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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9회> - 연구소 비상 연락처는 경찰청 특수과

writerjang 2023. 1. 8. 10:16

  초동수사를 위해 현장에 출동했던 반장과 양형사, 조형사와 정형사가 각각 짝을 이뤄 두 대의 차량에 분승해 청량리경찰서로 이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일이었다. 살해현장에 사체를 그대로 남겨두고 철수하는 일은 경찰생활 십년 만에 처음보는 일이었다. 조형사는 차를 운전하면서 내내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시라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 보려고 먼저 정형사에게 말을 꺼냈다.

 

  "정형사, 아까 그 소장 아는 사람이야?"

  "아니요, 개인적으론 모르지만 그 사람 원래 유명하잖아요.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고. 우리나라 물리학에서는 최고의 권위자예요."

  "정형산 모르는 게 없어."

  "아녜요, 그냥 텔레비전을 자주 보다보니까......."

 

  양형사가 운전하는 차를 뒤따라 가다 조형사는 회기 전철역 부근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 정차했다. 눈은 이제 멎었지만 도로는 여전히 미끄러웠다.

 

  조형사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다 말고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빌딩 꼭대기에 보이는 대형 광고판에 시선이 멈췄다. 동화상과 문자가 순차적으로 점멸하며 광고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고 있는 대형 전광판이었다. 광고판엔 그림과 글자들이 잠깐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이윽고 '기금접수는 365-9595, 삼백육십오일 구호구호'라는 큼지막한 글자로 쓰여진 두 줄의 문장이 위아래로 번갈아 가며 점멸하고 있었다. 불우이웃을 돕자는 캠페인이었다.

 

  조형사의 뇌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잠깐 깜빡했던 게 있었다.

  조형사는 안주머니에서 수사노트를 꺼내더니 정형사에게 넘겨줬다.

 

  "거기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 한 번 해봐!"

  정형사는 조형사의 말대로 수첩 뒷장을 뒤적거렸다.

 

  "아니 거기 말고, 거기 뭐라고 글씨 써놓은 것 중에 맨 뒤 말야."

  "여기, 이 전화번호요?"

  "응 그래, 전화해서 거기가 어딘지 빨리 알아봐."

 

  정형사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핸드폰을 재빠르게 뽑더니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번호 일곱개를 눌렀다. 발신음이 들렸다. 발신음이 두 번쯤 울렸을 때 상대편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특수괍니다."

 

  정형사는 핸드폰 송신구 부분을 손으로 막고 조형사를 보며 말했다.

  "특수과라는데요?"

  "특수과? 특수과라...... 아니 이거?"

  ",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됐어, 그냥 끊어."

  "그냥 끊어요?"

  "으음......"

  조형사가 뭔가 께름칙하다는 몸을 한번 심하게 털었다.

 

  핸드폰의 'END' 단추를 누르고 나서 정형사가 의아스럽게 물었다.

  "특수과가 뭐죠?"

  "그것도 몰라?"

  "뭐 말이예요?"

  "특수과말야."

  "글쎄요..... 그거 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 말하는 거 아녜요?"

  "왜 아니야?"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골치 아프게 생겼어."

  "아니 왜요?"

  정형사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연구소 비상연락처가 특수과라는 건 보통 일이 아냐."

  "........"

  "이건 일반 살인사건하곤 차원이 좀 다를거야."

  ", ....... 아침에 반장님도 그랬잖아요. 피살자가 정보통신과 관련된 국가적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그랬지. 그래서 아마 서장이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새벽에 청에서 따로 연락이 왔겠지."

  "........"

  정형사는 무슨 소린지 몰라 조형사 말에 맞장구치기 어려웠다.

 

  "내 생각엔 아마 상황일지에 기록된 것도 다른 사건 때완 달리 청에서 우리 서에만 타전한 걸 거야. 그것도 좀 뒤늦게."

  "그런 방법으로 일단 초동수사부터 관할서 담당들을 참여시키는 건가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공조수사를 의미하는 거지."

  "그런데 뭐 문제가 있나요?"

  "문제가 좀 있지. 걔네들, 아주 자기 맘대로거든. 더럽게 자존심 상하지......"

  "자존심이 상할 정도예요?"

  "물론이지."

  "그럼 자기들이 다 하지 왜 우릴 끼워넣는 거죠?"

  "글쎄, 청 업무는 대부분 관할서하고 공조하는 것이 원칙이니까."

  "그럼 그냥 평소 하던대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면 되겠네요."

  "내 경험으론 특수과에서 나설 정도의 사건은 쉽게 안풀려."

  "네에......"

  "살인범을 체포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그럼......"

  "다 왔으니까, 일단 들어가 보자구."

 

  사건현장에 나갔던 형사들이 반장을 필두로 우루루 몰려 들어왔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양형사가 반장의 눈치를 살피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

  "......, 자장면이라도 좀 시킬까요?"

 

  반장은 양형사의 말을 그대로 무시해버렸다.

  ", 다들 회의실로 모이자구."

 

  고개를 돌리는 양형사의 얼굴이 입술에서부터 일그러졌다.

 

  형사들이 회의실로 우루루 몰려 들어갔다. 반장이 먼저 자리에 앉아 형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꺼냈다.

  "현장서 조사한 내용을 가지고 얘기하도록 하지. 양형산 빨리 음식 좀 주문하고."

  "? , ......"

 

  양형사가 사람씩 주문을 듣고는 회의실 구석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부검 결과가 나와야 더 확실해지겠지만 우선 사건발생 시간은 피살자가 차고 있던 손목시계가 멈춘 새벽 130분으로 단정짓고 얘길 시작해보자고. 상처로 봐서 자살은 아닌 것 같고........ 조형산 어떻게 생각해?"

 

  ", 제가 보기에도 타살은 분명하고, 범인이 누군가가 문젠데...... 상황으로 봐선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 청량리서 형사관데요......."

  구석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양형사의 목소리가 조형사의 말에 섞였다.

 

  "근거는?"

  "반장님도 보셨지만, 그 연구실 천장의 환기구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분명이 있었어요. 등산용 루프가 매여 있었고, 특히 사체에 남은 칼자국이 전문가의 솜씨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안쪽 통로는 자세히 살펴봤나?"

  "자장면 둘, 짬뽕 하나, 볶음밥 하나요. 빨리 좀 부탁해요. 회의실로요!"

  말단 양형사가 전화기를 붙잡고 떠드는 통에 정형사가 상사의 눈치 살피랴, 양형사 흘겨보랴 혼자서만 괜히 바빴다.

 

  ", 손전등으로 비춰봤더니 먼지만 수북히 쌓여 있더군요."

  "그래? 그러면서도 환기통으로 범인이 침입했다고 생각하나?"

  ", ........"

  반장의 직설적인 질문공세에 조형사는 그만 말을 잃었다. 수화기를 내려 놓고 돌아서려던 양형사가 반장이 단호한 어투로 조형사에게 쏘아붙이는 소리를 듣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자네는 볼 일 다 봤으면 앉아."

  "....... ."

  "그밖에 다른 건 발견한 게 없나?"

  "한가지 특이한 점은 책상 밑바닥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더군요. 책상을 옮길 때 두 사람이 맞들면 자국이 남지 않겠지만, 이건 한쪽에서만 책상을 들고 끌어당길 때 생긴 자국이 분명합니다. 환기구 아래 바닥까지 나 있더라구요. 오래 전에 생긴 자국일수도 있지만 제가 살펴본 바로는 어제오늘 생긴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번엔 반장이 딴소리 못할 거라고 자신하며, 조형사는 웬만해선 함부로 쓰기 어려운 '확신'이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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