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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4회> -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돼버린 프로젝트

writerjang 2023. 1. 10. 09:03

  동찬이 소장실 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갔다. '' 하고 문닫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바로 그때, 동찬은 미모의 아가씨와 문밖에서 마주쳤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맞닥뜨렸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시선이 순간 상대방의 눈동자에 고정됐다.

 

  정형사는 사내가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오자 마치 자기가 남의 말을 엿듣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스러웠다. 동찬은 자신의 흥분한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무안해졌다.

 

  동찬이 먼저 정신을 수습했다. 그냥 모른 체 하고 가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미모였다. 노총각 동찬의 끼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동찬은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지금은 취재하기 어려울 거요. 소장은 지금 상태가 별로예요."

  "상관없어요."

  정형사의 쌀쌀맞은 대답이었다. 속으론, 벌써 기자들이 냄샐 맞았나,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두 사람은 모두 상대방을 기자로 착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복장이 경찰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캐주얼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를 던지고 동찬은 웃으며 횡하니 가버렸다. 미모의 아가씨가 문앞에서 노크를 하고, 대답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

 

  뭔가 문제가 생겨도 단단히 생긴 모양이었다. 소장이 프로그램 얘기만 나오면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국가기밀 운운하며 애써 숨기려는 것도 이상했다. 완성된 것도 아니다, 도난당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프로그램이 어찌됐다는 건가. 정부에서 내려왔다는 문서철은 일단 챙겨오긴 했지만 그것만 가지곤 프로그램의 행방에 대해선 큰 도움이 되지 않을게 분명했다.

 

  소장실 복도 끝을 지나 코너를 돌자마자 동찬은 담배를 뽑아 물었다. 왼쪽 바지 주머니에서 콜트권총 모양의 터보 라이터를 꺼내들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불이 잘 붙지 않았다. 가스가 다 된 모양이었다. 별게 다 말썽이네, 하면서 위아래로 두어번 흔든 뒤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열선에 불꽃이 엷게 피었다. 금방 꺼질세라 얼른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다. 다행히도 담배에 불이 붙었다.

 

  벌써 5년 넘게 들고 다니는 라이터다. 그것도 동찬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만난지 꼭 백일째 되는 날 은미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그녀는 곁에 없어도 라이터는 늘 그의 곁에 붙어다녔다.

 

  총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돈데 남들은 동찬만 생각하면 총이나 경찰이 연상되는지 그에게 들어오는 선물은 모양이거나, 총이 그려진 것, 유명한 경찰영화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들 뿐이었다. 권총 열쇠고리, 장총 액세서리가 붙은 지갑, 카우보이 총잡이가 그려진 손수건, 심지어는 로보캅 그림의 면티를 선물하는 짓궂은 친구들도 있었다.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힘껏 내뱉는 순간이었다.

  "아니 거기 뭐하는거요!"

  서릿발 같은 고함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경비원이었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는데 언제, 어디서 나타난 건지 동찬은 어안이 벙벙했다. 여기 경비원들은 목소리로 뽑나? 고함소리 하나는 아주 쓸만했다.

 

  "저기 금연이라고 써붙인 거 안보여!"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동찬의 모양새를 보더니 기세가 등등해진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경비원은 다짜고짜 반말로 쏘아붙였다.

 

  ", 예 그렇군요. 그럼 꺼야죠."

  동찬은 복도 바깥으로 창문을 열어 담배불을 튕겨내고 꽁초를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쓰레기 통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던 경비가 이내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틈을 노려 동찬이 경비에게 말을 꺼냈다.

  "아저씨, ..... 여기 정일준 박사 연구실이 어디죠?"

 

  경비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경비는 어젯밤에 불상사를 당한 정박사 얘기를 이제 막 듣고 온 참이라 연구실 위치를 묻는 동찬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아니, 거긴 왜......"

  ", 뭘 좀 조사할게 있어서요."

  '조사......?'

  경비는 '조사'라는 말에 덜컥 겁이났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반말이 쑥 들어갔다. 아마도 '수사'라고 표현했으면 기절했을 지도 모르겠다.

  "혹시...... 형삽니까?"

  "아 네, 그래요."

  얼른 무안한 순간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경비원은 창문쪽으로 그를 이끌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이 제3연구동이며 그 건물 3층 한가운데쯤 연구실이 있다고 알려줬다.

 

  동찬은 행정동 현관을 빠져나와 경비가 알려준 연구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해는 이미 기울어 바깥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경비원이 말해준 제3연구동은 3층 중앙 몇 군데만 불이 켜져 있었다. 살인사건 현장이라면 의레 며칠동안은 경찰병력이 투입돼 경계를 서고 현장보존을 하는 게 마땅하련만 오늘은 벌써 병력이 철수했는지 건물입구는 개방돼 있었다. 동찬이 손목시계의 램프스위치를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5시가 넘었다.

 

  복도에도 역시 경계를 서는 병력은 없었다. 소장과의 대화를 곰곰이 되새기며 여러가지 상상을 하는 사이 '통신프로그램 연구개발팀'이란 팻말이 붙어있는 방까지 걸어왔다.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신통하게도 손잡이는 쉽게 돌아갔다. 문을 조금 열고 안을 들여다 봤다. 마치 컴퓨터 도서관 같은 느낌을 주는 방이었다. 책상이 몇 줄로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엔 컴퓨터와 갖가지 주변기기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컴퓨터는 모두 전원이 켜져 있었다. 모니터엔 화면보호기가 작동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국가사업을 다루는 곳이 이렇게 허술할 수가...... 외부인의 출입이 일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정문 출입은 어렵더라도 막상 건물 내부에선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반 기업체에 국가사업을 맡긴 허점이 이런 데서 나타나는 모양이라고 동찬은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와 다시 정박사 연구실을 찾아보았다. 3층 중간쯤이라 했는데....... 복도를 몇 번씩이나 왔다갔다 했는데도 정박사 연구실은 없었다. 물론 팀장실이라는 팻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연구팀 좌우의 방을 들여다 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옆방에서 열댓명의 젊은 연구원들이 확자지껄하며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의 얼굴엔 근심이 서려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하면서 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동찬이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 여기가 정일준 박사 연구실 맞죠?"

  ", 그렇습니다만."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네에, 들어가보시죠."

  "저 잠깐만......."

  동찬이 돌아서 가려던 연구원들을 불러세웠다. 그들은 발길을 멈추고 상기된 눈빛으로 동찬을 쳐다봤다. 동찬이 연구원 중 한 사람을 바라보며 넘겨짚어 말했다.

  "프로그램에 발생한 문제는 해결됐습니까?"

  젊은 연구원은 경찰이라고 밝힌 사람이 이미 알고있는 얘기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요, 아주 심각하게 됐어요. 지금 손박사가 방법을 찾고있긴 한데, 워낙에 심하게 감염돼서......."

 

  동찬은 연구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감염'이란 단어를 재빨리 머릿속에 새기며 '소장이 말하길 꺼리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손박사라면 수석연구원 말씀이죠?"

  ", 지금 안에 계세요."

  "그 양반 이름이 손......"

  "손중선입니다.

  ", 그렇죠? 손중선 박사?"

 

  동찬은 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엔 한 사람만 남아있었다. 바이러스와 한바탕 전쟁이라도 벌일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손중선 박사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깊숙히 묻고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엔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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