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WRITERJANG

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4회> - 실마리를 던져준 괴한의 침입

writerjang 2023. 1. 14. 23:29

  "권박사는 일단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요. 곧 완성된 프로그램이 도착할거고 그때부턴 굽든지 삶든지 우리 고유의 상품으로 바꿔주기만 하면 되는 거요. 아니, 가공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내버려둬도 되요. 이름만 바꾸지 뭐."

 

  "......"

 

  권박사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단지 그의 대담한 발상이 기막힐 뿐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분명 정일준 박사가 준비하던 '포에버 21'을 일컫는 게 분명한데. 그렇다면......

 

  "뒷감당은 내가 알아서 할거요. 권박사는 아무 걱정 안해도 돼요. 프로그램을 개발하다보면 유사품이 나올수도 있고 또 처리방식이 똑같을 수도 있는 거지, 그것 가지고 트집잡는 놈이 있다면 그게 미친놈이지 뭐 별 수 있겠소?"

 

  권박사는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하는 한회장을 바라보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한편으론 사기치는 것도 아무나 없는가보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력에 프로그램 운운하며 그 생리까지도 훤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업가로서의 한회장이 한편으로는 대단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태산그룹 회장 한태산. 정말 이름처럼 그가 태산으로 보일 정도였다.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아무튼 권박사는 이익을 보면 물불 안가리는 자본의 속성에 말려들고 있는 자신의 양심이 가엾게 느껴졌다.

 

9: 진전

 

  정나리형사는 비상이 걸린날 퇴근한게 미안했던지 오늘 아침엔 피로회복제 박스를 손에 들고 오전 7시도 되기 전에 형사과 사무실에 입장했다. 막내 양동은형사는 이미 출근해 여기저기 사무실을 누비고 있었다. 뭔가를 찾는 모양이었다. 노반장과 조형사는 보이지 않았다.

 

  "양형사 뭘 그렇게 찾아?"

  "큰 일 났습니다, 선배님!"

  정형사가 책상 위에 피로회복제 박스를 올려놓고 안절부절 못하는 양형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관심있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큰 일인데.......?"

  "어젯밤 수성그룹 연구소 정박사 방에 괴한이 침입했었답니다."

  "그래?"

  "우리 사무실, 아니 서 전체가 발칵 뒤집혔었답니다. 서장님이 노발대발해서는 과장님을 불러 박살내고, 반장님하고 조선배는 현장으로 급하게 출동하고......."

  "그럼 두 분은 지금 현장에 계셔?"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빨리 상황일지나 찾아봐!"

 

  정형사도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제 반장이 퇴근하라고 허락했어도 그냥 붙어 있었어야 하는데, 하며 뒤늦게 후회했다. 한두 번 겪어본 비상도 아닌데 철없이 군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정형사와 양형사가 책상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상황일지를 찾고 있을 때 조형사가 출입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손에 들고있는 까만색 하드커버 서류철을 흔들며 조형사가 후배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이거 찾아?"

  "선배님......!"

  형사는 맥이 빠지는지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조형사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조형사 앞으로 걸어와 차려자세로 섰다.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누가 뭐 퇴근하고 싶어 했냐? 반장님이 그러랬잖아?"

  조형사의 말엔 가시가 박혀있는 같았다. 반장이 그러랬다고 철없이 퇴근해버리는 너희들은 한심한 인간이야, 라고 하며 마치 자기들을 질책하는 소리로만 들렸다. 형사들은 당장 큰소리를 내지 않고 보통 때처럼 조용조용 비꼬듯이 얘기하는 조형사의 태도가 더 두려웠다. 다음엔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두 형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형사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조형사의 반응은 전혀 예상밖이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리려나봐."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정형사가 물었다.

  "어젯밤에 연구실에 침입한 놈 때문에 일이 더 잘 풀리게 생겼다고."

  형사는 어안이 벙벙해져 조형사의 다음 말만 애타게 기다렸다.

 

  "두 사람 다 알게 되겠지만, 놈은 정박사가 연구했다던 그 프로그램을 훔치려고 침입한 거야. 그러니까 그건 그 프로그램을 탐내는 집단들이 가까이에 있고, 곧 그들이 누군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거라는 얘기가 되지. 놈들이 정박사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사실이고, 또 놈 때문에 살인범이 살인 후에 컴퓨터에 담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작업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냈고, 아무튼 성과가 꽤 많았지."

 

  조형사는 마치 자기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기라도 후배들 앞에 자랑하듯 떠들어댔다. 후배 형사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신나게 떠들던 조형사가 갑자기 하던 말을 뚝 끊고 문쪽을 바라봤다. 노반장이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는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사들이 반장에게 인사를 했다. 반장은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형사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회의실로 들어오지."

  "!"

 

  반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말을 꺼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들 알고 있지?"

 

  형사들이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형사하고 같이 나가봤는데 아무래도 수사가 한 발 진전될 것 같아. 제대로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가보니 오히려 우리한텐 유리하게 생겼어."

  "반장님 다들 어젯밤 사건경위는 제가 말해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늘부터 저희들이 뭘 해야 하는지 그걸 얘기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다들 알고 있다니까 간단하게 얘기하겠는데, 그 경찰청에 서경감이란 사람이 정박사 컴퓨터에서 많은 걸 발견했더군. 아직은 조금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살인범이 그 컴퓨터에 결정적인 단서를 남겼을 가능성도 많고. 일단은 서경감의 추리를 입증시켜주는 여러 가지 정황들이 컴퓨터에서 발견된 것 같아. 이를테면 사전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해커와 살인범이 동일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점이나 평소 컴퓨터를 가까이 했던 인물중 하나라는 사실 등등 여러 가지야. 우리쪽에선 정형사가 맡기로 했지, 그 컴퓨터 쪽은?"

  "."

  정형사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대답을 하는 정형사와 양형사가 동시에 조형사를 바라보며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짓을 보냈다. 아까는 마치 자기가 다 발견한 것처럼 떠들어대던 조형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또 후배들 앞에서 망신살이 뻗치는 순간이었다.

 

  조형사는 반장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속엣말을 되뇌었다.

  '내용만 얘기하면 됐지, 뭐 쓸데없이 서경감을 들먹이시나?'

 

  "아니 왜들 그래?"

  반장이 얘기 하다말고 형사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발견하고는 의아하게 물었다.

  "아니예요, 아무 것도."

  조형사가 사태를 무마시키려는 얼른 대답했다.

  "그래? 그럼 정형사는 우선 '포에버 21'을 도난하려 했던 작자들이 누군지, 또 이번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고."

  "."

  "그리고 그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건 아무래도 서경감에게 물어보면 접근이 빠를 것 같아. 하는 걸 보니까 그 사람 아주 그 방면에 박식하더라구."

  ", 알겠습니다."

  "그리고 양형사는 뭘 조사하기로 했지?"

  ", 정박사 부부의 결혼과정하고 그 내연의 관계에 있는 대상들입니다. 그리고 정박사의 친구관계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랬지? 양형사는 그거면 됐고."

  "조형사는?"

  ", 저는........ 수석연구원으로 있는 손중선이를 집중 조사키로 했죠, 아마?"

  "자네가 지금 나한테 되묻는 건가?"

  시작이다. (계속)

 

포에버 21 <25회>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