리부 직원이 하는 말이 이 통장의 예금주인 손중선씨는 이번에 태산그룹 연구원으로 스카웃 됐으며 5년 동안의 연봉을 선불로 입금시키는 거라고 했답니다."

 

  ", 알았어요. 형사님, 뭐 더 물어보실 거라도......"

  "아 네, 저기...... 그럼 말이죠, 그런 사례가 전에도 있었나요?"

  조형사가 물어보자 지점장이 두 행원이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번에도 김대리가 대답했다.

  "급여통장은 대개 회사에서 직접 만들어줍니다. 때문에 연봉으로 급여를 받는 사원들이 있는 회사들은 이렇게 거액을 입금시킬 때가 가끔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로야구 구단주인 기업들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연봉으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이런 거액을 선수 개인 통장에 입금시켜줍니다. 물론 태산그룹은 구단이 없습니다만."

 

  "태산그룹이 이런 거액을 입금시킨 적은 있었나요, 개인 통장에?"

  김대리가 여자 행원을 쳐다봤다.

  "전에 몇 번 있었습니다."

  "그래요? 잘 알았어요."

  조형사가 이젠 더 물어볼 게 없다는 표시를 하자 지점장이 두 사람을 물러가도록 했다. 두 행원은 지점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점장이 조형사에게 물었다.

  "이제 다 된겁니까?"

  ", 됐습니다."

  조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점장도 따라 일어섰다. 동시에 김대리도 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점장이 먼저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지점장이 조형사에게 고객 대하듯 깎듯하게 인사를 했다.

  "? 네에......."

  조형사는 조사한 내용을 생각하며 지점장에게 머쓱하게 인사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서 나오려는데 지점장이 자킷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김대리에게 건네주는 장면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필요없게 된 봉투라 원상복귀시키는 모양이었다. 괜한 트집이나 잡으려고 방문한 경찰이 아님을 알았을 때부터 그 봉투는 이미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조형사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형사는 아무래도 손중선이 유력해 보였다. 태산그룹에 매수돼 프로그램을 넘기려다 들켜 정박사를 살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형편에 유학을 떠나려면 큰 돈이 필요했을 거다. 방법을 찾던 중에 태산이 접근했고 손중선은 흔쾌히 동의하고 직접 일을 꾸민다. 그러던 중 정박사에게 도난현장을 들키게 되자 살인을 저지른다. 그런데......'

  조형사는 여기까지 상황을 연결시키다가 갑자기 바이러스가 생각나자 앞뒤가 막혀버렸다. 바이러스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난감했다.

 

  '그런데 살인을 저지른 날은 이미 바이러스 때문에 프로그램이 못쓰게 돼버렸는데...... 그렇다면 손중선이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살인범이 바이러스를 침투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동찬의 얘기가 떠올랐지만 조형사는 애써 무시해버렸다.

  '해커와 살인범이 다른 놈일 수도 있지 뭐!'

 

  조형사는 우선 추리를 접어두고 손중선이 자주 찾아갔다던 고아원에 가보기로 했다. 광명시에 소재한 고아원이 몇 개가 있고, 그곳의 연락처나 주소를 알려면 시청을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도 증거가 나온다면 아주 유력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조형사의 차는 광명시를 향해 질주했다.

 

  조형사가 광명시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반이 다 돼서였다. 시청직원들은 거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담당자를 찾아갔다. 담당자가 서류철을 뒤적이더니 하는 말이 시 전체에 고아원이 21개라는 거였다. 이 조그만 시에 무슨 고아원이 이렇게 많지? 스물한 개를 다 뒤지려면 오늘 하루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조형사는 우선 그들의 연락처와 주소지만이라도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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