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WRITERJANG

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6회> - 사건현장 초동수사에 나선 형사들

writerjang 2023. 1. 6. 09:09

  형사는 사체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담요를 걷어내고 자세히 살펴봤다. 오른쪽 뒤편 목부위에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칼자국은 단 한 차례였는데도 치명상을 입고 숨이 끊어진 것으로 보였다. 겉보기엔 그밖의 외상은 없었다. 아마도 전문가의 솜씨가 아닌가 여겨졌다. 조형사는 정형사를 시켜 현장 주변의 지문을 빠짐없이 뜨도록 했다.

 

  조형사가 좌중을 둘러보며 소리로 물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시죠?"

  ", 접니다만."

  정장 차림의 중년 사내가 대답했다.

 

  "소장님이시죠?"

  책상 위에 놓여진 머그잔을 조심스럽게 집어올리던 정형사가 중년의 사내에게 아는 체를 했다.

  ", 그렇습니다만."

 

  조형사는 의아한 눈빛으로 정형사와 중년사내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형사가 먼저 중년 사내에게 자기 신분을 밝혔다.

  ", 저는 청량리경찰서 조영국 형삽니다."

  ", ......"

  "당분간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지금 모두 출근한 거죠?"

  "그렇습니다만."

  군더더기 없이 짧게 대답하는 소장의 얼굴에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근심이 잔뜩 서려 있었다.

 

  "현장조사가 끝날 때까지 연구원과 직원들은 모두 대기시키는게 좋을 것 같군요."

  ", 그러지요."

  "그리고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구죠?"

  ", 접니다."

  경비원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가 대답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게 한 50대 중반쯤은 되어보였다.

 

  "여기 근무잡니까?"

  ", 제가 지난 밤에 야간 순찰근무를 섰습니다."

  그는 마치 형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이 굳어 있었다.

  "몇 시에 현장을 발견했나요?"

  "오늘 새벽 7시 반쯤이었어요."

 

  조형사는 점퍼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수사노트를 꺼내더니 받아적기 시작했다.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요?"

  "....., 7시쯤 마지막 순찰을 돌려고 숙직실에서 일어나 현관문 바깥으로 나왔어요.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돌까 해서요."

  "그래서요?"

  "현관을 나서자마자 찬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기지개를 한 번 켰죠. 밖은 아직 어둑어둑 했는데 눈이 조금씩 내리더니 눈발이 아주 굵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담뱃불을 붙이고 나서 잠시 눈구경을 하느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3연구동쪽 정일준교수님 연구실에 여전히 불이 켜져 있더라구요. 바로 이 방이죠."

 

  경비는 고급인력만 근무하는 연구소 직원답게 당시 상황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주저함 없이 달변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조금 전과는 정반대로 대단히 차분했다. 오히려 그가 청산유수로 쏟아내는 말을 받아적고 있는 조형사의 손이 바빴다.

 

  "잠깐."

  갑자기 조형사가 그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경찰생활로 단련된 조형사의 귀도 경비의 달변 못지 않게 예리했다.

  "정박사를 교수라고도 부릅니까?"

  "그야, ...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경비가 대답을 제대로 못하고 주저하자 소장이 끼여들었다.

  "정박사는 원래 대학 교수예요. 우리 수성그룹의 연구가 크게 진척되자 그 성과를 깨닫게 된 정부가 이를 국가사업화 시키기 위해 정박사와 몇몇 연구원들을 이곳으로 발령했죠. 그래서 우리 수성그룹 부설 연구소의 '통신프로그램 연구개발팀'은 사실 국가기관이나 마찬가지예요. 아무튼 정박사는 여전히 K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신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조형사는 다시 경비에게 물었다.

  "그 또, 여전히 불이 켜져 있다고 했는데....... 어제 정박사는 야근이었나요?"

  "아니요, 정식 야근은 아니었어요. 퇴근 무렵에 숙직실에 전화를 해서는 늦게까지 작업 할 일이 생겼다고 하시더군요. 저야 야간 재소인원을 파악해야 하니까, 미리 알려준 정교수님이 고맙게 여겨졌죠."

  "혹시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고 있나요?"

