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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7회> - 피해자 지인 탐문 대상 권남우

writerjang 2023. 1. 17. 07:26

 

  "다시 한 번 자세히 생각해보세요! 본부장님이 그 프로그램이 완성됐다는 얘기 정도는 해줬을 것 같은데....... 그래야 발표회 일정을 비서실에서도 알고 준비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니, 그런 얘긴 전혀 없었어요. 본부장님 일정은 제가 전부 알고 있는데 이번 만큼은 아무 말씀도 안해주셨어요. 이것 보세요. 확실해요."

 

  비서는 말을 하면서 일정표를 내밀어 정형사에게 보여줬다. 그곳에도 3 7일자에는 아무런 일정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가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발표회 날짜를 몰랐을 리도 없고 비서에게 일정을 얘기해 주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더욱이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라면 회사 내에선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긴데, 어째서 컴퓨터시스템 연구센터의 본부장을 보좌하는 비서가 이러한 중대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문 투성이었다.

 

  그 때 권남우 박사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손님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권박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정형사는 그가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서가 당황해 했다.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그를 따라가려 하자 정형사가 그녀를 제지했다. 정형사는 활짝 열려있는 본부장실 출입구쪽으로 가면서 비서에게 말했다.

  "아니요, 됐어요. 제가 직접 말씀드리죠."

 

  정형사가 비서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나서야 권박사는 손님의 존재를 깨달았다.

  "저를 찾아 오셨나요?"

  ", 청량리경찰서에서 왔습니다."

  그 때서야 권박사는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정형사에게 다가와 소파를 권했다. 그의 눈엔 미세하나마 놀라움이 어려 있었다.

 

  정형사는 소파에 앉으며 몇 가지 알아볼 것이 있어 찾아왔다고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권박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형사를 맞게 된 것에 대해 자못 언짢아 보였다.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찾아 오셨나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권박사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공세를 퍼붓자 정형사가 오히려 당황해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사실 살인사건이나 프로그램 도난사건이 권박사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었다. 아무런 물증이 없었다. 막연하나마 이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수성그룹 연구소의 프로젝트와 유사하다는 점 말고는 걸고 넘어질게 하나도 없었다. 우연히 결과가 같아진 것일 수도 있었다. 권박사나 태산그룹을 무턱대고 살인범 또는 도난범인양 매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정형사는 이렇게 곤란한 지경에 빠져본 경험이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말을 꺼내보기도 전에 그냥 싱거운 사람 취급만 받고 아무 소득없이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불안해졌다.

 

  정형사가 찾아온 이유를 얼른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권박사가 오히려 넘겨짚어 말했다.

  "혹시 정박사의 죽음에 내가 관련돼 있나 알아보러 왔나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 사람이 정박사와 아는 사이란 말인가? 정형사는 얘기가 슬슬 연관성을 갖춰가기 시작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건수를 잡을 좋은 기회를 오히려 상대방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나도 오늘에서야 소식을 들었어요. 참 좋은 친구였는데........"

 

  정형사는 지금이 바로 자기가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정박사와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권박사는 정형사의 질문을 듣고나서 도대체 형사가 뭘 물어보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친구사이라는 걸 모르고 무턱대고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친구관계 이외의 다른 관계에 대해 묻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정박사와는 정말 둘 도 없는, 형제 보다 가까운 사이였죠. 하는 일도 같고 생각이나 원하는 것도 거의 비슷했죠. 주변사람들은 우릴 보고 한 형제 같다고 할 정도였어요. 물론 대학 때 들었던 얘기지만."

 

  생각밖으로 권박사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거리낌 없이 대답을 술술 잘도 해줬다.

  "같은 대학을 나오셨나요?"

  "K대 컴퓨터 공학과에 같이 다녔어요. 그 때 우린 처음 만났고 서로 뜻이 통하고 감각이 맞아 친해졌죠."

  "그 이후는 어떻게 됐나요?"

  "나는 대학을 마치고 바로 유학을 갔죠. 그 친구는 K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85년도에 미국 매사추세츠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렇다면 대학 졸업후에는 좀 뜸하셨겠네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서로 틈만 나면 만났고, 편지나 통신으로 의견을 교환하곤 했어요. 최근까지만 해도 그 친구가 굉장히 바빴는데도 불구하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났어요."

  "...... 그럼 혹시 최근에 정박사의 신상에 무슨 문제를 느끼지는 못하셨나요?"

  "글쎄요, 일주일 전에 만났을 때만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요. 오히려 그 친구는 이제 큰 작업 하나가 마무리 돼간다고 꽤 들떠 있었고, 그 어느 때 보다도 삶의 의욕이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 큰 작업이라는 게 초고속 정보통신망 관련 프로그램 개발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죠. 아시겠지만 그 친구는 정부사업을 맡아하고 있었어요."

  ", 그래서 지금 문제가 더 심각하게 됐어요. 이건 단순하게 일 개인을 살해한 차원을 넘어 국가에 대한 도전이라고 저희는 보고 있어요."

  "그렇겠군요."

  "그럼 박사님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정박사와 자주 의견교환을 하셨겠군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 친구가 대개는 내용을 일반화시켜서 얘기를 꺼내곤 했지만 직접적으로 그 프로그램에 대해선 얘길 하지 않았어요. 그 친구 딴에는 국가기밀이기 때문에 신중하려 했던 거겠죠."

  "그런데 이번에 이 회사에서 개발됐다는 프로그램이 정박사의 것과 거의 같은 내용이던데...... 프로그램 개발은 모두 박사님 손을 거치게 되어 있죠?"

 

  권박사는 형사가 태산그룹의 프로그램에 대해 화두를 던지자 적잖이 놀라웠다. 대외비 자료가 빠져나갔을 리는 없었고 또 아직은 연구단계에 있는, 완성 여부도 아직 말하기 이른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 외부에서 벌써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순간, 그는 아까 회장이 말했던 끔찍한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아직 신문도 읽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신문에 어떻게 실렸길래 마치 형사가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나,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자기의 연구물에 대해 모른다고 답한다는 것은 의심받기 십상일 것이다.

 

  ", 그래요. 하지만 난 우리 프로그램이 정박사의 것과 유사한지는 모르겠어요."

  "결과적으로 권박사님이 정부보다 한 발 앞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신게 되었군요."

  정형사는 프로그램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권박사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권박사는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만 당황하는 표정을 감추진 못했다. 정형사는 미세하지만 놀라고 있는 그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여기 프로그램의 이름은 뭐라 부르나요?"

  "아직은......"

  "아직 이름이 없나요? 그럼 프로그램을 완성하긴 한 건가요?"

  "......"

  정형사의 질문공세가 시작되자 권박사는 시원스럽게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비서아가씨도 발표회 일정을 모르고 있던데, 박사님이 말씀을 안해주셨나봐요?"

  ", 그게 방금전에 결정된 거라......."

  "그럼...... 기자들이 추측보도를 했다는 말씀이신데, 그래도 사내에서 자료를 흘리긴 했을 거 아닌가요?"

  "글쎄, 그건 제가 모르는 일이예요."

  권박사가 발뺌을 했다. 권박사가 이러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권박사가 진행시키고 있는 프로그램은 아직 미완성인데 발표회 날짜는 벌써 공개를 했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권박사가 모르는 사이에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포에버 21' 프로그램 도난? 정형사는 비서가 얘기한 그룹 기획실을 떠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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