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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6회> - 슬픔을 찾을 수 없는 영안실 분위기

writerjang 2023. 1. 10. 21:23

 반장은 곡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런 일을 당하셔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

 

  곡을 때와는 달리 그녀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당돌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누구시죠?"

  ", 이거 결례를 저질렀군요. 저희는 청량리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 고생하시네요."

  뭔가 불만이 섞인 말투였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불만인지 아니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기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반장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잠깐만 협조를 해주십시오."

  ", 말씀하세요."

  "바깥양반에 대한 얘깁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했다거나, 누군가와 좋지 않은 일로 다투거나 한 적 혹시 없습니까?"

  "글쎄요....... 그 양반이 어디 누구와 싸울만한 성격이어야죠. 잘 모르시겠지만 그 양반은 별로 말도 없고 별다른 재미도 없이 그저 일만 아는 그런 사람이예요."

 

  그녀의 대답으로는 남편의 성격이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뭔가 불만 섞인 어투로 대답을 할 뿐이었다. 더구나 자기 남편에 대한 얘긴데도 줄곧 존칭없이 하대하는 말투였다.

 

  "그렇다면 최근에 바깥양반이 평소와는 좀 다른 것 같은, 예를 들어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든가 뭔가 고민스러워 한다든가, 뭐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아니, 어제 저녁 9시쯤에 전화를 해서는 연구소라고 하면서 일이 좀 남아 늦겠다구 하더군요. 무슨 일이 또 남았냐고 했더니, 그냥 그런 줄 알라고 그러더군요. 일에 지쳤는지 목소리가 통 기운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녁식사는 했냐고 물었더니, 간단하게 했다고 그러더군요. 어쨌든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고, 좀 횡설수설하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 처음엔 좀 늦겠다더니 다시 오늘은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 저녁식사도 간단히 했다더니 나중엔 배가 고프지만 지금은 먹을 수가 없다는 둥 밑도끝도 없이 왔다갔다 하더라구요."

 

  반장은 수사노트에 '야근 중 과민반응, 연구작업 내용 조사 요(')라고 간단하게 메모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아십니까?"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단지, 어제 아침에 출근할 땐 바쁜 일이 끝났으니 오늘부턴 일찍 들어오게 될 거라고 그러더니......."

 

  반장은 수사노트에 적었다. 연구결과에 문제점 여부 조사 요, 라고. 수사노트에 메모하다말고 반장은 '초고속정보통신 프로그램'이란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반장의 질문이 계속됐다.

  "바깥양반의 대인관계는 어떤 편입니까?"

  "글쎄요, 성격상 누구에게 해를 끼칠만한 위인도 못 되고, 그렇다고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예요. 지금껏 십년을 같이 살았지만 집에 친구 한 번 찾아 온 적이 없어요."

  "그렇군요."

  ",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붙들려 있어야 하죠?"

  여자는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장에게 마디 쏘아붙였다.

 

  "아 네, 다 끝났습니다. 협조 고맙습니다. 부족한 건 다음에 또 찾아 뵙고 말씀듣죠."

  반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여자의 행동을 바라보며 반장은 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

 

 

  양형사가 운전하는 차로 청량리서로 돌아가는 길에 반장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박사의 미망인은 왠지 상을 당한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상복을 입고 있고 곡을 구슬프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딘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이 배어있었다.

 

  "반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 아니야 아무것도. 그나저나 자넨 그 가정부 아주머니한텐 좀 물어봤나?"

  ", 그런데 그 집안은 영 정상이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아줌마가 뭐라는데?"

  "정박사 부부는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론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답니다. 아침 저녁 식사시간을 빼고는 제각각이었답니다. 아주 형식적인 대화만 빼고는 웃고 떠드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양형사의 얘기를 들으며 반장은 그래서 그렇게 여자가 냉랭한 태도를 보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아줌마는 거기서 일한지 얼마나 됐대?"

  ", 올해로 5년째랍니다."

  ", 꽤 오래 있었군......."

  "아줌마 얘기론 두 사람이 다 외도를 해왔답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게 두 사람이 다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모른 체하고 서로를 간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반장은 기가 차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도 있나? 차라리 갈라서든가........"

  "문제의 발단은 정박사가 3년 전에 외도를 하다 여자한테 들켜 이혼을 하네마네 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여자가 맞바람을 피우게 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랍니다. 정박사의 외도는 3년전에 발각됐을 뿐이지 그 여자를 알게 된 건 꽤 오래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골치아프게 됐군."

  반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하더니 양형사에게 말했다.

  "그 상대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물어봤나?"

  ", 그런데 아줌마도 정확히는 모른답니다. 다만, 부인이 없을 때 웬 남자한테 전화가 걸려와 연락처를 남겨뒀답니다. 집에 가면 알 수 있다고 해서 나중에 제가 다시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박사가 사귀던 여자는 누군지 이제 어떻게 알아내나?"

  "정박사와 부인이 한바탕할 때 들리던 얘기로는 당시 대학 3학년에 다니는 제자라는 것 같았답니다. 이제 겨우 3학년짜지 새파란 것하고 놀아나, 하면서 부인이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주방까지도 들렸답니다."

  "3년전이라면 지금은 관계를 끊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나?"

  "아니요, 아줌마 얘기론 여전히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답니다."

  "그럼, 정박사 수첩이나 뭐 그런델 뒤지면 그 여자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제 생각엔 정박사가 그렇게 위험스런 짓은 하지 않을 것 같고 아무래도 휴대폰 메모리 같은데 단축키 정도는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 그건 양형사가 알아내서 그 여자를 한 번 만나 보도록 하지."

 

  양형사가 반장을 놀라게 했다. 요즘 신세대들은 별 걸 다 알고 있군, 하고 반장은 마음 속으로 감탄했다.

 

  "반장님, 그리고 그 정박사 부인은 원래 강남 졸부의 외동딸이었답니다. 학력은 전문대졸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것도 돈으로 넣은거랍니다. 어딘가 정박사하곤 어울리지 않는 점이 너무 많습니다."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그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가 아주 궁금해. 나중에 그것도 한 번 알아보자구."

  반장은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시계를 들여다봤다. 오후 7시였다. 8시까진 아직 1시간 남았다. 반장이 고개를 들고 차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는 눈치였다.

  "난 저 앞에 내려주고 자네 먼저 들어가. 그리고 모두들 들어오면 대기시키고. 8시에 회의 할테니까."

  ", 알겠습니다."

 

  양형사가 차를 세우자 노반장이 내려 걸어갔다. 양형사는 반장이 어딜 가나 궁금해 잠깐동안 지켜보고 서 있었다. 반장이 서점으로 들어갔다. 양형사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둥하더니 이내 차를 출발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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