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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2회> - 살인사건 보다 더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

writerjang 2023. 1. 9. 23:58

5: 출동

 

  동찬은 경찰청 주차장 한쪽 구석에 주차해 놓은 차를 가지러 갔다. 무려 2년 동안이나 그대로 세워놓았는데 시동이나 제대로 걸릴지 궁금했다.

 

  역시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쪽은 그런데로 멀쩡했는데 중앙으로 노출된 쪽은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많았다. 다른 차들이 드나들면서 낸 상처가 분명했다.

 

  그래도 2년 동안에 이 정도 상처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면서 원격시동 리모트컨트롤 1번 스위치를 눌렀다. '삑삑' 소리를 내면서 도어잠금장치가 풀렸다. 다행히도 배터리는 멀쩡한 모양이었다. 2번 시동스위치를 눌렀다. 트렁크를 열고 먼지떨이를 꺼내 들었다. 차 윗 부분부터 먼지를 털어나갔다. 앞 유리, 보닛, 운전석 쪽 창과 문짝을 순서대로 털어내면서 초읽기를 시작했다.

  ", , , , , , 사삼이일...... !"

 

  차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동찬은 여태 초읽기에 실패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 소리와 함께 '찰칵, 부르릉......' 소리가 이어지면서 시동이 잘도 걸렸었다. 원격 시동스위치를 누른 뒤 딱 1분이면 거짓말 같이 차에 반응이 왔었다. 드디어 문제가 발생했다.

 

  차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키를 꼽고 돌렸다. '딸깍' 소리만 나고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했다. 여전히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10년전 경찰대를 졸업하고 현직으로 임용되면서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차였다. 아버지는 경찰이라면 무엇보다 기동력이 우선이라며 굳이 스포츠카를 권했다. 그것도 빨간색을. 그 때 벌써 칠순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아버지는 유난히 세련된 사람이었다. 덕분에 처음 일년동안 차는 출근용이라기 보다는 야유회 전용으로 쓰였지만. 틈틈이 다니던 낚시 전용으로.

 

  누나가 있긴 하지만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인 그에게 경찰만큼은 안된다며 극구 말리던 아버지가 경찰대학에 합격하고, 성적이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자 이내 포기했는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래도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는 그다지 달가와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졸업식 , 기대도 안했던 아버지가 식구들과 함께 식장에 모습을 나타냈고 수석으로 졸업한 그를 격려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놀라웠던 일은, 식을 마치고 식구들을 끌고 데려간 데가 바로 자동차영업소였다는 데 있었다. 그 때 아버지가 던진 한 마디는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나라에 바치니 가슴이 다 뿌듯하다"는 그 한마디를.

 

  다시 키를 돌려보았다. 이번엔 처음보단 반응이 조금 좋아졌다. '딸깍' 소리가 '끼리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소리가 점점 부드럽고 길어졌다. 이제 한 번만 더 돌리면 걸릴 것도 같았다.

 

  그러나 무리는 금물. 그냥 놔두고 차 바깥으로 나왔다. 먼지를 마저 털었다. 보닛을 열어보았다. 배터리 색깔은 초록색이 확실했다. 그동안 방전되지 않고 버틴 게 기특했다. 배터리 케이블을 점검하고 느슨해진 부분을 다시 잘 조였다. 다른 부분도 자세히 들여다 봤다. 급한대로 부동액 대신 물을 채웠다. 당장에 얼어붙진 않을 테니까. 이제 대강 응급조치는 된 셈이었다. 미국 연수가 이런데까지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대부분 자가운전자인 미국에선 간단한 자동차 점검은 필수였다.

 

  다시 차에 들어가 키를 돌렸다. 두어번 '크르릉' 대더니 거짓말 같이 시동이 걸렸다. 머플러에서 시커먼 매연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색깔이 점점 엷어지더니 연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차 소리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넌 나의 훌륭한 백마야. 아니, 적토마야!"

