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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0회> - 사건현장 초동수사 후 첫번째 회의

writerjang 2023. 1. 8. 10:17

  "어떻게?"

  "책상 밑바닥엔 먼지가 조금 쌓여 있었는데 자국이 그 위로 나 있더군요. 오래전에 생긴 자국이라면 먼지가 덮어버렸겠죠."

  "그래? 그건 아주 민완답게 잘 본거야."

 

  반장이 자신에게 민완이란 칭호를 붙여주자, 조형사는 기분이 퍽이나 좋았는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반장 앞이건 말건 아예 후배형사를 큰소리로 불러가며 명령까지 했다.

  "사진기로 촬영까지 해뒀어요. 양형사, 이따가 그 필름 뽑아와!"

  "....."

 

  "그러면 자넨 그 자국을 보면 범인이 누군지도 알겠네?"

  그런데 이건 비아냥거림인가. 다시 반장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아니, ......"

  "그래서 자네는 문제야. 하난 알고 둘은 모른다고."

 

  다시 반장의 꾸지람이 시작됐다.

  "그 자국을 보면 범인은 환기통으로 침입한게 아니잖아. 그게 바로 살해 후에 책상을 끌어다 환기구 안에 위장한 흔적이잖아. 환기통로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면서? 나도 봤지만, 범인이 환기통으로 침입했다면 먼지 위로 범인이 지나간 흔적이 있어야겠지."

  "........."

 

  후배들 앞에서 반장에게 다시 한방 얻어맞자 부끄러웠던지 조형사는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수사노트만 여기저기를 넘겨가며 뭔가 찾는 했다.

 

  "정형사는 건물 외곽을 살펴봤지?"

  ", 건물 주변엔 별다른 사항은 없었고, 굴뚝처럼 생긴 환기통로 배출구가 옥상으로 나 있었는데 역시 덩그러니 열려 있었습니다. 그것도 안쪽엔 스크린 철망, 바깥엔 빗살무늬의 블라인드 철망으로 된 이중 배출구였는데 모두 떼어내 바닥에 던져져 있었습니다."

 

  정형사가 보고를 시작할 때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고, 대답도 하기 전에 중국집 철가방이 들이닥쳤다. 모두에게 낯이 익은 꼬마였다.

  "자장면 왔습, ......."

  문쪽에 앉아 있던 양형사가 벌떡 일어나 재빠르게 꼬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나무라고, 야단치고, 알아듣겠끔 말했는데도 이 놈은 어찌된 일인지 제 버릇을 고치질 못했다. 놈은 경찰서를 마치 자기 집 안방 드나들 듯 마음대로 들어오는 아마도 유일한 외부인일 것이다.

 

  그래도 다른 몰라도 이렇게 심각할 주책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말단 양형사가 도리어 무안해 했다. 놈은 안색도, 표정도 하나 변하지 않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배출구 쪽으로 침입한 흔적은 찾아봤어?"

  "잘 살펴봤는데, 사람이 들어간 흔적은 전혀 없었어요."

  "그래, 배출구는 범인이 살해 전에 미리 열어 놓았을 가능성이 높아. 아니면 연구소측에서 본래 배출구쪽 두껑은 항상 열어놓을 수도 있고."

  "그래서 연구소 행정실에 알아봤더니, 배출구 뚜껑은 비나 눈이 들이칠 위험 때문에 일년내내 꼭 닫아 놓는답니다. 가끔 청소부들이 청소할 때 뚜껑을 열고 먼지를 닦아내는 모양인데 끝나면 반드시 원위치시켜놓도록 일러뒀기 때문에 절대 열려있을 리가 없답니다."

  "그래? 그밖에 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종합해 보자구. ,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형산 할 말......"

  반장이 양형사에게 의견을 물어보려고 문가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형사들도 같은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양형사와 실갱이를 벌이고 있던 꼬마가 큰소리로 떠들었다.

  ", 수금을 나중에 하라는 게 말이 돼요? 맨날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한 달이 넘은 적도 많잖아요? 그릇 찾으러 오면 아무도 없고!"

 

  마치 꼬마가 양형사를 나무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멀거니 서 있는 양형사 키의 절반이 조금 넘는 꼬마가 더 어른같아 보였다. 하기야 경찰서 출입한 짠밥 수로 따지면 양형사 보다는 꼬마가 고참도 한참 고참일테니까. 이제 겨우 12살짜리 꼬마는 어느새 애늙은이가 다 되어 있었다.

