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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0회> - 살인 현장에 침입한 잠수복

writerjang 2023. 1. 12. 23:32

  "먼저 조형사는 손중선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도록 하지.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용의자네 마네 하지만 말고 구체적인 증거를 잡아오라구. 알리바이 뿐만 아니라 정박사와의 관계, 즉 연구소에서만이 아니라 사적인 관계까지도 캐보라구. 그리고 경비원이나 또 다른 야근자들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

  "정형사는 그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이제부턴 그 해컨가 뭔가 하는 걸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하구. 연구원들을 다시 한 번 만나보면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구 아까 여기 이 분 말씀을 꼭 참고하고. 잘 안될 것 같으면 같이 움직여도 되고. 괜찮겠죠?"

  정형사에게 수사지시를 하다가 반장은 동찬에게 동의를 구했다. 반장은 동찬을 뭐라 불러야 할지 결정을 못한 듯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 물론이죠."

  "정형사 알았지?"

  "."

  대답을 하는 정형사의 얼굴이 좀 껄끄러운 듯 했다.

 

  "그리고 양형사는 아까 말한 그 부부의 결혼과정하고 친구문제, 외도대상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해보고."

  "."

  "그리고 현장에서 떠 온 지문감정 결과는 나왔나?"

  ". 정박사 지문 외에도 많은 숫자가 발견됐는데 모두 그 팀 연구원들 것이거나 직원들 것이랍니다. 지문 결과로는 외부인의 침입은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장갑을 끼고 철저하게 지문을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는 판단입니다. 환기구의 경우 범인이 살해 후에 위장하기 위해 만졌다면 혈흔이라도 남았을 텐데,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봤을 땐 살해한 뒤에 장갑을 몇 번씩 갈아 끼고 마무리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지문은 아무런 실마리도 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라고 봅니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지문은 신경쓰지 말도록 하고, 모두 일단은 아까 나눠준 일부터 접근해 보자구."

  "."

  "그리고 저...... 뭐 다른 할 말씀은 없습니까?"

  반장이 동찬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 역할분담에 대해서 달리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여러분께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아시다시피 이번 사건은 다른 건과 달리 국가의 중대 사업과 관련되어 있어 아주 민감한 사안입니다. 다른 사건과 달리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라면 무엇보다 보안을 잘 좀 유지해달라는 겁니다. 어차피 언론에서 파고들자면 언젠가는 알려지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데까진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사건에 매달리기도 힘든 상황인데 기자들하고도 싸우라는 소리 같아 죄송합니다만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다들 조심할겁니다."

  반장이 형사들을 대표해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부턴 본격적으로 움직입시다."

  반장의 마지막 말이 좀 이상했다. 이 정도 살인사건이면 비상이 분명한데, 마치 지금 퇴근하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형사들은 하나둘 허탈해진 모습으로 일어나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내일 수사할 내용을 요약하는 사람, 뭔가 뒤적이는 사람, 그리고 공상에 빠진 듯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등 형사들의 모습은 아주 각양각색이었다.

 

  동찬은 반장과 악수를 한 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는 형사과를 빠져나갔다. 물론 그는 그 와중에도 정형사쪽에 슬쩍 눈길을 주는 행동을 빼먹지 않았다.

 

  "정형사가 신경 많이 쓰이겠어?"

  조형사가 눈치를 챈 듯했다. 후배를 걱정해주는 얘긴지 아니면 놀리는 얘긴지 분간이 안되는 말투였다.

 

  "아니 전 괜찮아요. 선배님은 저 사람 어떤 것 같아요?"

  "글쎄, 바람둥이 기질이 좀 있지만 신랑감으론 괜찮은 것 같은데......"

  "선배님두. 그런 얘기가 아니라 경찰청에서 사람이 나온다고 걱정 많이 하셨잖아요?"

  "아 내가 그랬었나? 글쎄, 뭐 벌써 잊어버린 걸 보니까 그냥 같이 수사하는덴 문제가 없을 것 같네."

  조형사가 좀 멋쩍어 했다. 괜히 미리부터 선입관을 가지고 대한 자신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상하기도 했다. 특수과에서 나오면 대부분 안하무인인데 오늘 나온 사람은 전혀 그런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좀 더 두고 볼 일이라고 조형사는 생각했다.

