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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1회> - 간밤의 연구소 유린에 수사팀 비상

writerjang 2023. 1. 13. 04:40

  문이 열렸다. 복도에 설치된 녹색 비상등 불빛이 열려진 문틈을 비집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경비원은 자세를 한껏 낮추고 안쪽으로 손전등을 한 번 휘익 돌려 비춰보았다. 손전등 불빛이 번쩍번쩍하며 연구실 안을 돌아 다니다말고 책상 위 컴퓨터 앞에서 멈췄다. 순간 잠수복은 '아차' 하고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후회했다. 컴퓨터 전원 내리는 걸 깜빡 한 것이다.

 

  경비원은 문을 벌컥 밀어제치고 사주경계를 하며 안쪽으로 들어와선 딸깍, 하고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잠수복은 몸을 벽에 더욱 밀착시켰다. 천장에 붙은 형광등이 제각각 깜빡거리다가 일제히 불을 환하게 밝혔다. 실내는 대낮처럼 밝아졌다. 경비원은 눈이 부신지 잠시 머뭇거렸다. 경비원이 다시 고개를 돌려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직 잠수복의 사나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비원은 조금씩 조금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그의 오른 손에는 가스총이 들려있었다. 총구를 정면으로 향하고 한발 두발 조심스럽게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경비원의 행동은 특수훈련을 받은 경비요원들과는 달리 매우 어설펐다. 사주경계도 둔하기 그지 없었다.

 

  경비원은 컴퓨터를 힐끔 돌아다봤다. 컴퓨터가 켜져 있었다. 누군가 작업을 하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연구원들은 컴퓨터만큼은 철저하게 끄고 다니는 습관들이 몸에 배어 있다는 사실을 경비는 잘 알고 있었다. 텅빈 연구실에, 그리고 한밤중에 컴퓨터가 켜져 있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오늘 낮엔 정박사의 살해로 시끌벅적하던 연구실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그는 덜컥 겁이났다. 만약 살인범이 다시 현장을 확인하러 왔다면? 여기까진 용감하게 들어왔지만 왠지 그냥 그대로 나가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급한데로 손에 들고 있던 비상호출기 단추를 하고 눌렀다. 정문 경비실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비상호출기였다. 그와 함께 전 연구소 내에 사이렌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순간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왔는지 잠수복이 내리친 일격이 경비원의 뒤통수에 떨어졌다.

  "으헉!"

  경비원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개미소리 보다 작았다. 경비원은 그 자리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잠수복의 사나이는 재빠르게 출입구를 빠져나가 복도 끝으로 내달렸다. 경비병력의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2층 계단쯤에서 들려왔다. 잠수복은 연구소 뒤쪽으로 난 창문을 열고 나가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건물 벽을 타고 민첩하게 밑으로 한칸한칸 내려갔다. 1층 벽면 쯤 내려간 잠수복은 지상으로 성큼 뛰어내렸고 이어 담을 훌쩍 뛰어 넘어 대기하고 있던 차에 몸을 실었다. 자동차는 흙먼지를 날리며 연구소 뒤쪽 도로로 유유히 사라졌다.

 

**********

 

 

  청량리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서장이 형사과 임과장을 불러 세워놓은 자리에서 전화통을 붙잡고 쩔쩔매고 있었다. 상대가 뭔가를 계속 지시하는지 서장은 뭐라고 자기 의사를 얘기하지도 못하고 ', ......', 하고 대답만 계속하며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저쪽에서 전화를 끊었는지 서장은 마지막으로 대답을 하며 머리를 꾸벅 조아렸다.

  ",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서장은 모자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마엔 진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서장이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임과장을 노려봤다. 임과장이 몸을 움찔했다. 그 때까지도 임과장은 소파에 앉을 생각도 못하고 책상 앞에 부동자세로 장승처럼 서 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수성그룹 연구소에 침입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누가 그걸 몰라요?"

  "지금 형사들을 보냈으니까 곧 자초지종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양반이 그래도...... 내 얘긴 살인사건이 난 현장이 어떻게 그렇게 경비가 허술하냔 말이예요."

  ", 경비에도 혼선이 좀 있었나봅니다. 저희 형사들은 청에서 알아서 경비를 담당하리라고 생각했다는군요."