  "그거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박사님들이야 연구하는게 일이니까......"

  "소장님도 모르시나요?"

  조형사가 이번엔 소장을 향해 물었다.

  "글쎄요, 최근에 연구하던 일은 마무리가 다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야근을 할 정도의 일이 뭔지 저도 그게 궁금하군요."

  ", 그 얘긴 나중에 하기로 하구요, 계속하시죠."

 

  조형사가 경비에게 고개를 돌려 진술을 재촉했다.

  "그래서 순찰을 도는 중에 한 번 들러봐야겠다고 맘을 먹고 저 바깥에서 노크를 하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더군요."

  경비는 손가락으로 출입구쪽을 가리키며 여유있게 말을 이었다. 조형사의 시선이 그 손가락을 따라 문쪽으로 갔다가 다시 경비의 눈으로 돌아왔다.

 

  "몇 번을 두드렸는지 모르지만 하도 대답이 없기에 문을 열었죠. 그대로 열리더군요. 경빕니다, 하면서 들어서는데......."

  "들어서는데 박사가 쓰러져 있더라는 거죠?"

  "네에."

 

  조형사는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경비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연구실을 한 번 휘 둘러봤다.

 

  조형사는 다시 경비원에게 당시의 정황을 물었다.

  "그럼 바로 지금 이 상태였겠네요? 뭐 그 후에 바뀐 사항은 없죠?"

  ", 그대롭니다."

  "그럼 신고도 직접 했나요?"

  ", 관리직으로 있는 박사님들이 아직 출근할 시간도 아니고, 댁에 전화하기도 좀 그래서 급한 마음에 수첩에 적힌 비상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상번호라는 게 뭡니까? 어디 그 수첩 좀 볼까요?"

  경비가 미적거리면서 소장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주라고 허락하는 모양이었다.

 

  '이 사람들이 뭐하는거야 지금, 뭐 그게 그렇게 대단한 비밀이라고?'

 

  조형사는 경비가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내민 수첩을 들여다봤다. 하단에 [수성그룹 부설 연구소]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고, 담배갑만한 크기의 얄팍한, 까만 수첩이었다. 열어보니 안쪽엔 연구부서명과 전화번호만 빼곡하게 쓰여져 있었다. 맨 뒤에 비상 연락처라고 쓰여진 곳에 전화번호 하나만 달랑 적혀 있었다.

  것도 아니네, 라고 속엣말을 하면서 조형사는 전화번호를 자기 수첩에 옮겨 적고 돌려줬다.

 

  ", 아저씨는 이제 볼 일 보시구요, 혹시 또 다시 부를 수 있으니까 오늘은 절대 연구소를 뜨지 말고 대기하세요."

  ",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경비는 머리까지 꾸벅 조아리고는 밖으로 걸어나갔다. 겉보기엔 달변에 당당해 보이지만 속으론 퍽이나 긴장한 모양이었다.

 

  "정형사, 지문은 다 떴어?"

  ", 이제 출입구 손잡이만 하면 다 끝나요."

  정형사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감식반 요원 명이 허겁지겁 들이닥쳤다. 그 중 한 명은 조형사와는 중앙경찰학교 동기였다.

 

  조형사가 먼저 알아보고 농을 던졌다.

  "이봐, 맨날 그렇게 늦어도 안 짤리냐?"

  "일찍 와봐야 자기네 설쳐대는 꼴만 보지 뭐 좋을게 있냐?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자기네가 다 알아서 해주는데 뭐하러 일찍 오냐, 힘들게?"

  박자도 머뭇거림이 없이 곧바로 받아치는 것이 말싸움에는 만만치 않은 상대같아 보였다.

 

  "넌 역시 입만 살아있구나. , 그 훌륭한 입 가지구 뭐 다른 거 할 거 없나 알아보는게 어때?"

  "다른 일 하고 싶어도 무식한 그대들 헤매는 꼴이 불쌍해서 내가 발을 못 뺀다."

  역시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알았어 알았어, 빨리 일이나 해라. 정형사 지문 뜬 거 일루 갖구와!" (계속)

 

포에버 21 <7회>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