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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7회> - 갑작스런 현장 철수 지시에 당황한 강력반

writerjang 2023. 1. 7. 04:53

  조형사는 정형사에게 지문을 채취한 내용물을 받아 감식반 요원들에게 넘겼다.

  "나으리, 이거 빠짐없이 다 채취한거지?"

 

  정형사가 '나으리'란 별명을 아주 싫어한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감식반 형사들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상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나라 여자 이름들은 본래 하나같이 비슷하지만 정형사 이름은 특이했다. 그녀는 한글이름이 유행하기에 앞서 신세대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지어준 부모들에게 언제나 고맙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리'라는 이름은 놀림감으로 사용되기에 충분한 어감을 가지고 있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나으리'란 별명을 달고 다녔던 정형사는 어른이 되면 설마 점잖은 사람들이 그러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입사하자마자 알아차렸다. 입사 첫날부터 그녀의 이름은 선배들의 놀림의 대상 그 자체였다. 성까지 붙여 선정적인 의미로 불리워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해왔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간통이나 저지를 여자로 취급받는 별명을 달고 다닐 수도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놀림을 당하는 건 기분 나쁜 일이었다.

 

  정형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눈을 흘겼다.

  노반장이 양형사와 함께 현장에 나타난 바로 때였다. 시간은 이미 11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현장 경계를 위해 무장한 경찰병력을 대동하고 반장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반장은 양형사 뒤를 따라 출입구를 지나 사체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아주 느긋하게 조형사에게로 걸어왔다. 그런 반장의 여유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조형사는 마음 속으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여기가 무슨 밤무댄가, 하나씩 하나씩 등장하게.'

 

  조형사는 그러면서도 겉으론 애써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반장에게 허리까지 굽혀가며 인사를 했다.

  "나오셨어요?"

  ".......어떻게 됐나?"

  ", 지문은 이미 채취해서 넘겼고, 사체는 그대롭니다. 전문가 솜씨같아요."

 

  조형사는 사체를 처음 발견한 경비원에게 들은 내용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보고를 하면서도 계속 주위를 둘러봤지만 소장과 경비원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 노반장도 연구실 구석구석을 대강 눈으로 살피면서 조형사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아마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장도 만나봤는데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그래도 인사는 시켜 드려야 되는데......"

  "아니, 됐어. 그리고 또 다른 건 발견한게 없나?"

  ", 조사를 좀 더 해봐야죠."

  "그래? 그럼 먼저 저기 천장에 환기구부터 살펴보라구. 조금 열려있지?"

  조형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반장이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 봤다. 이 양반이 어느새 그것까지 봤나, 하면서도 노반장의 노련함이 새삼 존경스러워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 네, 그렇군요."

  "자네는 연구실 안에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아보고, 정형사와 양형사는 이 연구실을 중심으로 건물 주변을 잘 살펴보라구."

  ", 알겠습니다."

 

  역시 반장이 현장에 나타나자 일이 많아졌다. 형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고 나서 반장은 사체로 다가가더니 담요를 들춰내고 목부위 상처부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체 전체를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고 난 뒤 전경을 시켜 담요를 덮어두도록 지시했다.

 

  이어 반장은 책상 위에 있는 구내 전화번호 구성도를 들여다 보더니 수화기를 들고 번호판을 눌렀다. 전화가 걸렸는지 뭐라고 몇 마디 하더니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었다. 멀뚱멀뚱 환기구를 바라보고 있던 조형사가 반장의 행동을 잠깐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조형사는 자기 키의 두배도 넘는 천장의 환기구를 점검하기 위해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사다리도 없는 마당에 달리 수가 없었다. 역시 방법은 책상을 옮기고 그 위에 의자를 놓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전경을 부른 뒤 조형사는 책상을 들려다 말고 책상 다리 밑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전경의 다음 동작을 제지했다.

 

  "잠깐만."

 

  조형사는 머리를 책상 밑으로 들이밀고는 한참동안 면밀히 살폈다. 책상 다리에서부터 환기구까지 선명하게 긁힌 자국이 몇 가닥 있었다. 책상을 이동시키려고 끌어당길 때 생기는 자국이 분명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생긴 것으로 보였다. 조형사는 전경에게 책상을 지키고 서 있도록 다짐을 받고 카메라를 찾았다. 양형사가 들고 왔던 가방이 바닥 한쪽에 놓여 있었다. 우선 카메라를 꺼내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책상 위치에서부터 환기구 있는 자리까지 긁힌 자국을 따라 바닥을 차례대로 찍어나갔다.

 

  촬영을 마치고 환기구 뚜껑을 슬쩍 밀어 안을 들여다 봤다. 아니나 다를까, 환기구 바로 옆을 가로지르는 철골에 등산용 루프가 매여져 있었다. 환기통로는 사람이 낮은 포복으로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손전등으로 안쪽을 비춰봤다. 환기통 청소를 아예 하지 않는지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그 오른편 저쪽 끝부분 귀퉁이에서 어렴풋이 빛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배출구인 모양이었다. 초동수사에서 이 정도 수확이라면 사건은 쉽게 풀릴 징후였다.

 

  조형사가 고개를 아래로 빼고 반장을 불렀다.

  "반장님, 잠깐 이리 좀 와보세요!"

 

  반장이 조형사와 자리를 바꿔 잠깐 동안 환기구 안쪽을 들여다보고 내려왔다.

 

  "저 천장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놔두도록 하지."

  "."

  "그리고 정한테 배출구쪽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무전 날리고."

  ", 알겠습니다."

 

  무전기를 들고 정형사를 호출하는 조형사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리려나보다, 그것도 자기가 발견한 환기통에서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 신바람이 났다.

 

  이제 초동수사는 어느 정도 끝나가는 같은데 오늘은 특이한 일이 있었다. 아직도 사체를 그대로 두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조형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반장에게 물었다. 또 뭔가 욕을 얻어먹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한 건 알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반장님, ......"

  ", 뭔데?"

  ", 저 그런데 사체는 왜 그냥 놔두는 거죠?"

  "오늘은 다른 데서 알아서 할거야."

  "다른 데라뇨?"

  "아 글쎄, 있어......"

 

  반장의 표정으로 봐선 도무지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알아서 한다는 건지. 다만 반장은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틈틈이 출입구 쪽에 시선을 던지곤 했다. 그런 반장을 보면서 조형사는 궁금증만 더해 갔다.

 

  건물 외부를 조사하러 나갔던 정형사와 양형사가 돌아왔다.

 

  "이제 우린 서로 돌아가지."

  반장의 명령이었다. 반장은 경계를 서는 전경들에게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라고 다짐을 해두었다.

 

  어떻게 사체를 그대로 두고 돌아간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었다. 십년 경력의 조형사도, 그리고 정형사와 말단 양형사까지도 의아스런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 가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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