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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회> - 살인사건에 혼란스러운 강력계의 아침

writerjang 2023. 1. 5. 01:02

  노반장은 준비할 없나,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사무실을 한 번 휘 둘러봤지만 선뜻 짚이는 게 없었다. 이럴 땐 숙직 형사라도 있어야 뭔가 알아보기나 할 텐데, 지금은 아무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다.

 

  어제 숙직이 아마도 양형사였을 거라 생각하며 끄트머리에 있는 그의 자리로 봤지만 숙직일지 같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들고 나갔는가 보다. 아마도 사건사고 현황을 파악하러 상황실에 갔을 터였다.

 

  없이 불안한 마음을 안고 서장실로 올라갔다. 3층 복도 끝에 있는 서장실이 평소와는 달리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마음으론 서장과 빨리 부딪히고 싶지 않은데 두 발은 바쁘기만 하다. 공직생활에서 단련된 두 다리가 제 스스로 윗사람의 호출을 알아보는가 보다.

 

  17년 동안 서장실에 올라와 본 기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오늘은 서장실 문이 그다지 낯설게 보이진 않았다. 아니 앞으론 서장실이 낯설지 말아야 한다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벌써 얼마 동안이나 진급이 미뤄진 것일까. 공석인 계장자리를 비워두고서도 자신을 올려주지 않는 윗사람들이 야속하기까지 했었다. 서장에게 불려 다니는 과장이 불쌍하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워했던 적도 많았다.

 

  서장실 문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후에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서장이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깊숙히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제복만 아니었다면 마치 폭력조직 두목으로 착각할 뻔했다.

 

  노반장이 들어가 인사를 하자 서장은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곤 대뜸 곱지 않은 말을 던졌다.

 

  "요즘 출근 시간이 몇 시죠?"

  "네 여덟시 반입니다."

  "그럼 간부들은 최소한 여덟시 안에는 나와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

 

  혼잣말인지 자신에게 말인지 분간이 안가 반장은 아무 대답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마음을 놓고 살지?"

 

  노반장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생각해 봤지만 딱히 정답이라고 판단되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짧은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돌 뿐이었다.

 

  '아직 정식 출근시간이 되려면 좀 남았다고 말해야 하나? 어제 큰 사건 하나를 해결하고 난 뒤라 피곤해서? 아니면 기상이변 때문에 차가 막혀서?'

 

  궁색한 변명을 생각하는 와중에도 기분나쁜 지금의 상황에 항거하는 거친 말들이 입밖으로 툭툭 터져나오려고 발버둥쳤다. 아무리 말단이지만 간부에게 이렇게 반말을 일삼아도 되는 것입니까? 저도 이제 마흔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각한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사람을 족치는 겁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말이 되어 튀어나오질 않았다. 다만 고개만 푹 수그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늘 완전히 이미지 구긴다는 생각에 처참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래도 이럴 땐 과장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언제 과장이 되고 싶어했냐는 듯 자위할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제 우리 관내에서 살인사건 난 거 알아요?"

  "아니...... 아직 접수받지 못했습니다."

  "나 참, 아니 왜 아직 접수가 안돼요. 노반장은 출근하면 사건사고 일지부터 안봐요?"

  "...... 그런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간부들이 하나같이 그러니까 문제지!"

 

  서장의 따발총같이 쏘아대는 말을 주워담으면서, 노반장은 역시 어떻게 해서든 상황일지를 점검하고 왔어야 하는데, 하며 뒤늦게 후회했다. 과장이 서장에게 불려갈 때마다 전날 숙직자에게 상황일지며 신문철, 숙직일지 등을 찾아내라고 법썩을 떠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어젯밤 수성그룹 부설 연구소에서 박사 하나가 살해됐어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죽은 것도 문제지만 그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 사람이 연구하던 프로그램 칩이예요. 정부에서 21세기 국가발전을 위해 육성해오던 중점사업이 바로 정보통신산업이었소. 수성그룹에서 개발하려던 프로그램 칩 '포에버 21'이 정부의 계획과 맞아 떨어졌고 그래서 기대가 컸다는군요."