  "아니, 누가 그런 말을 해요, 무책임하게시리!"

  "이번 일은 본래 특수과에서 맡게 되어있는 거 아닙니까?"

  이번엔 임과장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그렇지....... 어떻게......."

  서장 목소리가 오히려 죽어들어갔다. 그래도 계급이 깡패라고 서장은 금세 본래의 자기 위치를 찾았다.

  "임과장, 우리 눈치껏 좀 일합시다. 아무리 청에서 맡아하는 일이지만 현장경계 정도는 알아서 해야할 것 아닙니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돌아서 문을 나서는 과장을 바라보며 서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장은 밤 11시가 다 돼가는 늦은 시간인데도 경찰청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얘길 전해듣고 차를 직접 몰아 경찰서로 득달같이 달려나왔다. 아무리 비상이 걸려도 서장의 퇴근은 어김이 없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상이 걸렸지만 서장은 임원들에게 철저히 당부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었다. 서장은 또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현장엔 반장과 조형사가 출동했다. 살인사건이 발생해 비록 비상이었지만 반장은 정형사와 양형사는 퇴근을 시켰었다. 매일 두 사람씩 교대로 야간근무를 시킬 생각이었다. 반장은 그것이 범인을 잡을 때까지 힘을 비축하며 버틸 수 있는 요령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채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연구실에 도난범이 침입했다는 사실은 경찰력에 대한 비웃음이자 공권력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현장엔 이미 동찬이 나와있었다. 그는 살해된 정박사 책상 위의 컴퓨터 옆에서 경비원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괴한에게 기습을 당한 야간 경비원은 머리를 응급조치 한 뒤 현장에 다시 나와있었다. 동찬은 노반장과 조형사가 연구실로 들어서자 노반장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을 뿐 경비원과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반장과 조형사는 연구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살피기 시작했다.

 

  동찬은 경비원과의 대화를 끝내고 컴퓨터 앞에 심각하게 앉아있었다. 반장과 조형사는 창가를 둘러보다 동찬에게로 다가왔다. 반장이 먼저 말을 붙였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셨나요?"

  "글쎄요, 뭐 없어진 것도 없고 경비원 말고는 해를 입은 사람도 없답니다."

  "경비원은 그 괴한을 봤답니까?"

  "뒤에서 가격을 당하고 쓰러져 못봤답니다."

  "괴한이 뭣 때문에 여기에 들어온 걸까요?"

  "지금으로선 확실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대화에 조형사가 직설적으로 끼여들었다.

 

  "혹시 살인범이 뭔가 현장에 빠뜨린 증거물이 뒤늦게 생각나 재차 침입한게 아닐까요?"

  "조형사님 말씀대로 그가 살인범이었고, 현장에 결정적인 단서를 빠뜨린 게 생각났다면 아마도 컴퓨터 내부 프로그램 어딘가였을 겁니다. 오늘 침입자는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하다 경비에게 들키자 달아났답니다. 미처 컴퓨터를 끌 시간도 없이 경비원이 들이닥치자 몸을 숨겼고 경비를 가격한 후 도주해버렸답니다."

  "그럼 얘기가 맞아 떨어지는군요."

  "그런데 제 생각엔, 오늘 낮에 현장조사에서 뚜렷한 단서가 될 만한게 전혀 없었다는건 범인이 비록 전문적인 살인청부업자가 아니었다 해도 철저한 계획하에서 거의 완벽하게 일을 치러냈다는 얘기가 됩니다. 때문에 그는 컴퓨터에도 증거를 남겼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정박사가 연구하던 프로그램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해커가 살인범과 동일인이라고 했을 때는 오늘 침입자하곤 전혀 무관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미 이 프로그램을 알고 있고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망쳐버리기까지 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프로그램을 도난하려 했다면 바이러스를 침투시키기 전에 벌써 했을 겁니다. 살인범이 이 위험천만한 살해현장에 들어와 한가롭게 그 프로그램을 다시 열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여길 보세요. 오늘 침입자는 이 프로그램에서 작업을 하다 들켜 달아난 겁니다. 이게 바로 그 '포에버 21'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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