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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5회> - 충분한 단서 확보가 사건해결의 관건

writerjang 2023. 1. 15. 21:53

  "아니요, 손중선을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

  "?"

  "또 있을 거 아냐?"

  "아 네........"

  조형사는 말을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그제서야 재빠르게 수첩을 들여다봤다.

  ", 맞습니다. 손중선 하고 경비원, 그리고 그 날 야근자들을 다시 세밀하게 조사하기로 했었죠."

 

  반장이 조형사를 바라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반장이 아무리 그래도 조형사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고양이 앞에 쥐모양으로 죽어들어갈 뿐 대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조형사의 덩치는 반장보다 두배쯤은 컸다. 반장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 위한 것임은 물론, 조형사 본래의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두리뭉실했기 때문이었다.

  조형사는 그다지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후배들 앞에서도 무게를 잡을 망정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여 야단치는 일은 없었다. 조형사의 이런 성격은 좋게 보면 무난한 거고, 나쁘게 보면 아둔하거나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지금도 반장이 후배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는데도 조형사는 그냥 수그러들기만 할 뿐 대들거나 말대꾸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자네 이 생활 안해도 편하게 살 수 있지?"

  "아닙니다......."

  반장은 꼭 여기까지만 말했다. 조선배한테 뭔가 있긴 있는데, 하며 후배들은 언제나 반장의 입을 통해 여기까지만 들었다. 후배들은 궁금하긴 해도 그 이상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반장이나 조형사에게 직접 물어볼 처지들도 아니었고.

 

  사실 조형사는 처가가 보통 부자가 아니었다. 서울시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형 마켓만 해도 대여섯개는 된다. 그런데도 조형사는 아무런 티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경찰생활을 하는 이유는 처가덕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싶지 않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의 발로였다.

 

  반장이 조금 화가 풀렸는지 부드러운 말씨로 조형사에게 당부하듯 얘기했다.

  "그래, 특히 손중선은 정박사와의 사적인 관계까지도 철저하게 조사하고."

  "네 알겠습니다."

  ", 그럼 다들 나가봐."

  "!"

 

  형사들이 반장에게 임무를 부여받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반장은 회의수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서장에게 불려가는 모양이라고 형사들은 생각했다.

 

  반장이 형사과 문을 열고 나가자 조형사는 무언가 찾을 것이 있는지 반장 책상을 자꾸 넘겨다 봤다. 책상 밑에 쇼핑백이 있었다. 어제 반장이 들고 들어온 것이었다. 조형사가 쇼핑백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거기엔 컴퓨터 관련 서적들이 들어 있었다. 컴퓨터 기초입문서는 물론 용어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자들이 대여섯 권 정도 들어있었다.

 

  조형사가 양형사에게 물었다.

  "어제 반장님이 이 책 사는 거 봤어?"

  "어떤 책이요?"

  ", 컴퓨터 서적들말야!"

  "아하! 어제 유가족들 만나고 같이 들어올 때 반장님은 요 앞 서점에 들러 나중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때 그 책들을 사셨나봅니다."

  "어쩐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금방 터득하신단 말야. 어젯밤에 현장에서 서경감 얘기를 아주 척척 알아들으시더라구. 뭐 컴퓨터에 관한 내용도 잘 아는 사람처럼 대화를 할 정도였으니까."

 

  정형사가 끼여들었다.

  "하여튼 노력해서 안되는 일 없고, 반장님은 또 서경감에게 지고싶지 않으신가보죠, ."

  "맞아. 보기보단 자존심이 강하신 양반이야."

  조형사가 궁시렁궁시렁 반장에 대한 얘기를 하며 책을 다시 책상 밑에 집어넣었을 때 반장이 들이닥쳤다.

 

  "아니, 왜들 안나가고 그러고 있어?"

  ", 네 지금 나갑니다......!"

  조형사가 대표로 대답하고 형사들은 모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정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는 다시 앉아 출동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첩을 펼치고 회의내용을 정리했다.

