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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1회> - 외부인의 침입과 내부인의 범행 가능성

writerjang 2023. 1. 8. 22:55

  중국집 꼬마가 퇴장하는 것으로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제일 먼저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은 역시 반장이었다.

  "양형사, 아까 현장조사에 대해 뭐 할 말 있어?"

  ", ......."

  양형사는 아직도 소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니면 현장조사에서 별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해선지 대답을 주저했다.

 

  "없으면, 얘기를 종합해보지."

  "반장님, ...... 자장면 다 붓겠는데요."

  언제 먹거리로 관심사가 옮겨갔는지 거구는 참을성 없게도 반장의 심각함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금방 끝나니까 마저 얘기하고 먹자구."

  조형사의 얼굴에 머쓱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늘 조사한 내용만 놓고 봤을 때 범인은 내부인일 확률이 높아. 굳이 외부에서 침입한 것처럼 흔적을 남기려고 어설프게 위장했다는 점 때문이지. 이건 전문가의 수법은 아니야. 그리고 외부인이거나 살인청부업자라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경계가 삼엄한 연구실을 살해장소로 택하지 않아도 되겠지."

  다년간의 수사경력에서 비롯된 반장의 추리가 청산유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사체에 나타난 칼자국은 단 한 방이었는데, 전문가가 아닌 담에야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양형사가 반장의 추리에 제일 먼저 반론을 제기했다. 방금 전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고 주저하던 대가를 치르려고 노리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대답은 반장이 아닌 조형사가 대신했다.

 

  "처음엔 나도 전문가의 솜씨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단 한 칼에 치명상을 입힐 수는 있어. 그건 살해 당시 범인과 피살자의 몸와 맘이 어떤 상태였고, 힘을 가한 방향과 강도, 그리고 피살자의 반항 정도 등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거든."

 

  "내부의 소행이라면 살인까지 한 이유가 뭘까요?"

  정형사의 질문이었다. 이번엔 반장이 대답했다.

  "내부 소행이 확실하다 해도 범행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 단순한 원한관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뭐냐, 정보통신 프로그램칩인가 뭔가를 빼돌리려다 들키니까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고......."

  "맞아요, 이번 사건이 그냥 단순한 살인사건과 다른 건 청에서도 관여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죠?"

  정형사가 아는 체를 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반장이 되물었다.

  "반장님, 정말 언제까지 저희를 속일겁니까? 다 알아봤습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잖습니까? 국가사업이란 말이 거론될 때부터 짐각이 갔다구요."

  조형사가 정형사 말을 거들어 반장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과장님이 안보이시네. 서장실에 불려 가셨나보죠?"

  정형사가 느닷없이 임과장 얘기를 꺼냈다.

  "아주 심각한 모양인가 보네. 여지껏 서장실에 계신다면....."

  조형사가 분위기를 잡았다.

 

  "자 자! 이제 그 얘긴 접어두고 밥이나 먹으면서 마저 얘기하지."

  드디어 반장 입에서 밥얘기가 나왔다. 코너에 몰리니까 잠시 숨돌릴 틈을 벌어보자는 의도로 보였다. 역시 거구 조형사가 제일 반가워했다. 볶음밥 그릇에 씌워진 비닐 랩을 언제 뜯어냈는지 남들이 그릇을 이리저리 돌리며 랩을 뜯느라 애를 먹고 있을 때 조형사는 벌써 첫 숫가락을 입에 떠넣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돼. 밀가루 가지곤 힘도 못쓴다니까."

  "아까 그 얘기, 시작하기도 전에 자네들 기운 빠질까봐 말 안했는데...... 우린 일단 범인 잡는데 주력해 보자구. 청에서 누가 나오더라도 어차피 범인은 우리가 잡아야 할 거야. 그리고 아니꼽더라도 좀 참고."

  "이번엔 시건방 떨면 가만 안놔두겠어."