  2년만의 외출 준비가 이제서야 다 끝났다. 어디서 이런 여유가 나오는지 자기 자신도 신기할 정도였다. 국장이 시급한 일이라고 당부했고, 특수과에서 조사한 결과보고에서도 결코 쉽사리 풀릴 사건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도 마음엔 여유가 있었다. 자신감일까?

 

  아무튼 문제는 심각하게 생겼다. 이제 곧 맞이하게 될 21세기. 이미 새천년의 서막은 올랐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기 까지는 일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그 동안 국민이 힘을 합해 노력해온 경제발전이 강대국의 가벼운 입김 하나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처참한 경험도 했다. 자립경제건설을 위해 온갖 힘을 기울여왔지만 아직은 선진국 대열에 오르지 못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노력만큼 현실은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

 

  이러한 차에 정부가 앞장서 새로운 세기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사상누각을 벗어나 보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자 온 국민의 염원이었다.

 

  정부는 시작을 정보통신산업 분야에서 찾으려 했다. 이를 통해 21세기 국가발전의 단초를 마련하고 나아가 최첨단 산업분야를 통틀어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

 

  그런데 바로 결실을 눈앞에 두고 어이없는 사건이 터졌다. 정보통신산업의 핵심이랄 수 있는 종합정보통신망 구축의 승패를 결정할 통신 프로그램 칩 '포에버 21'.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원대한 꿈의 한국을 건설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될 프로젝트.

 

  그러나 '포에버 21'이 미처 생산에 돌입하기도 전에, 연구개발의 완성을 앞두고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 프로젝트의 총책임을 맡고 있던 박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특히 프로그램에 신경쓰라.'

  국장이 자신에게 당부했던 말이 생생하게 동찬의 뇌리를 울렸다. 우선 연구소에 들러 그들이 완성했다는 '포에버 21'에 문제가 없는지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소장실은 연구소 행정동 2층에 있었다.

 

  "아까 전화드린 경찰청 서동찬입니다."

  "....... , 앉으시죠."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봐선 영락없는 학생인데 경찰이라니, 하는 눈초리로 소장이 그를 쳐다봤다. 소장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연구소에 이런 일이 벌어져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 아직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박사가 일을 당했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아요."

  소장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같았다.

  "어떻게 우리 연구소에서 이런 일이......."

 

  그런데 소장의 충격은 정박사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가 책임자로 있는 그룹 연구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정박사님이 연구하고 있던 내용이 구체적으로 뭐였습니까?"

  동찬의 질문이 시작됐다. 소장은 먼저 한숨부터 크게 한 번 쉬고 입을 열었다. 그 사이 동찬은 노트북컴퓨터를 켜고 타이핑 준비를 끝냈다.

 

  "잘 아시다시피 정박사는 정보통신산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수성그룹에서는 벌써부터 이쪽 분야의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이번에 정부시책과 맞물려 더욱 확실한 사업 프로젝트가 나오게 됐고 특별연구팀을 꾸려 은밀히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어요. 물론 이쪽 방면의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저희 수성 만큼 앞서가는 기업은 없습니다. 오죽하면 정부에서도 저희 연구프로젝트에 주목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오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저희 정보통신연구팀의 프로젝트는 국책사업이나 다름 없다고 볼 수 있죠."

  "다른 기업과 어떤 점이 다르다는 겁니까?"

  "글쎄요....."

  소장은 대답을 박자 늦췄다. 소장이 다시금 동찬의 눈을 바라봤다. 망설이는 눈치였다.

 

  "다 말씀드려야겠지요?"

  "."

  "워낙 대외비로 추진돼왔기 때문에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되는 내용이라서......."

  "네에....., 언론이 어디까지 파고들지 모르겠지만 제겐 다 말씀하셔도 보안은 반드시 유지될 겁니다."

  "그럼, 믿고 말씀드리지요."

 

  소장은 마음을 가다듬느라 잠시 뜸을 들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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