 

 

**********

 

  동찬도 오늘은 어김없이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그의 생활습관으로 봤을 때 오전 5시는 그에겐 꼭두 새벽이었다. 출근시간이 따로 없고 하루에 한두 차례 국장에게 전화보고만 하면 되는 업무방식 때문에 평소 그의 기상시간은 대략 8시 정도였다. 국장에게 보고하는 일도 임무가 주어졌을 경우의 얘기지 평소엔 전화 걸 일도 없었다.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관리하지 않으면 밑도끝도 없이 게을러질 위험요소가 다분한 게 바로 그의 생활이었다. 때로는 자신이 경찰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비상이 걸리고 임무가 떨어지면 그의 생활은 전혀 딴판이 되어 버린다. 먹고자고입는 일상생활에 아무런 규칙이 없었다. 집에 들어오는 횟수도 드물 뿐 아니라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이 따로 없었다. 언제 생활습관이 그랬냐는 듯 그의 몸과 마음도 함께 비상이 걸렸다. 그게 바로 그가 솔로로 뛰면서도 자칫 게을러지기 쉬운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그는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는 방식이 몸에 배어 있었다. 경찰대 졸업 후 받은 특수단의 혹독한 훈련에서 저절로 터득하게 된 행동방식이었다. 80여명이 후보로 선발돼 그 중 1년간의 훈련을 견디고 특수요원으로 배출된 인원은 단 세명. 특수단의 훈련이 어땠는가는 수료자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동찬은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차림으로 갈아입고 오피스텔 주변 도로를 달렸다. 조간신문을 돌리는 신문배달부의 오토바이가 그를 추월해 텅빈 도로를 질주해 달아났다. 아직 동이 트려면 한참은 있어야 했다. 아직은 해는 짧고 밤이 긴 전형적인 겨울 날씨였다. 3월이 되었지만 아직 봄이라고 보기엔 좀 일렀고 날씨도 요 며칠 사이엔 한겨울을 방불케할 정도로 쌀쌀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날은 눈까지 펑펑 쏟아졌었다. 동찬은 평소에도 틈나는 데로 조깅으로 기초체력을 유지해왔지만 특히 임무를 맡았을 땐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 운동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땐 최소한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팔굽혀펴기 정도는 꼭 빠짐없이 하곤했다.

 

  동찬은 서초동 전철역을 돌아 꽃마을이 펼져진 곳을 달려가고 있었다. 환경미화원들이 날도 새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도로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재개발 지구로 선정된지 오래였지만 아직 꽃마을은 판자촌을 이루고 있었다. 군데군데 조그만 굴뚝으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많은 세대가 이사를 갔는지 연기가 나는 집은 몇 군데 없었다. 이곳도 빈부의 차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서울시내에 몇 안되는 장소중 하나였다.

 

  5 40. 동찬은 조깅에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출동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조간신문부터 살펴봤다. 사회면에 이르러서는 빠짐없이 꼼꼼히 읽어나갔다. 특별한 기사는 없었다.

 

  다음, 컴퓨터를 경찰청 전산자료실 메인서버에 연결해 지난 밤사이 발생한 사건사고 일지를 열람했다. 여기에도 눈에 띄는 내용은 없었다.

 

  어젯밤 정리해둔 수사내용을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다시 꼼꼼히 읽어봤다. 정박사 연구실의 컴퓨터에 들어있는 프로그램과 파일들을 다시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주목할만한 내용이 없었다. 오늘은 일단 정식 절차를 밟아서라도 연구실의 컴퓨터를 합법적으로 조회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포에버 21'에 집중하는 사이 다른 프로그램에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놓쳐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되짚어 봤다.

 

  일단 첫 번째 프로그램은 어제 발견한 화상통신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침입했던 괴한과 살인범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둘은 별개의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포에버 21이 감염된 사실을 몰랐다면 역시 그는 살인범이 아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해커는 어떻게 정박사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으며,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또 프로그램을 감염시킨 이유가 정말 단순히 살인하기 좋은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정박사와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궁지에 내몰아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심각하게 추리를 해 들어가다 골치가 아픈지 그는 머리를 흔들어댔다. 아직은 아무 것도 정리되는 게 없었다. 동찬은 아직 수사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일단 단서를 충분히 확보하는게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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