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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29회> - 사건을 풀어낼 또 하나의 열쇠

writerjang 2023. 1. 18. 11:01

  동찬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와 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아주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역시 복구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제 복구작업은 불가능한가 봅니다."

 

  동찬이 말을 던지자 연구원들은 갑자기 나타난 동찬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들을 지었다. 수석연구원인 손중선 박사가 아는 체를 했다.

  "또 오셨군요. 오늘은 또 무슨 일이시죠?"

  ", 오늘은 제가 하루종일 이 컴퓨터하고 씨름을 좀 해야겠네요."

  "아니, 무슨 소립니까? 그건 안될 말이예요."

  "이 컴퓨터는 정식으로 압수된 물건입니다. 자리를 좀 비켜 주시죠!"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연구소 업무는 대개 국가사업이라......"

  "그럼 행정실에 물어보든가, 소장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동찬을 바라보며 연구원들은 어이없어 했다. 손중선은 아예 말을 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손중선은 잠시 굳어버린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쏜살같이 나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 연구원들도 하나둘 자리를 피했다. 그들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동찬은 빙긋 웃었다.

 

  동찬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한 번 힐끗 바라보고 나서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하드 드라이브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워드, 그래픽, 통신, 오피스프로그램 등등 대부분 일반 프로그램들이었고 그 중에 폴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JIJ'라는 제목이 붙은 폴더로 정일준 박사의 이니셜을 따붙인 것 같았다. 동찬은 이 폴더엔 아마도 정박사 개인 프로그램이 들어있을 것으로 짐작됐다.

 

  폴더를 클릭하자 컴퓨터가 암호를 요구했다. 전에 외워두었던 번호를 생각해내 타이핑했다.

  '12051963'

  1963 12 5일생을 미국식 생년월일 표기 순서로 써놓은 게 분명했다. 누군가 정박사와 관련된 인물의 생년월일이라 여겨져 벌써 조사해봤지만 정박사 주변엔 이 생년월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정박사 자신의 생년월일은 아니었다. 정박사는 59년생으로 올해 만으로 딱 마흔살이었다. 1963년생 이라면 현재 만 36세라는 얘긴데, 그의 부인 황미주는 61년생으로 38세였다. 그렇다면 이 숫자를 생년월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번 사건을 풀어낼 또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숫자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는 그저 아무런 의미없이 남들이 알 수 없도록 관련성 없는 번호를 암호로 만든 것일 가능성이고, 또 하나는 누군가 정박사 자신이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사람의 생년월일일 가능성이었다. 동찬은 후자쪽에 더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숫자 표기방식으로 봤을 때 미국 유학시절에 알던 사람의 생년월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아무런 의미없이 그 숫자를 암호로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JIJ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도 폴더가 여러개 있었다. 처음부터 하나씩 클릭해 들어갔다. 연구일지, 연구보고서, 아이템 파일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보고서나 아이템 파일엔 별 내용이 없었다. 이곳엔 그동안 정박사가 연구해왔던 내용과 컴퓨터 계통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그때 그때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둔 것이 전부였다.

 

  연구일지는 3년 전 '포에버 21' 프로그램 작업에 착수한 때부터 기록되어 있었다. 그의 연구일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나에게도 이런 영광이 주어지다니...... 학자로서 그리고 과학자로서 나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다. 아니, 사심에 빠져들지 말자. 그리고 지금껏 쌓아온 나의 모든 지식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국가사회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자. 그래 이런 마음으로 시작해보자.'

 

  38세의 나이에 국가사업 연구프로젝트를 맡았으니, 젊은 혈기에 욕심도 컸을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연구일지 서문에서부터 자신을 자제하는 글귀로 들뜬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의 연구일지는 거의 매일 기록되어 있었고, 그날 그날 어려웠던 부분이라든가 문제가 발생한 부분에 대한 간단한 기록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연구일지는 살해되기 바로 전날인 2 27일자에서 끝이났다.

 

 

  마지막 날은 프로그램이 완성돼 기쁨을 감출 수 없었던지 꿈에 부풀어 있는 자신의 들뜬 심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었다. 흥분된 심정을 표현하듯 오타도 꽤 눈에 띄었다. 그러나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프로그램이 이제서야 완성되었고, 이젠 발표할 일만 남았으며, 아마도 발표되면 국민 모두가 정부와 수성그룹의 그동안의 노력에 입을 모아 칭송할 것임은 물론 전례가 없던 유능한,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부로 자리매김 될 것이며, 21세기는 진정 우리나라의 시대가 될 것, 이라는 장황한 내용이었다.

 

  그의 연구일지에는 어디에도 사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진정한 과학자로서, 그리고 나라를 위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연구자의 노력과 성실성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사실 그는 더 이상 아쉬울게 없는 인물이었다. 부유한 집안, 그리고 학자로서의 사회적 명성. 그만하면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조건이었다. 때문에 아무런 사심없이 정부가 추진하는 중대사업을 떠맡아 완성단계 직전까지 도달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그가 살해된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일지만을 봤을 땐 그가 죽음을 당할만한 이유는 아무데도 없었다. 꼭 그를 죽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발적인 사건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의 시기심? 원한관계? 치정관계......?

 

  한참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조형사가 연구실로 들어왔다. 조형사는 동찬이 연구실에서 컴퓨터와 씨름하는 모습을 보더니 선뜻 말을 걸었다.

  "뭐 새롭게 발견한 내용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아직은 없습니다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 손중선일 좀 만나러 왔는데 연구팀 방엔 없더군요. 행정실에서도 여기 있을 거라고 해서 왔는데, 혹시 못봤습니까?" 

  "여기 있긴 있었는데......"

 

  말을 하면서 동찬은 모니터에 설치된 시계를 힐끔 들여다봤다. 시간은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박사의 기록들을 훑어보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조형사는 자기보고 뭐라 그러는가 하고 반문했다.

  "? 뭐라구요?"

  "아니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구요. 뭘 물어보셨죠, 아까?"

  "손중선이가 여기 있었다면서요?"

  ", . 오전에 이 방에 있다가 나갔는데, 그 때가 아마 9시 반쯤이었을 겁니다."

 

  동찬이 시계를 다시 보면서 대답을 할 때 양형사가 연구실로 들어왔다. 조형사는 양형사의 등장에 개의치 않고 동찬에게 물었다.

  "혹시 어디로 간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나는 자기 방으로 돌아간 걸로 알았는데, 거긴 들러봤습니까? 안녕하세요?"

 

  동찬이 조형사에게 대답을 하다말고 양형사에게 아는 체를 했다. 양형사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용무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말을 꺼냈다.

  ", 안녕하십니까? 정박사 휴대폰 좀 찾으러 왔습니다."

  "그건 왜요?"

  ", 뭣 좀 알아볼게 있어서 그럽니다."

  "뭐를?"

  조형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손중선의 행방은 잠깐 까먹은 듯 했다.

 

  ", 전화번호 메모리를 뒤져보려고 그럽니다. 정박사가 사귀었다는 그 내연의 여자에 대해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그래, 그럼 한 번 찾아봐."

  조형사는 고개짓으로 책상주변을 가리켰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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