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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3회>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writerjang 2023. 1. 14. 05:12

  동찬이 반장에게 말했다.

  "만약 컴퓨터 안에서 단서를 발견한다고 해도 좀 더 확실하게 수사를 하려면 역시 혐의가 있는 주변 인물들은 따로 각각 만나봐야 할 겁니다. 역할을 나눠서 만나보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내일부터는 오늘 오후 회의때 얘기된 대로 형사들이 움직여줄 겁니다."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동찬이 먼저 반장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반장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8: 음모

 

  ", 이 병신 새끼들아!, 이딴 일도 하나 제대로 못해, ?"

  곽부장은 CD를 케이스에 들어있는 통째로 바닥에 집어던졌다. 케이스 플라스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깨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CD는 케이스에서 튕겨져 나와 한 쪽 구석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셰꺄, 당장 제대로 된 거 갖다놔아, 알았냐?"

  ", 알겠습니다."

  "돈으로 안되면 이걸로 하면 되잖아!"

  곽부장은 책상서랍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책상에다 힘껏 꼽았다.

 

  "!"

  "오늘도 허탕치면 니들은 끝장이야, 알았냐?"

  "......."

 

  곽부장이 부하들을 족치고 나서는 지쳤는지 넥타이를 풀어 헤치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때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밖으로 나가려던 부하들이 모두 주춤거렸다. 회장이 분명했다.

  곽부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 기획실입니다."

  "어떻게 됐나?"

  한회장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곽부장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 회장님!"

  곽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화기를 허리를 굽신거렸다.

  "어제 업자를 시켜 프로그램을 입수하긴 했는데 그게 좀........"

  "문제가 있다는 애기구먼?"

  ", 그래서 지금 다시 애들을 풀었습니다."

  곽부장이 고개짓으로 부하들에게 빨리 나가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부하들은 슬슬 나가는 척 하면서 엉거주춤 머물러있었다. 회장의 얘기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느긋하시구먼?"

  "......?"

  "자네,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있었지?"

  "회장님, ......"

  "할 말 있나?"

  "오늘 중으로 해결 못하면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책임? 자네 목이라도 내놓을텐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것 봐 용팔이, 자네 왕년 실력 다 어디갔어? ?"

  "......"

  "자네 목숨 건지려면 몇 놈쯤은 잡아야 되는거 아냐?"

  ", 알겠습니다."

  "한 번 두고보겠어!"

 

  전화가 끊어졌다. 곽부장은 수화기를 꽝하고 거칠게 내려놨다. 이제 사람을 해치는 일 같은 건 다신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질 않았다. 죽이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의 과거까지 들춰내는 회장이 야속했다. 지금은 어엿한 대기업 기획실 곽현재 부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에잇 씨팔, 이 짓을 그만두든지 해야지......."

  부하들이 자신들에게 날아올 화살을 짐작하곤 쩔쩔매고 있었다. 몇 명은 벌써 슬금슬금 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뭘 봐, 셰끼들아! 빨랑 안나갓?"

  곽부장은 부하들에게 책상 위에 놓인 집기를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한참을 그러더니 성질이 좀 가라앉았는지 곽부장은 가죽장갑을 덥석 끼더니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따라와! 오늘은 내가 직접 간다."

  "?......!"

  그들은 밖으로 우르르 떼거리로 몰려 나갔다.

 

 

**********

 

  수화기를 내려놓은 한회장은 씨익 웃으며 통화할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부드러운 말씨로 권박사에게 말을 건넸다.

  "시간이 좀 걸린다네. , 오늘내일 안으로 해결되겠지."

  "회장님,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무엇보다 저희가 독자적인 상품을 개발하는게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권남우박사의 말에 회장은 울그락불그락 하며 다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변했다.

 

  "권박사, 당신이 제대로만 하면 내가 왜 그걸 탐내겠소!"

  "면목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양심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그래도....."

 

  권박사는 양복 속주머니에서 하얀색 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조용히 올려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때 한회장이 그의 뒤통수에 대고 던진 한 마디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권박사, 당신은 이미 나와 한 배를 탄 거요. 이렇게 그냥 나간다고 당신이 결백해질 것 같소?"

  "......"

  권남우박사는 발길을 돌려 한회장을 빤히 바라볼 아무런 말도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오?"

  "......"

  "이제 며칠 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요. 기획실에서 뭘 좀 준비하고 있나보던데......"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몰라도 괜찮소. 때가 되면 어차피 알게 될 테니까. 아니지, 벌써 오늘 아침 신문에서부터 떠들썩 하던데, 신문 안봤수?"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려는 겁니까?"

  권박사가 흥분해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반대로 한회장은 더욱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곧 알게 된다니까? 그러고 보니 이제 며칠 안 남았네, 이달 7일이니까. 그 날 세계의 눈이 온통 우리를 주목하게 될거요. 신세기를 이끌어갈 초고속정보통신의 핵심. 전세계 정보통신매체를 하나로 통일시킬 바로 그 프로그램이 우리 태산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선을 보이는 날이지."

  "......"

  "아무튼 그 날 발표회가 열린다는 얘기가 있소. 분명히 전국의, 아니 전세계의 신문방송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올테고, 나하고 임원들 그리고 정부와 재계의 인사들이 단상 뒤에 점잖게 앉아 있겠지, 으하하하!"

  말을 하면서 회장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잠시동안 눈을 지긋이 감았다 뜨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태산의 목숨을 건지는 역사적인 날이 될거요. 사내 대강당에는 발표회에 참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정보통신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겠지.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단상에 서서 우리의 신상품을 소개하는 한 인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될거요. 그렇다면 그 영광스런 단상에 설 사람이 과연 누구겠소? 그는 아마도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될거요. 모르긴 몰라도 노벨상 같은 거라도 하나 떨어지지 않겠소, 하하하"

  "아니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권박사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거였다. 아직 확실하게 성공가능성도 알 수 없는 연구대상을 이미 완성된양 어떻게 발표회라는 걸 준비할 수가 있으며, 더욱이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자신에겐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렇게 무턱대고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는 거였다. 기업을 급속도로 성장시켜 단 몇 년만에 일약 재벌의 반열에 오른 한회장의 대담하다 못해 무모하기까지 한 처사가 사뭇 놀라웠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구나.'

 

  권남우박사는 당장에 발을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들이 저지르는 데로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는 생각뿐이었다. 뒤늦게 후회해보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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