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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7회> - 경찰청 파견 수사관 공조수사 합류

writerjang 2023. 1. 12. 00:21

  오후 8. 형사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반장이 정각에 형사과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장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손에 조그만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쇼핑백을 자기 책상 밑에 내려놓고 난 뒤 반장은 회의실로 들어왔다.

 

  수사회의가 시작됐다. 20여분 동안 각자가 조사한 내용을 브리핑했다. 모두의 조사내용을 다 듣고 나서 반장이 말을 꺼냈다.

  "다들 잘 들었고, 이제 조금 있으면 청에서 이번 사건에 투입된 사람이 올텐데 그 때 다시 자세하게 얘기하자고."

  "지금 온답니까?"

  조형사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일단 이번 사건에 대한 공조수사에 대해 논의할 모양이야. 와봐야 알겠지만, 오늘 회의는 역할분담 때문인 것 같아."

  반장의 얘기를 듣고 있는 형사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긴장감과 함께 어떤 인물이 올까, 하는 궁금함이 어우러진 표정들이었다.

 

  정확히 30분에 회의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감의 절정. 회의실 문을 연 사람은 임과장이었다.

  그 뒤를 따라 나이가 꽤 젊어보이는 사람이 들어왔다. 꼭 학생같은 옷차림을 하고는. 임과장이 그를 경찰청 서동찬 경감이라고 소개했다. 마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전학 온 학생을 소개하는 것처럼.

 

  긴장하고 있던 형사들은 임과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경감'이란 단어를 제대로 들었는지 자기 귀를 의심하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맞는지 확인하는 모습들이었다. 첫 대면부터 놀래키는 사람이었지만 형사들은 그의 캐주얼한 차림새에 다소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생각과는 달리 부담없는 옷차림새였기 때문이었다.

 

  정작 놀란 사람은 정형사였다. 초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놀라긴 동찬도 마찬가지. 오늘 낮 연구소 소장실 앞에서 마주칠 땐 둘 다 서로를 신문사 기자로 착각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놀란 이유가 판이하게 달랐다. 정형사는 동찬에게 쓸데없이 쌀쌀맞게 군 자신이 뒤늦게 후회스러운 눈치였다. 반면 동찬은 우선 미모의 여인이 다루기 까다로운 기자가 아니라 바로 한 집 식구였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반가웠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통해 뭔가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좀 다른 꿍꿍이가 일순간 떠올랐기 때문에 우연아니 우연으로 만들어진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임과장이 물러가고 회의가 시작됐다. 반장과 서경감 중 누구에게 지휘권을 부여한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임과장이 그냥 그대로 나가 버렸다. 알아서 하려니 하는 건지.........

 

  방 주인 답게 노반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함께 일을 하게 돼 반갑습니다."

  ", 반갑습니다. 저는 서동찬이라고 합니다."

  동찬이 먼저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반장이 조형사부터 시작해 형사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그리고 반장은 마지막으로 자기 이름과 직책을 밝혔다. 조형사는 영 떫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찬이 반장에게 예의를 차리는 한마디를 했다.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 말에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예상밖으로 겸손함을 보이고 있는 경찰청 사람에 대해 형사들은 긴장감이 봄눈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상황은 아니었다. 반장이 동찬을 한 번 바라보고 나더니 먼저 화두를 던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반장의 말투가 평상시와 달리 좀 어색했다. 형사들이 모두 동찬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동찬은 자기의 존재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저를 너무 의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 사건을 맡았을 때 하시던 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회의 뿐만 아니라 사건 수사도 마찬가집니다. 아마 저를 여기에 지원나온 병력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러면 경감님은 저희와 함께 움직이시는 겁니까? 예를 들면 역할 분담이랄까, 뭐 그런 걸로 반장님께 명령을 받고 수사하게 되는 겁니까?"

  양형사가 의문사항을 질문했다.

 

  "그건 아닙니다. 저는 경찰청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수사의 초점도 좀 다릅니다. 물론 초점은 여기나 저나 범인을 잡아내야 한다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정박사가 연구했던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 겁니다. 예컨대 프로그램이 파괴된 이유라든가, 도난을 당했다면 그 행방이 어디며 또 누가 그랬는가 하는 걸 밝혀내는 일입니다. 물론 파괴든 도난이든 살인범이 저질렀을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에 결국은 범인을 체포하는 것으로 귀결되겠지요. 결국은 접근 방법이 다를 뿐이지 사건의 종결은 같아질 겁니다."

  동찬의 장황설에 모두들 어리둥절해 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반반이었다.

 

  "제가 너무 두서없이 말씀드려서 좀 헷갈리시죠? 워낙에 말주변이 없어놔서......"

  동찬의 겸양떠는 말에 모두들 엷은 미소를 띄우며 분위기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형사가 의문점을 털어놓았다.

 

  ", 그러면 만약에 저희들이 범인을 추적하는데 정박사의 프로그램 '포에버 21'이 도출되고 이것으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겠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면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말해 경감님의 수사방향과 혼선을 빚게 될 우려도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같은 방향에서 시작해 같이 움직이게 되면 힘이 모아져서 더 좋지 나쁠 게 있겠습니까? 더구나...... 정나리씨라고 했습니까?"

  "."

  "더구나 정나리 형사 같은 미인하고 같이 움직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죠?"

  동찬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정형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 따라 반발하지 않는 정형사를 바라보며 형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형사들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 보통 정형사는 남녀차별이니 성폭행이니 하며 달려들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볼에 홍조를 띄우는 것으로 그쳤다. 그리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수사노트만 쳐다보고 있는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쯤해서 반장이 나설 때가 되었다.

 

  ", 잘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형사들이 오늘 조사한 내용을 가지고 시작해보겠습니다. 조형사는 어젯밤 야근자에 대해 좀 알아봤나?"

  반장의 말투가 본래대로 돌아왔다.

 

  ", 알아봤더니 다른 연구부서 야근자 3명은 모두 9시 이전에 퇴근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숙직했던 경비원은 물론 아침에 신고할 때까지 근무를 했고요, 정박사 밑에서 일하던 손중선이는 사건발생시간 30분전, 그러니까 새벽 1 5분에 퇴근한 것으로 기록돼 있더군요. 이 친구는 숙직실에도 퇴근한다며 얼굴을 비쳤고, 물론 정문 경비실 근무자도 그 시간에 이 친구가 퇴근하는 걸 봤답니다."

 

  "그러면 그 경비원만 혐의점이 있다는 얘긴가?"

  "아니요,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 제 생각엔 이 손중선이가 더 유력한 용의자로 보입니다. 시간상으로는 알리바이가 성립된다고 해도 정박사가 살해당하기 전에 가장 가까운데 있었고, 또 누구보다도 정박사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을 저질렀을 확률도 높다고 봅니다."

  "아니 그럼 가장 가까운데 있고 제일 친한 친구가 웬수가 될 확률도 높겠네? 자네 친구들은 그런가?"

  "......"

  "가장 가까운데 있었기 때문에 혐의가 많다는 건 말도 안되고, 수사를 하려거든 어젯밤 그 시간까지 손중선이 퇴근도 안하고 뭘 했으며, 평소 정박사와의 관계는 어땠으며, 뭐 이런 것부터 알아봐야 하는 거 아냐? 하다못해 출신성분 같은 거라도 알아보고 혐의점을 둬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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