  조형사가 단단히 결심이라도 하는 밥알을 씹어대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경험이 없는 양형사는 무슨 얘긴지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반장이 자장면을 몇 가닥 입에 대더니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까 연구소에서 인터폰으로 행정실에 물어봤더니 어젯밤 야근한 사람이 모두 4명이라는데, 그중에 정박사가 맡고 있는 정보통신 연구팀은 손중선이란 수석연구원이 야근을 했더군. 조형사가 이 사람하고 나머지 세사람 알리바이를 면밀히 조사하라구."

  "어제 숙직했던 그 경비원은 어떻게 할까요?"

  "맞아, 그 경비도 포함해서 모두 5명인가? 전부 조사하고, 특히 피살자하고의 이해관계나 원한관계가 없나 알아보고, 최근의 근황도 상세히 알아보도록."

  ", 그리고 어제 연구소를 방문한 사람들도 확인해 봐야죠?"

  "그럴 필요는 없어. 이 연구소는 외부인의 방문이나 면회가 일체 금지돼 있어. 물론 업무상 출입은 가능하지만 행정실 얘기론 어젠 방문객이 아무도 없었다는군."

  조형사는 반장의 주도면밀함에 내심 감탄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양형사가 막내답지 않게 반장을 곤란하게 하는 어려운 생각을 해냈다.

 

  "반장님, 그런데 꼭 외부인의 침입이 반드시 환기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문으로 들어온 방문객이 없었다 하더라도 범인은 담을 뛰어넘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밖의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침투가 가능합니다. 범인이 살해한 후에 환기통에 어설프게 위장함으로써 내부인의 소행으로 수사진을 집중시키고 혼선을 빚어내기 위한 한 단계 더 전문가적인 수법일 수도 있잖습니까?"

 

  앞을 내다보고 추리를 펼치는 양형사에 대해 조형사와 정형사가 놀라는 눈치였다. 그들은 어떻게 막내가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하고 감탄스런 눈빛으로 동시에 양형사를 쳐다보았다. 조형사는 언뜻 양형사가 아마추어 바둑 1급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속으로 '역시 고수야' 하고 속엣말을 했다.

 

  반장도 순간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 내부인의 소행으로 단정짓고 추리를 시작한 것에 대한 허점을 지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장은 역시 노련했다.

 

  "아주 좋은 지적이야.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아무리 경비가 철통같다 해도 언제든 뚫릴 수가 있는 법이거든. 우리가 너무 한 쪽으로만 단정짓고 출발했던 것 같아. 내부인이든 외부인이든, 이해관계나 원한관계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를 시작하자고. 그러니까 굳이 살인을 해야만 한 까닭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테고 우린 여기에 집중해야겠지. 조형산 이 점에 유의해서 우선 아까 말한 5명을 면밀히 조사하고....... , 그리고......."

 

  반장이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반장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신출내기가 이 정도였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반장은 잠시후 정신을 바로 잡고 이번엔 정나리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정형사는 연구소 소장을 다시 한 번 만나봐. 구체적으로 정박사가 연구한게 뭔지, 연구 결과에 따라 직접적인 손해를 보게되는 집단이 있는지, 아니면 반대로 ......"

  ", 소장도 만나야겠지만 연구원들을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들이 같이 연구하고 생활했을테니까 소장보단 더 잘 알겠죠."

  "그래, 좋은 생각이야. 무엇보다 그 연구결과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라구.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해득실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자구. 그리고 난 정박사 유가족들을 만나볼테니까."

  "반장님, 그럼 저는......"

  반장이 아무런 지시가 없자 양형사가 먼저 물어왔다.

 

  "자넨, 일단 내부에 있다가 감식반에 가서 지문감정 결과를 받아오고, 아까 조형사가 말한 그 필름도 빨리 뽑아오도록 해. 그리고 사체가 지금쯤 국과수에 넘겨졌을 테니까 그것도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아보고."

  "."

  ", 그럼 다들 먹었으면 움직이자고. 좋은 결과 기대하겠어. 열심히들 뛰자고!"

 

  반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반장도 뒤따라 일어섰다. 양형사는 빈그릇을 회의실 한쪽 구석으로 몰아 놓고 신문지로 덮어씌웠다. 반장이 지갑을 꺼내더니 밥값을 탁자 위에 던지며 영수증을 받아두라고 양형사에게 일러두곤 홀연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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