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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18회> - 해커에 대해 좁혀지는 수사망

writerjang 2023. 1. 12. 09:20

  오늘도 어김없이 조형사에 대한 반장의 꾸지람이 시작됐다.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의식해선지 조형사가 평소와는 달리 그냥 고분고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조형사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대꾸를 했다.

 

  ", 그건 내일 알아볼거구요, 제가 유력하다고 보는 건요, 그 친구가 퇴근하면서 왜 굳이 숙직실에 얼굴을 내밀었느냐는 점이예요. 일부러 얼굴도장이라도 찍으려고 한게 아니고 뭐냐구요. 알아봤더니, 그 경비원이 하는 말이, 평소엔 그 친구가 그랬던 기억이 별로 없다더라구요. 그리고 정박사 손목시계가 멈춘 시간이 130분이란건 그 친구가 퇴근한 15분하고 불과 25분 차인데, 만약에 그 친구가 1시쯤에 살해하고 시간을 30분 정도만 뒤로 돌렸다면 얘기가 맞아 떨어진다는 말이죠. 박사가 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라면 시체 부검에서 30분 정도는 오차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을 거고, 그러니까 부검에서 사망시간이 대략적으로 도출된다면, 경찰에선 시계가 멈춘 130분이 살해시간이라고 단정지을 게 뻔하다는 걸 이미 계산에 넣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 친군 30분 전에 퇴근했으니 혐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고, 뭐 그런 계산이 아니었을까요? 그 친구가 일부러 정박사 손목시계를 깨뜨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어쨌든 이것저것 따져 봤을 때, 그 친구가 유력하다는 겁니다. 물론 내일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지만요."

 

  조금 어눌한 말씨였지만 조형사가 열변을 토하는 모습을 적이 없는 정형사와 양형사는 넋을 잃고 그의 얼굴을 빨려들어갈 바라보고 있었다. 한편으로 후배들은 조형사가 이처럼 반장에게 대드는 걸 처음 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반장의 반응이 걱정스럽다 못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보나마나 역정이나 반격이겠지, 하면서 두 후배는 반장의 말을 기다렸다. 체면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반장의 성격상, 그리고 더군다나 손님까지 보고 있는데...... 두 후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동찬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동찬은 정형사가 고개를 돌리자 마자 빙긋하고 여유있는 웃음을 보였다. 다시 반장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런데 반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반장은 아주 차분한 어조로 타이르듯이 말했다.

  "맞아. 자네의 추리가 맞다는 얘기야. 하지만 그건 손중선을 범인으로 단정짓고 출발했을 경우에만 들어맞는 소리고. 출발을 달리 했을 경우엔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가게되지. 손중선은 그냥 야근을 하다 일이 끝나서 정박사 보다 먼저 퇴근하게 된 거지, 있는 그대로라면. 누구 하나를 범인으로 단정짓고 역으로 추리해보는 방법도 괜찮기는 한데, 그건 자칫 잘못하다가는 생사람 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거든. 그리고 역추리는 모든 사람이 다 혐의자가 되고 범인이 될 수가 있어. 문제는 그런 역추리법에서도 충분한 증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숙박일지나 출퇴근 상황에 대한 것만 조사하고는 유력하다 마다 섣불리 단정짓는 게 잘못됐다는 얘기야. 아무튼 조형사는 내일부터 손중선을 집중 조사하라구. 그가 유력한 혐의자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하니까."

  "......"

 

  "정형사는 오늘 어땠어?"

  반장이 이번엔 정형사에게 물었다.

 

  ", 소장이 아주 힘들어 해서 많은 얘긴 나누지 못했어요."

  말을 하다말고 정형사는 동찬을 슬쩍 쳐다봤다. 소장의 지친 모습이 바로 동찬이 그녀 보다 앞서 선수를 쳤기 때문이라는 불만이 정형사의 눈에 가득했다.

 

  "그럼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거야?"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정박사가 연구하던 프로그램에 대해 얘길 들었어요. 그런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더군요. 3년 동안 정부 주도로 개발하려던 프로그램이 완성을 앞두고 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 정박사가 일을 당하기 전에 이미 이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어젯밤 정박사가 야근을 자청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죠."