  "........"

  "정부의 눈에 수성이 들어왔던 거요. 그래서 경찰청이 앞장서 각 서에서 요원을 차출해 특별경비팀을 꾸려 경비망을 보강시켜줄 정도로 수성그룹의 이번 프로젝트는 단지 일개 기업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예요."

  "........"

  "아무튼 그러고 서 있지만 말고 임과장하고 상의해서 빨리 전담팀을 꾸려요. 경찰청에서도 사람이 나온다니까,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구요."

  "? , ......"

  "대답만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상황일지 뒤져보고 움직여요!"

  ", 알겠습니다."

 

  얼른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는둥 마는둥 돌아서 나오려는데 서장이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임과장 좀 빨리 올라오라고 해요."

 

  대답이고 뭐고 빨리 벗어나는게 상책이다 싶어 그대로 문을 닫고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형사과로 돌아오면서 잠깐 손목시계를 들여다 봤다. 810분이었다. 이쯤 되면 모두들 출근했겠다, 싶었다.

  문으로 들어서면서 언뜻 보니 형사들이 어제 숙직근무를 양동은 형사의 자리에 모여 앉아 심각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양형사 책상에 비스듬히 걸터 앉아 있던 조영국 형사가 먼저 반장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면서 인사를 했다. 그와 동시에 편안한 자세로 모여 있던 다른 형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반장에게 인사를 했다.

 

  조형사가 반장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세요?"

  그러나 노반장은 대답도 없이 형사들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흘겨보곤 자리에 털썩 앉았다.

  "과장님은?"

  "아직 안나오셨습니다."

  막내답게 양형사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일찍일찍 좀 다녀 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반장은 그저 한심하다는 투로 대상도 정확치 않은 한마디를 날렸다. 굳이 지적하자면 아마도 과장을 겨냥한 말이 분명했다.

 

  "그리고 양형사는 숙직자가 왜 자리를 함부로 비워, ?"

  "상황일지 가지러 잠깐 나갔었습니다."

  "상황일지는 무슨? 그걸 뭐 어디 공장에라도 가서 만들어가지고 와? 자네 일년짜리 맞아?"

 

  반장은 양형사가 경찰에 입문한지 일년밖에 안된 신출내기라는 들먹였다. 신출내기 주제에 고참들 하는데로 다 따라하느냐는 얘기였다. 숙직 서는 날엔 밤새 말똥말똥 하다가도 사건접수가 없을 경우엔 새벽녘부터 졸음을 견디다 못해 어디 누울데만 있으면 가릴 것 없이 뻗어버린다는 건 베테랑인 노반장에겐 뻔한 계산이었다.

 

  "어쨌든, 이리들 모여봐!"

  형사들이 하나같이 머쓱머쓱 반장 자리로 걸어왔다.

  "서장실에 들려 왔는데......."

  "아하! 그랬군요. 많이 깨졌습니까?"

  조형사의 스스럼 없는 말이었다.

  "자네는 지금 몇 살인데 그런 말을 쓰나? 내가 무슨 두부야, 깨지게?"

 

  깨진다는 표현에 걸맞는 물건들 중엔 거울, 접시, 유리, 벽돌 등 얼마든지 많은데, 그 중에서도 반장 머리에 두부가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새벽에 마누라에게 뭔가 주문하려고 주방을 넘겨보다 아침상을 준비하는 마누라가 두부를 썰면서 투덜대던 생각이 났다. 왜 맨날 두부는 이렇게 깨진 것만 팔아, 하면서.

 

  그런데 알고보면 사실은 깨진 두부만 파는 아니라 깨진 두부만 사오는 거였다. 가게에서 두부를 한 모씩 떼어내다가 조금이라도 깨진 놈은 사람들이 기분 나쁘다고 가져가려고 하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가게 주인은 깨진 두부를 단돈 십원이라도 싸게 파는가 보았다. 물론 언제나 마누라는 깨진 두부의 단골손님이었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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