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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30회> - 쉽게 해독하기 어려운 비밀번호

writerjang 2023. 1. 20. 00:14

  양형사가 간단하게 대답하고 책상으로 바싹 다가섰지만 동찬 때문에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양형사의 곤란함을 알아차렸는지 동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가서 앉았다. 조형사가 그 뒤를 따라갔다.

 

  "아까 자기 방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하셨습니까? 연구팀 방엔 이미 찾아봤는데 없더군요. 어디 그 친구가 갈만한 데가 없을까요?"

  "글쎄요, 난들 어찌 알겠습니까? 나 때문에 열이 좀 나 있을테니 혹시 낮술이라도 한 잔 꺾으러 간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

 

  사람이 소파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 양형사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책상을 뒤지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조그만 수첩이 있었다. 일단 수첩을 챙겨넣었다. 양형사는 이어 책상서랍을 맨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열어보았다. 그러다 말고 양형사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방안을 휘둘러 봤다. 책상 뒤편 책꽂이 옆에 옷걸이가 있었다. 거기엔 역시 두꺼운 겨울 외투가 걸려 있었다. 양형사는 옷걸이로 걸어가 외투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뭔가 묵직한 게 걸렸다. 유행이 좀 지난 구형 휴대폰이었다. 물론 미국산 유명 상표였다. 기능도 꽤 다양할 것으로 보였다.

 

  "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양형사가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때 조형사가 양형사를 불러세웠다.

  "이봐! 같이 가."

 

  조형사가 양형사 뒤를 따라 출입구를 빠져나갔다. 동찬은 그들이 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다 시장기가 돌았는지 책상으로 가서는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혹시 중국집 스티커라도 붙어있을까 하고 살펴봤지만 역시 체면있는 박사의 책상엔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아마 이곳은 배달이 불가능할게 분명했다.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이니까.

 

  '이 사람들은 도대체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나? 구내식당? 구내식당은 배달이 되나?'

  책상 위에 놓인 구내 전화번호 구성도를 살펴봤다. 구내식당 인터폰 번호가 거기에 인쇄돼 있었다. 세자리 숫자를 가볍게 눌렀다. 신호음 한 번에 상대편에서 응답이 왔다. 동찬은 다짜고짜 주문을 했다.

  "여기 제3연구동 정일준 박사 연구실인데요, 백반 하나 지급으로 부탁해요!"

  "? 어디라구요?"

  '어라! 배달이 되는가보네.'

  구내식당의 반응은 그동안에도 배달을 해왔던 분위기였다.

 

  "3연구동 정일준박사 연구실이요. 정보통신 연구팀장실!"

  "네에, 그런데 오늘 중식 메뉴는 닭곰탕인데요."

  "그래요? 그럼 그걸루 주세요."

  ", 닭곰탕 하나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냥 해본 소린데, 구내식당에서 식사배달을 다 하다니 정말 이곳은 별스러운 곳이었다.

 

  동찬은 희안한 일도 있구나, 생각하며 다시 컴퓨터에 매달렸다. 조형사가 오기 전에 어디까지 살펴봤는지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 봤다. 그랬지? 연구일지를 훑어보며 고민에 빠졌던 조금 전의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일단 컴퓨터를 더 살펴본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음 폴더를 클릭했다. 영문으로 JIN이라 표기된 폴더였다. JIN이라......? JIN이 뭘까?

 

  폴더 안엔 파일이 달랑 하나만 들어 있었다. 파일을 클릭했다. 암호를 요구했다. 아무생각 없이 이미 외우고 있는 여덟자리 숫자를 타이핑했다. 그런데 암호가 틀리다는 경고메시지가 떴다. 아니, 이건 또 뭔 일이란 말인가? 또 다른 암호가 있었던가? 혹시 네자리 숫자?

 

  동찬은 '12051963' 중에 앞의 네자리 숫자를 타이핑 해 보았다. 또 암호가 틀리다는 메시지가 떴다. 다음에 뒤의 네자리 숫자를 타이핑해도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선 이 여덟자리 숫자 말고는 암호를 풀어낼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찬은 숫자를 온갖 방법으로 조합해 보았다. 그 때 요즘 한글 프로그램은 암호를 네자리 숫자로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생각해냈다. 요즘엔 대부분 다섯자리 이상의 숫자나 문자를 암호로 쓰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런데 암호는 문자를 사용하는 경우보다 숫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 통장의 비밀번호가 숫자를 쓰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관처럼 문자보다는 숫자를 많이들 쓰는 편이었다.