 

 

7: 침투

 

  굳게 잠겨진 연구실 문고리가 찰칵하며 잠금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리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민첩하게 안으로 잠입했다. 검정색 스킨스쿠버용 잠수복을 입은 침입자는 뒤꿈치를 들고 가만가만 컴퓨터가 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손에 들고있는 소형 손전등 불빛이 책상 위 컴퓨터에 비춰지는 순간 번쩍하고 빛이 굴절돼 유리창을 때렸다.

 

  잠수복의 침입자는 창가로 다가서더니 블라인드를 살짝 들고 벌어진 사이로 바깥을 유심히 살폈다. 창 밖으로 연구소 진입로가 곧게 펼쳐져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위치한 정문 경비실 안엔 전경 근무자가 형광등 불빛아래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잠수복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웠다.

 

  연구소는 적막 자체였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낮엔 살인사건 때문에 경찰병력이 연구소를 가득 메웠던 곳이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너무도 한산했다. 예상이 적중했다. 큰 사건이 벌어지고 난 직후엔 언제나 이처럼 공백이 컸다. 허점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잠수복은 컴퓨터 앞으로 다가서더니 손전등을 비춰 전원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컴퓨터가 윙하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니터에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는 불빛이 새나갈세라 재빠른 동작으로 모니터를 창문 반대방향으로 틀어 돌려놓았다.

 

  컴퓨터가 부팅되자 잠수복은 검색 프로그램을 불러들여 영문으로 '포에버 21'을 타이핑했다. 검색기가 프로그램 파일들을 찾아 하드 드라이브를 헤매는 소리가 들렸다. 파일들이 차례대로 검색기 상자에 나타나고 있었다. 파일이 예상외로 너무 많았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일이 계속 찾아져 검색기 상자에 올라왔다. 이렇게 해선 밤이 새도 일을 다 마칠 수가 없다. 그는 검색작업을 취소시켰다.

 

  이번엔 다시 검색기를 실행시켜 '프로젝트 Ⅱ'라는 검색어를 영문으로 타이핑했다. 잠시 뒤에 검색기 상자에 폴더 하나가 올라왔다. 잠수복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프로젝트 Ⅱ'라는 설명이 붙은 폴더를 더블 클릭했다. 폴더에 있는 파일중 '포에버 21' 프로그램 아이콘을 찾아 클릭했다. 컴퓨터가 암호를 요구했다. 잠수복이 허리에 차고 있는 소형가방에서 종이쪽지를 꺼내 암호를 천천히 입력했다. 프로그램 실행명령이 내려지고 있는지 컴퓨터가 심하게 잡음을 냈다. 기다리는 시간이 보통 긴게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웬만한 용량이 아니므로 화면에 띄우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하며 그는 프로답게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프로그램에서 에러메시지가 떴다. 몇 번을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상 들여다보고 말고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경비가 허술하다고 할지라도 필요이상으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어째서 에러메시지가 뜨는 지 따질 필요도 없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수성그룹 연구소 정일준 박사 연구실 컴퓨터에서 '포에버 21' 프로그램만 복사해다주면 그만이었다.

 

  잠수복은 허리에 소형가방 속에서 CD를 꺼내 CD라이터에 삽입했다. 복사작업을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하드드라이브에서 CD에 담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복사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잠수복은 다시 한 번 더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살폈다. 여전히 연구소는 적막 그 자체였다. 컴퓨터가 작업을 시작한 지 20여분 만에 프로그램이 모두 CD에 들어갔다. CD를 꺼내 케이스에 넣었다. 케이스를 허리 가방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 문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숨을 죽이고 문가로 귀를 기울였다. 역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확실했다. 걸음 소리가 문밖에서 멈췄다.

 

  문고리에 열쇠를 꼽는 소리가 들렸다. 잠수복은 CD를 가방에 넣고는 문 옆 캐비닛 쪽으로 발소리를 죽여가며 재빨리 뛰어갔다. 캐비닛 뒤쪽에 바싹 붙어 몸을 숨기고 숨소리를 죽이며 문쪽을 주시했다. 순간 그의 눈에선 섬광이 번뜩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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