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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8회> - 피해자 부인의 내연남 조사

writerjang 2023. 1. 18. 00:29

  "발표회 준비는 기획실에서 담당하고 있죠?"

  "글쎄, 난 전혀 몰라요."

  "더 이상 말씀을 안해주시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야겠네요. 하지만 박사님, 전 과학하는 분들의 이상과 양심을 믿어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생각난 김에 느닷없이 던진 말이지만 정형사는 자신의 얘기가 너무 멋들어진 같아 자기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녀는 이따금씩 생각지도 못한 명언들이 자신의 입을 빌어 세상에 탄생할 때마다 말 못할 희열을 느끼곤 했다.

 

  순간 침통하게 굳어지는 권박사의 얼굴표정이 얼핏 보였다. 정형사는 권박사를 잠깐 들여다보다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11: 휴대폰

 

  양형사는 과천에 있는 정일준 박사의 사택에서 가정부 아주머니와 잠깐 만나기로 시간약속을 했었다. 정박사의 부인인 황미주에게 심심찮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사내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영안실에서도 일손이 달려 가정부가 시간을 낼 틈이 없었지만 이 날 아침엔 잠깐 옷가지를 챙기러 집에 들른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하기로 했었다.

 

  양형사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정부가 옷가지를 챙겨두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가정부는 메모해 두었던 전화번호도 미리 찾아놓았다.

 

  양형사는 이런 어마어마한 저택의 내부는 생전 처음 구경해봤다. 아주머니의 안내로 집안까지 들어오는데도 정원을 지나고 잔디밭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거실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대리석 바닥에 샹들리에 불빛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양형사는 소파에 앉는 것도 조심스러워져 털썩 앉지를 못했다. 행동이 거북스러웠다. 양형사가 가정부에게 물었다.

  "이 집 이거 시가로 얼마나 나가나요?"

 

  가정부는 묻는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아마 상상도 못하는 액수겠지요."

  "네에...... 그건 그렇고, 저기 정박사님 휴대폰 같은 건 여기에 있습니까?"

  "글쎄요. 보통 휴대폰은 출근할 때 가지고 나가시니까 지금은 연구소에 있겠죠, 아마?"

  "그래도 집안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니까 한 번 찾아봐 주겠어요?"

  ", 있다면 방에 있겠지요. 이리로 따라오세요."

  양형사는 가정부가 안내하는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거실도 어마어마 했지만 침실은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마치 왕궁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이렇게 해놓고 사는가라며 놀라는 한편 양형사는 분노가 치밀었다.

 

  "방엔 없는 것 같은데요."

  "네 그러네요. 제가 연구소에 가서 찾아보도록 하지요, ."

  양형사는 초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심정이었다. 더 있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잖아도 대문에서부터 주눅이 들었었는데.

 

  우선 부인 황미주의 남자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메모지를 들여다봤다. 가정부의 메모는 참으로 친절하기도 했다. 그 작자의 이름까지 쓰여져 있었다. 최영호? 이름만 놓고 보면 그렇게 불륜을 일삼을 위인으로 보이진 않았다.

 

  양형사는 어떻게 만나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그냥 전화를 걸어 경찰이라고 밝혀야 할지, 만약 그랬다가 만나길 거부하든가 아니면 도주라도 해버리면? 경륜이 짧은 양형사로선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인물도 아니고 편법을 써야할 필요까지는 없을 같았다. 우선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가 걸리고 신호음이 울렸다. 두 번쯤 벨이 울렸을 때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자기야?"

 

  양형사는 어이가 없었다. 꼭 기생오라비 같은 간드러진 음성이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것도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하는 말이 '자기야?' 라니. 양형사는 아무래도 이 전화는 두 사람이 전용으로 쓰는 핫라인이었나 보라고 생각했다. 양형사가 그 말을 받아 자기의 굵직한 목소리를 실려보냈다.

  "실례합니다만......"

 

  상대편에서 깜짝 놀라는 표정이 안봐도 보이는 같았다. 역시 짐작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 누구시죠?"

  "네 여긴 경찰섭니다. 최영호씨 맞죠?"

  ", 그런데 무슨......?"

  "정일준 박사라고 아시죠?"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 사람이 누구죠?"

  상대는 정말 정박사를 모르는 같았다.

 

  "그럼 황미주씨는 아시죠?"

 

  상대가 놀라는 표정이 양형사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 아니요, 모르겠는데요."

  '어쭈, 이것봐라!'

 

 

  양형사는 뭔가 꼬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전화하지 말고 거주지나 알아보고 바로 쳐들어가는 방법이 오히려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러다간 도주할 우려도 없지 않았다. 양형사는 '임기응변'이란 단어가 떠오르긴 하는데, 어찌 해야할 지 선뜻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최영호씨! 다 알아보고 전화하는 거요. 황미주 남편 정일준 박사가 살해됐어요. 그렇게 발뺌하다간 당신이 살인범으로 몰릴 수도 있단 말이오. 순순히 협조하는 게 혐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알겠소?"

  양형사가 상대방을 윽박질렀다. 역시 효과가 있는 듯 했다. 상대는 겁 많은 기생오라비였으니까.

 

  "그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우선 만납시다. 만나서 얘기를 들어봐야 혐의가 풀려도 풀리지, 안그러면 당신은 영락없이......"

  "......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 저는..... 절대 아닙니다."

  "그러면 당장 만납시다."

 

  한참만의 실갱이 끝에 무려 시간 뒤인 오후 1시쯤에 최영호의 집 근처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집으로 직접 찾아가겠다는 양형사에게 뭔가 켕기는 게 많은지 굳이 밖에서 보자고 우겼다. 때문에 결과적으론 그의 집 근처로 정한 것은 양형사가 선심을 쓴 것처럼 되었고, 두 시간 뒤라는 건 최영호가 세 시간 뒤에 보자는 걸 그나마도 양형사가 어거지로 한 시간 앞당긴 결과였다. 기생오라비들은 한 번 외출하려면 여자들 이상으로 준비할게 많은가 보았다.

 

  이문동 어디께라는 최영호의 집은 청량리 경찰서에서 차로 불과 15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양형사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우선 정박사의 휴대폰이나 찾아볼까 하고 연구소쪽으로 차를 몰았다.

 

**********

 

  동찬은 이른 아침에 소장보다 앞서 연구소에 나왔다. 소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9시가 다 되어서야 소장이 나타났다. 아침부터 불청객을 만난 소장의 얼굴은 썩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동찬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찬이 따라들어갔다.

 

  "오늘 정박사 컴퓨터를 면밀히 조사해봐야겠습니다."

  "그건 안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을텐데요......"

  "이미 '포에버 21'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긴 해도 그 컴퓨터를 함부로 만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습니다. 정식으로 영장을 제시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이상한 일이었다. 동찬은 자신이 분명 언제나 공손하게 대했는데 소장은 자기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게 맘에 걸렸다. 경찰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반응인지 아니면 뭐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동찬은 법원에서 받아온 압수수색영장을 소장 앞에 내밀어 보여주곤 밖으로 나왔다.

 

  동찬은 행정실에 정식으로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한 정박사 연구실로 갔다. 이젠 아무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 정박사 컴퓨터는 동찬의 관리소관이었다. 정박사의 방에서 대여섯 명의 연구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물론 '포에버 21'을 복구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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