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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6회> - 형사과로 걸려온 한통의 제보 전화

writerjang 2023. 1. 17. 00:34

  이제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컴퓨터를 끄려다 말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동찬은 윈도우 배경화면에서 아이콘 하나를 클릭했다. 오락프로그램이 실행됐다. 지뢰찾기. 그가 언제나 하루의 운수를 점치는 자기만의 방법이었다. 한 번에 풀어내면 운수가 아주 좋은 날, 두 번째에 풀면 보통, 세 번째는 그저 그런 날, 그리고 네 번째 이후는 무조건 악재가 겹치는 날이었다.

 

  그런데 지뢰찾기 게임은 사실 서너 번째에도 풀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찍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역시 한 번엔 풀지 못했다. 두 번, 세 번......... 결국 네 번째도 그대로 풀지 못하고 넘겼다. 지뢰찾기 만큼은 75초만에 풀어낸 신기록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오늘은 어째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네 번째에서 그치질 못했다. 항상 전부 풀어낼 때까지 그의 운수 알아보기 게임은 계속됐다.

 

  오늘도 열두 번째가 되어서야 완벽하게 풀어냈다. 시간은 92. 속도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솜씨였다. 그는 네 번 안에 풀어내야 그 날의 운수가 좋다는 자기가 정한 규칙을 매번 스스로 어기면서까지 고집스럽게 몇 번을 더 해서야 풀어냈고, 그게 바로 그 날의 운수라고 믿어왔다. 그러니 결국 그의 매일매일의 운수는 최소한 자기 스스로 그렇다고 믿는 한도내에선 언제나 좋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운명철학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나가는 거라 믿었다.

 

10: 친구

 

  정형사는 지난 연구소를 침입한 괴한이 어떤 특정 조직의 사주를 받았을 경우와 독자적인 행동이었을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저울질해봤지만 아무런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두 가지 경우 모두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한건 회의시간에 얘기됐듯이, 서경감이 조사한 데로 괴한은 특정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도난하려 했다는게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어졌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에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이나 개인을 찾아내야 하는데 조사대상이나 범위가 너무 막연했다. 반장이 빨리 출동하라고 독촉을 해도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고민 때문이었다.

 

  정형사가 오랜시간 고민에 빠져 헤매고 있을 형사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익명의 제보자였다.

 

 

  ", 형사과 정나립니다."

  "어젯밤 수성그룹 연구소에 침입한 괴한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요."

  상대방은 다짜고짜 연구소에 침입한 괴한을 들먹였다. 목소리는 20대 후반 정도로 아주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 같아 보였는데 일부러 자기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 했다. 수화기를 손수건으로 가리고 말을 하는지 아주 감이 멀게 들렸다.

 

  정형사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서둘러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그러나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녹음 단추를 눌렀다.

  "여보세요! 뭐라고 하셨죠? 다시 한번만 천천히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녀는 상대방에게 듣지 못했다는 핑계로 재차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어젯밤 수성 연구소에 괴한이 침입했었죠? 참고가 될까 해서 전화드렸어요."

  "실례지만 성함을 좀 밝혀주실 수 있나요?"

  정형사가 이름을 요청했지만 상대는 밝히길 꺼려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하지만 제 목소리를 녹음하는 건 거부하지 않겠어요."

 

  정형사는 마음 속으로 뜨끔했다. 상대방은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도 않고 훤히 알고 있었다. 천리안도 아닌 담에야 어떻게? 제보자는 경찰서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전직 경찰? 정형사는 주위를 둘러봤다. 형사과 안엔 지금 자기 혼자 뿐이었다. 창문 바깥도 올려다 봤다. 푸른 하늘 밖에는 보이는 게 없었다.

 

  ", 말씀하세요. 괴한에 대해 어떤 점을 알고계신가요?"

  "오늘 조간신문에 기사가 났어요."

  "? 어떤 기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형사는 반문을 하며 눈으론 반장 책상 위에 놓여있는 조간신문을 힐끔 쳐다봤다. 신문은 접혀진 채 그대로 있었다. 반장은 아직 신문을 들쳐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어떤 기업이 초고속정보통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며 발표회를 갖는다고 하네요."

  "? 그래요?"

  "......"

  상대방은 잠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리고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전화에선 뚜뚜, 하며 통화종료 신호음이 들렸다.

 

  정형사는 서둘러 반장 책상 위의 조간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은 1면에서부터 온통 정보통신 관련 기사로 뒤덮였다. 1면 종합면, 과학면, 경제면, 사회면 할 것 없이 모두 정보통신 프로그램 얘기 뿐이었다.

 

  정보통신의 대홍수 속에 이를 하나로 묶어낼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됐다는 기사, 그리고 신흥재벌 태산그룹이 이 역사적인 과업을 이뤄냈다는 기사가 신문 전체를 도배했다. 이 프로그램의 개발로 정보통신의 역사가 최소한 100년은 앞당겨졌다는 내용이었다.

 

  정형사는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정박사가 연구하던 '포에버 21'과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직 태산그룹 관계자들이 자세한 언급은 회피하고 있으며 오는 7일 발표회와 함께 모든 것이 공개된다는 내용까지 실려 있었다.

 

  정형사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태산그룹? 태산그룹이라면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한 신흥 재벌그룹으로 재계에서도 그 성장속도를 놀라워하는 기업이었다. 아무리 같은 목표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해도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추진해온 수성그룹의 프로젝트에 앞서 성과물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형사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형사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선 부딪치고 보자는 생각으로 태산그룹으로 향했다. 신문에서 읽은데로 태산그룹 컴퓨터시스템 연구센터를 찾아가기로 작정했다. 전화를 하고 약속을 정하자고 요청해봤자 흔쾌히 승낙할 사람들은 분명 아닐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만나길 꺼릴 게 분명했다. 이럴 땐 정공법이 최고였다.

 

  11시쯤 태산그룹에 도착했다. 정문 수위실에서 컴퓨터시스템 연구센터를 안내받고 찾아갔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오늘 조간신문 기사가 전부였다. 소장의 이름이 권남우 박사라고 했던가? 그를 만나보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았다.

 

  컴퓨터시스템 연구센터에 들어선 정형사는 본부장실이란 간판이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선 그를 본부장으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본부장실엔 비서 아가씨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권박사는 지금 회장에게 불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게 비서의 얘기였다. 그래도 이대로 물러날순 없었다. 일단 기다리기로 하고 비서가 날라다 준 레몬차를 음미하면서 본부장실을 휘 둘러봤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역시 대기업 그룹사 연구실다웠다.

 

  10, 20분 시간이 흘러갔지만 권박사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무턱대고 기다리는 건 어쩌면 시간낭비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형사는 비서에게 말을 붙여봤다.

  "본부장님이 언제쯤 돌아오실지 전혀 모르는거죠?"

  "."

  "혹시 이 회사에서 개발했다는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저는 신문에 난 거 밖엔 몰라요."

  "그래요? 본부장님이 아무런 말씀도 안해주셨나요?"

  "."

  "거 이상하네요. 보통 신문에 그 정도 기사가 실릴 정도면 비서실에서도 보도자료 정도는 확보해두고 있지 않나요?"

  "대부분은 그런데 이번 건은 자료가 나오질 않았어요."

  "그럼 어떤 부서에서 이 일을 담당하나요?"

  "제가 알고 있기론 그룹 기획실 쪽인 것 같아요."

 

  비서 아가씨는 프로그램 개발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같았다. 담당부서가 그룹 기획실이란 것도 짐작으로만 알고 있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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