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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3회> - 손중선의 계좌 추적에 나선 조형사

writerjang 2023. 1. 29. 00:40

  "그럼 그 어머니는 어떻게 됐나요?"

  "벌써 돌아가셨죠. 그 때가 아마 혜진이가 홍천을 떠날 때니까 15년도 더 됐을 거예요. 지 어머니 돌아가시자 마자 서울로 떴으니까요."

  "오혜진이 몇 년 생인지 알고 계신가요?"

  "글쎄요, 우리야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우리들 보다 3년 후배니까 63년생이나 64년생이겠죠."

  "네에......"

 

  63년생이라면 정박사 컴퓨터의 암호와 맞아떨어진다. 암호가 '12051963' 이니까 뒤에 네자리 숫자가 연도라고 보면 암호는 오혜진의 생년월일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영문이니셜 'JIN'도 오혜진의 이름끝자와 맞아떨어진다.

 

  "동생 오남수는 지금 몇 살이나 됐을까요?"

  "그 애가 양자로 갈 때가 일곱 살이었고 그 때 우리가 중학교 2학년 때니까, 열 다섯. 그러면 우리랑 여덟 살 차이고, 내가 지금 마흔이니까...... 남수는 지금 서른 둘이네요. 이젠 바로 코앞에서 봐도 몰라보겠는데요."

  강만수가 손가락을 꼽아 계산을 해가며 대답했다. 보기보다는 셈이 빨랐다. 농사짓는 사람 같지 않았다.

 

  "서른 둘이라...... , 알겠어요. 오늘 협조 고마웠습니다."

  ", 뭐 별말씀을 다......"

 

  동찬이 고향 친구들을 상대로 조사를 하고 있을 때 은색 중형차가 뒤쪽 국도변에 와 멈췄다. 검정색 정장을 갖춰입은 중년의 사내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더니 꼿꼿하게 서서 장례가 치러지고 있는 강물을 내려다봤다.

 

  반장은 갑작스레 나타난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10여분이 흘렀는데도 차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내도 여전이 바깥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반장이 동찬에게 다가와 국도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좀 보세요!

 동찬은 반장이 눈짓으로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차림새는 문상객인 것 같은데 강가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누군지 궁금해졌다.

 

  "누굴까요?"

  동찬이 반장에게 물었다.

  "글쎄요, 저도 짐작가는 데가 없네요."

  "문상객인 것 같은데 자기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가봐요?"

  "그러게 말이예요.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사람인 것 같군요."

 

  이 때 옆에 있던 소장이 두꺼운 안경 너머로 국도변의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두 형사에게 말했다.

  "제가 보기엔 권박사 같은데요."

  "권박사라면...... 태산그룹 권남우 박사요?"

  동찬이 반문했다.

  "."

  "아니, 그렇다면 왜 저기 그냥 서 있는 거죠?"

  이번엔 반장이 거들었다.

  "글쎄요, 난들 압니까?"

  "정박사와는 우정이 아주 돈독하다고 들었는데......"

 

  세사람은 권남우 박사의 알 수 없는 태도에 의아한 표정들을 짓고 서 있었다. 그 사이 장례가 끝나고 어느새 배는 강가로 나왔다. 유가족이 내리고 있었다. 동찬과 반장은 지금은 황미주를 만나 이러쿵 저러쿵 얘기를 나눌 게재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소장에게만 넌지시 인사를 하고는 나란히 걸어갔다. 국도변의 사내도, 승용차도 이젠 가고 없었다.

 

 

  동찬과 인사를 하고 자기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반장이 갑자기 휙 돌아서더니 동찬을 불렀다. 동찬이 고개를 돌렸다.

  ", 잠깐만요!"

  동찬이 반장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죠?"

  "어제 서에 제보가 하나 들어와 제보자를 만나봤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더군요."

  동찬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반장을 바라봤다.

  "무슨......"

  "혹시 '한국 정보통신 발전을 위한 용산모임'이란 단체 아시나요?"