 

  "아 글쎄......, 조금 있다 그릇 찾으러 올 때 준다니까......."

  "아무튼 금년도 우리 대성반점의 영업방침이니까 따라주세요."

 

  놀랍게도 꼬마가 중국집의 영업방침까지 들먹였다. 주인이 교육을 엄하게 시켜선지 관공서가 많은 주변 환경 때문인지 꼬마는 공무원 특유의 말투까지도 흉내내고 있었다.

 

  다들 큰소리를 치며 당차게 나오는 꼬마의 대담함에 웃음을 참을 없었던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꼬마는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오히려 양형사가 얼굴이 빨개지며 더 수줍어 했다.

 

 

  "얌마, 조용히 하고 영수증이나 내봐!"

  고참답게 조형사가 수습에 나섰다.

 

  "빈 것 밖에 없는데요?"

  "얼만데?"

  "만 천원요."

  "자장면이 얼만데?"

  "아직 그것도 모르세요? 25백원요."

  꼬마가 당연하다는 대답했다.

 

  "다른 건?"

  조형사가 따지듯이 캐물었다.

  "짬뽕하구 볶음밥은 3천원요."

 

  조형사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랐다. 갑자기 험악한 표정으로 꼬마를 윽박질렀다.

  "야 임마, 너 깜빵 구경 한 번 해볼래?"

  "왜요......?"

  "이 놈이 어디서 사길칠려고 들어, ?"

  "맞는데......"

 

  고래고래 소리치는 거구 앞에 꼬마는 기가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여전히 자기가 옳다고 빡빡 우겼다. 웬만해선 꺾이지 않을 기세였다. 조형사의 입이 더욱 거칠어졌다. 방금 전에 반장에게 당한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 자식이! 너 임마 여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덴줄 알아?"

  조형사는 손까지 들어 올리고 따귀라도 후려칠 기세였다. 꼬마가 손을 들어 방어자세를 취했다.

 

  "너 임마, 니네 사장이 아이--에프라고 음식값 내린 거 내가 모를줄 알아?"

  "........."

  "양형사, 거기 전화해서 사장한테 물어봐."

  ", 안돼요......"

  "이것 봐아. 양형사 이 놈 감방에 처넣어버려."

 

  그제서야 꼬마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하지만 꼬마는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동안 형사들마다 수차례나 감방맛을 봐야한다고 겁을 줘왔고, 그때마다 꼬마는 눈물로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비비는 꼬마의 비굴한 행동으로 사건은 항상 종결이 나곤 했다. 꼬마도 형사아저씨들이 그냥 자기를 겁만주려고 그러는줄 뻔히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꼬마는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그래도 절차는 절차니까.

  "아저씨, ......, 잘못했어요....... 흐흑, 다신 안그럴께요."

  "이젠 안통해 임마! 넌 콩밥 좀 먹어봐야 돼!"

  "아저씨......"

  꼬마가 거구한테는 안되겠던지 갑자기 반장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그 와중에도 놈은 반장이 제일 높은 사람인줄은 아는 모양이었다.

 

  "조형사 그만하지, 잘못했다잖아."

  역시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순간적으로 꼬마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쳤다. 그런 꼬마의 표정은 비굴하다 못해 야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냥 두면 안돼요, 이런 놈은!"

  반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형사가 행동으로 옮겼다. 또 정형사였다. 반장의 명령이나 반장의 심기에 제일 눈치 빠르게 반응하는 사람은 언제나 정형사였다. 반장은 지금 심각한 문제를 앞에 놓고 사소한 일 때문에 방해받는 걸 꺼리는 눈치였다. 정형사는 꼬마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고는 문쪽으로 떠밀었다.

  ", 빨리 가. 음식값은 이따가 영수증 가져와서 받아가. 알았지?"

  "!"

 

  꼬마는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높은 톤으로 대답도 잘했다. 정형사는 그런 꼬마가 능글맞게 느껴졌다.

 

  "쯧쯧......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애들까지 저렇게 속물로 변해가는지, ......"

 

  꼬마와 음식값 소동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반장이 문을 열고 나가는 꼬마의 등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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