 

  이번엔 동찬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소장이 자기에겐 그렇게 꺼리던 얘기를 여형사에겐 들려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형사의 얘기를 귀담아 듣던 조형사가 질문을 던졌다.

  "바이러스 이름이 뭐래? 아니 그 보다도 바이러스가 어떻게 침투한 거래?"

  "이 바이러스는 이름을 알 수 없대요. 공개적으로 알려진 게 아니고, 특정한 목적으로 특정한 파일에만 사용되는 바이러스 같다더군요. 정박사 컴퓨터의 다른 부분들은 아주 멀쩡한데 유독 이번에 연구하던 프로그램만 치명상을 입었다더군요. 소장 얘기가 이건 어떤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이 프로그램만을 노리고 저지른 짓 같아 보인다는 거였어요."

  "아니, 감히 어떤 놈이 그런 짓을 해, 국가적인 사업이라는데!"

  조형사가 노기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발끈했다.

 

  "아무래도 반국가단체이거나 아니면 이런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중인 기업이나 개인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저지른 짓 같다더군요. 그 근거는 이 프로그램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되면 그들이 투자한 돈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나요?"

  "그럼 정형사는 바이러스 먹은 프로그램을 열람해봤나요?"

  동찬이 정형사에게 물었다. 형사들은 갑자기 말문을 연 경찰청 사람에게 일제히 눈길을 돌렸다.

 

  "아니요, 그건 보여주지 않더군요. 국가기밀사업이라 자세한 건 알려줄 수 없대요."

  ", 그래요. 저도 소장이 그렇게 나와서 편법을 좀 써서 프로그램을 들여다 봤더니 그게 영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파괴되었더군요. 그런데 그 바이러스는, 아까 정형사가 얘기했지만 전문적인 해커들이 만든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거였구요. 소장도 거기까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불현 동찬이 소장을 비꼬는 말투를 쓰자 정형사가 무안해했다.

 

  "소장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꼭 그렇지는 않구요.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는 거예요. 정형사가 아까 얘기했죠, 그 컴퓨터의 다른 파일들은 멀쩡하다고? , 그랬어요. 제가 들여다보니까 다른 부분들은 다 제대로 작동이 되더라구요. 그 바이러스는 이 프로그램만을 깨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이죠. 때문에 제 생각에 해커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뿌리는 어떤 전문적인 해커 집단이나 전문가가 아니라는 거예요."

 

  동찬이 해커니 바이러스니 하며 컴퓨터에 대한 얘기를 하자 반장과 조형사는 어리둥절해하며 이해를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기특하게도 막내 양형사가 상사들의 이런 고민을 눈치챘는지 동찬의 얘기를 받아 이해하기 쉽게 반문하는 형식으로 똑같은 얘기를 재차 풀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해커들은 일반적인 특성상 특정 파일만을 노리고 바이러스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저지른 짓이라 볼 수는 없고, 바이러스와는 관계가 없는 비전문가의 소행이라는 말씀이시죠? 예를 들어 컴퓨터를 잘 다루거나 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긴 한데, 자기의 이익이나 또는 집단의 이익을 목적으로 바이러스를 만들고, 이걸 정박사 컴퓨터에 침투시킨 것으로 보신다는 말씀이시죠?"

  ", 맞아요. 그런데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은, 방금 양동은 형사나 연구소 소장 얘기처럼 문제의 해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어 침투시켰을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엔 다른 목적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프로그램에 따른 이해관계와는 별개일 수도 있다는 거죠. 단순하게 이해관계 때문이라면 굳이 다른 파일들을 보존시키려고 애써 바이러스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아무거나 치명상을 입힐만한 것만 침투시키면 되거든요. 제가 보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자는 분명 정박사 컴퓨터에 있던 프로그램들을 아끼는 인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회의실 탁자에 마주앉은 형사들이 모두 동찬의 언변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반장과 조형사는 여전히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반장은 턱을 괴고 앉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조형사는 자꾸 애꿎은 뒷통수만 박박 긁어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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