  ",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이 만든 민간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거기 사무국장이었어요, 그 제보자가. 이름이 김성운이라 그럽디다."

  "아 네...... 그런데요?"

  "그 친구들이 '포에버 21' 프로그램이 담긴 CD를 가지고 있었다는군요. 그것도 아주 멀쩡한 거로."

  순간 동찬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지금 포에버 21이라고 하셨습니까?"

  ", 그 사무국장이란 사람이 그 CD에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봤는데 수성그룹 연구소 말고는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만한 데가 없다더군요."

  "그게 어디서 났답니까?"

  "며칠 전에 우편물로 날아왔대요.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았구요."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어제 낮에 괴한들한테 강도를 맞았다는 거예요."

  ", 뭐라구요?"

  "용산모임 회장이 CD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다 괴한들한테 당했다는군요."

  "그래요? 그런데 그게 정말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거랍니까?"

  ", 말짱한 거랍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포에버 21'이 맞을까요?"

  "제 생각에도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만한 수준을 갖춘 곳은 아무데도 없거든요."

  "그러면 누가 그걸 용산으로 보냈을까요?"

  "글쎄요. 그 사무국장 연락처 좀 알려주시겠어요?"

  반장이 수첩을 꺼내 어제 김성운에게서 받은 연락처를 옮겨 적고는 메모지를 찢어 동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동찬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누가 프로그램을 용산에 넘겼을까? 돈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목적일까? 그리고 권남우 박사의 장례식장에서의 태도는 무얼 의미하는걸까?

 

  시간이 흐를수록 정박사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그 사내가 권남우였다면 그렇게 먼 발치에서 친구의 장례를 지켜볼 까닭이 있었을까? 너무도 슬픈 나머지? 아니면 정박사에게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저지른 걸까......?

 

  우선 오혜진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정박사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오혜진은 과연 어떤 여자인가 궁금해졌다. 그녀를 찾아야 정박사가 죽기 전 무슨 갈등을 하고 있었으며,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8: 매수

 

  조형사는 손중선의 자취방을 다시 찾아갔다. 연구소에는 이미 전화로 알아본 결과 손중선의 결근이 확인됐다. 주인집 여자가 대문을 열어줬다. 그녀는 손중선이 어젯밤 끝내 들어오지 않았는지 아침에도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조형사는 방에서 좀 기다려 보겠다고 주인여자에게 얘기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아무도 건드린 흔적 없이 어제와 똑 같았다. 다만 방 전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젯밤 손중선은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요즘같은 날씨엔 하룻밤만 보일러를 돌리지 않아도 방이 이렇게 냉골이 돼버린다.

 

  책상 위에 어제 들여다 보고 올려놓은 통장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조형사는 오늘 아침에 법원에 들러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왔다. 통장을 들고나가 은행에서 정밀 조사를 해볼 요량이었다. 어차피 손중선에게 혐의를 두고 있다면 영장을 발급받아 조사하는 게 옳을 것 같아서였다. 통장을 다시 들춰 확인해보았다. 역시 3억원은 그대로 있었다.

 

  조형사는 통장을 안 주머니에 넣고 또 증거가 될 만한 게 있을까 해서 방안을 둘러봤다. 아무리 봐도 박사의 집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증거가 될 만한 건 발견하지 못했다.

 

  조형사는 마당으로 나와 주인집 여자에게 대강 둘러대고 집을 나섰다. 통장엔 한주은행 종로지점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종로 한주은행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막막했다. 창구에 앉아있는 여자 행원들에게 묻기엔 액수가 너무 컸다.

 

  우선 한쪽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행원에게 경찰임을 밝혔다. 누구를 만나야 통장 내용을 조회할 수 있냐고 물었다. 행원이 조형사를 안으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아 잠깐 기다렸는데 안에서 점잖게 차려입은 50대가 나왔다. 행원은 그를 지점장이라고 소개했다.

 

  "저희 지점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지점장은 경찰이 찾아왔다는 얘기를 이미 행원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는 조형사에게 대뜸 은행의 문제점여부를 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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