 

  이번엔 앞의 다섯자리 숫자를 타이핑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암호가 틀리다는 메시지가 떴다. 숫자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섯자리를 만들어 타이핑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숫자도 아니고 문자란 말인가?

 

  동찬은 생각나는 데로 문자를 입력해 보았다. 우선 한글로 'ㅈ ㅓ ㅇ ㅇ ㅣ ㄹ ㅈ ㅜ ㄴ'을 타이핑했지만 여전히 에러메시지가 떴다. 정박사의 영문 성인 'JUNG'은 네 글자라서 맞지 않고, 이름을 모두 넣어 보았지만 그것도 역시 아니었다. 폴더의 이니셜은 각각 세글자씩이라서 숫자가 부족하고 두 개를 합쳐서 'JIJJIN' 여섯 자를 쳐보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이 파일의 암호는 뭐란 말인가? 동찬은 조금 맥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다시 숫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구내식당 종업원이 식사를 날라왔다.

  "식사 시키셨죠?"

 

  동찬은 웃을 수도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 구내식당에서 연구실에 식사배달을 다 하다니?

  "시키긴 시켰는데...... 이 연구소에선 식사 배달도 해주나요?"

  "아니요, 그렇진 않습니다. 여기 이 연구팀만 특별대우 해주는거예요."

  "특별대우라니?"

  ", 소장님 지시예요. 올해 들어서부터 이곳 연구팀이 아주 바쁘다고 예외적으로 이곳 분들이 원하면 배달도 하라는 얘기였어요. 작업을 마칠 때까지라고 들었는데......"

  "아 네, 알겠어요. 식대는 어떻게 지불해야 하나요?"

  "글쎄요. 여기서 일하는 분이 아니시죠?"

  ", 그런데요."

  "그럼 식대를 현찰로 받아야겠어요."

  "얼마 드리면 될까요?"

  "삼천원입니다."

  "아니, 구내식당 식사가 그렇게 비쌉니까?"

  "내부 사람들에겐 한 끼에 오백원입니다만 외부 손님이 현찰로 식사하실 때는 시세와 비슷하게 맞춰 삼천원에 제공하고 있어요."

  "아하, 그래요? 알았습니다."

  동찬은 지갑에서 삼천원을 꺼내 배달부에게 줬다. 이젠 궁금증도 모두 풀렸기 때문에 그를 더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바가지를 썼어도 이젠 할 수 없었다.

 

  동찬은 식사를 하며 컴퓨터를 유심히 바라봤다. 도대체 암호가 뭐길래 이처럼 열어보기 어려운 건지? 마치 그 파일만 열어보면 뭔가 결정적인 단서라도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들여다 보기 어려운 만큼 소득도 컸으면 좋으련만......

 

  식사를 마치고 동찬은 다시 숫자로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12051963'

  '도대체 어떤 인물의 생년월일 이길래 이렇게 사람 애를 먹이나? 혹시 아주 예상밖으로 단순한 건 아닐까? 괜히 복잡하게만 생각해 오히려 더 안 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주 단순하게 숫자를 조합해보자.'

 

  동찬은 숫자를 한국식 생년월일 표기법으로 바꿔보았다.

  '19631205'

 

  그러나 이것도 아니었다. 컴퓨터는 여전히 암호가 틀렸다는 메시지만 띄워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은 숫자 안에 있을 것 같은데,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 그럼 이번엔 진짜 한국식으로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날짜 앞에 '0'이란 숫자를 쓰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다시 타이핑해 보았다.

  '1963125'

 

  일곱자리 숫자였다. 그런데 이번엔 컴퓨터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니, 다른 반응이 아니라 파일의 내용이 차례대로 컴퓨터에 떠오르더니 파일이 모두 모니터에 나타났다. 그래, 바로 이거였다. 정박사는 그저 단순하게 생년월일을 한국식으로 연도부터 표기하고 월, 일을 쓰는 방식으로 순서만 바꾼 것 뿐이었다. 앞에 사용한 암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변형시킨 암호를 알아내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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