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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33회> - 기생오라비 오피스텔 수색

writerjang 2023. 1. 21. 11:19

  양형사는 거리로 나오자마자 길가에 세워둔 차로 들어가 선글라스를 끼고 기생오라비가 다방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한 10분쯤 뒤에 지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만큼 힘들어 할 정도면 분명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게 양형사의 계산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계산을 염두에 두고 그를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얘기를 하는 중에 그의 집을 덮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유도해내기 위해 더욱 세차게 그를 몰아세웠던 것이다.

 

  기생오라비는 다방에서 나와 인도를 따라 몇 걸음 걷더니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를 향해 몸을 틀었다. 놀랍게도 녀석이 달려든 차는 고급 외제 승용차였다. 재벌 2세들이나 타고 다닐 법한 값비싼 승용차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비엠더블유.

 

  기생오라비는 차에 오르더니 시동을 걸고 곧바로 직진해 나갔다. 양형사가 멀찌감치 떨어져 그의 차를 뒤따랐다. 사거리에 진입하자마자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신이문 역을 통과해 한 5분쯤 달리더니 이번엔 또 다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평일 대낮이긴 했지만 서울시내엔 어딜가나 역시 차가 많았다. 미행을 들킬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비엠더블유는 편도 2차선 도로를 빠져나가 대로로 진입하더니 잠깐 달리는 듯 하다가 오피스텔 주차장 쪽으로 꼬리를 감췄다.

 

  양형사는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오피스텔 정문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이문동에 이런 고급 오피스텔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잽싸게 1층 로비 한쪽켠에 몸을 숨겼다. 주차장쪽에서 들어오는 문은 두 개였다. 양형사가 몸을 숨기고 있는 쪽에서 보면 입구 두 개가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한쪽에서 기생오라비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갈 게 분명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면 낭패였다. 양형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방법이 생각났다.

 

  기생오라비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단추를 누르는 걸 지켜본 뒤 양형사는 태연스럽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마치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을 구상해낸 것이다. 양형사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아니 이거, 여기서 또 만나네요?"

 

  기생오라비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

 

  "......"

  "여기 살아요?"

  ", 그렇습니다만."

  "몇 층이예요, 사는데가?"

  ", ...... 3층입니다만."

  "잘 됐네요. 집구경이나 한 번 합시다."

  "아니, 안돼요."

  "안될 게 뭐 있어요. 이제 알 건 다 아는데."

  "아니, 그래두......"

 

  기생오라비가 곤란한 투로 말끝을 흐렸지만 양형사는 그냥 호락호락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그도 이런 사실을 알아챘는지 더 이상 거부하지는 못했다.

 

  양형사는 기생오라비를 따라 그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역시 생각대로 화려찬란했다. 그짓을 해서도 이렇게 잘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놀라웠다. 주인이 허락도 안했는데 양형사는 마치 수색이라도 나온 사람마냥 여기저기를 살피고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한 쪽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다섯 개의 휴대폰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휴대폰이 이렇게 많아?"

 

  양형사가 혼잣말로 떠들었지만 기생오라비에겐 치명적인 얘기로 들렸는지 몹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휴대폰 거치대에는 각각 여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스티커로 붙여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다름 아니라, 그가 상대하고 있는 여자들마다 그에게 연락할 전화번호가 각각 하나씩이라는 얘기였다. 그래야 그의 말대로 더욱 확실한 팬관리가 가능할테니까. 이 정도면 기생오라비도 이 계통에서는 프로 소리를 들을 만도 했다.

 

  양형사는 이제서야 아까 오전에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자기야?'란 대답을 할 수 있었던 사연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조사할 것도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제비라는 직업에 충실한 인물일 뿐이었다. 살의 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양형사는 기생오라비의 철두철미한 직업정신에 혀를 내두르며 방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양형사는 속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졌다!'

 

  양형사는 오피스텔에서 나와 차를 남산 H호텔로 몰았다. 아무리 직감적으로 혐의가 없는 인물이란 판단이 섰어도 확인할 건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H호텔 로비의 프론트데스크에 기록된 사건 당일날 숙박자 명단엔 기생오라비의 이름이 어김없이 적혀있었다. 놈이 중간에 몰래 빠져나가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양형사는 그것까진 면밀히 조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다만 프론트 직원에게 당시 그의 출입기록에 대해 물어본 것으로 대신했다. 10시쯤 체크인 한 이후 외출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더 이상은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양형사는 다시 차를 몰아 가까운 이동통신 대리점으로 향했다. 014번이니까 대한이동통신이었다. 평소엔 자주 눈에 띄던 이동통신 대리점이 오늘따라 막상 찾으려니까 잘 안보이는 것 같았다. 회기역 어디쯤에서도 봤고, 종암동 부근에서도 본 기억이 있었다. 회기역은 이미 지나버렸고 종암동쪽으로 달렸다. 정박사가 교수생활을 했다는 K대를 지나 50미터쯤 달리자 종암동에 이르기 직전에 규모가 꽤 큰 대리점이 있었다. 좋은 예감이 들었다. 차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왕이면 정박사의 근거지와 가까운 곳을 뒤지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양형사가 정박사 휴대폰을 내밀자 판촉 여직원은 잠깐 들여다보더니 양형사를 힐끔 올려다봤다. 비밀번호를 까먹었다며 알아봐줄 수 있냐는 그의 얘기도 납득이 안됐지만, 우리나라에선 이제 흔히 볼 수 없는 구형 외제 상표였기 때문이었다.

 

  "이거 손님 거 아니시죠?"

  ",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요?"

  "이 휴대폰 주인은 제가 잘 아는 분이예요."

 

  역시 정박사는 휴대폰을 여기서 구입한 게 맞았다. 예상이 적중했다.

 

  ", 그래요?"

  "이거 어디서 났어요?"

 

  여직원이 마치 양형사를 취조하듯 똘망똘망하게 물어왔다. 양형사는 도전적으로 덤벼드는 여직원이 그다지 밉게 보이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재밌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이제 갓 스무살이나 넘었을까? 뽀얀 피부만 보면 십대라 해도 속아 넘어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양형사가 여직원의 단정하게 갖춰 입은, 예쁘게 디자인 된 유니폼 왼편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슬쩍 들여다봤다. 이름도 하는 짓 만큼 귀여웠다. 하슬기.

 

  "아저씨! 그렇게 안보이는데......"

 

  아까는 손님이랬다가 이젠 소매치기 정도로 보이는지 '아저씨'란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안보이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양형사의 장난스런 반격이 시작됐다. 여직원은 순진하게도 눈치 없는 척 하는 그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튼 이건 손님 휴대폰이 아닌 건 분명하니까 저희가 보관했다 주인한테 돌려드릴게요."

  "돌려줄 수 없게 됐어요, 이젠."

 

  양형사는 자기 입에서 튀어나갈 다음 말에 적잖이 충격받을 여직원의 표정이 눈앞에 선했다. 그렇지만 지금 그걸 숨길 상황은 더욱 아니었다. 그는 여직원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게 무슨......?"

  "그 양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구요."

  "네에?"

 

  역시 그녀는 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정박사의 죽음이 안타까운 듯 그녀는 들고 있는 핸드폰을 가냘픈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교수님이 그럴 리가 없는데......"

  "사실이예요. 그러니 아가씨가 좀 도와줘야겠어요."

  "그럼 손님은......"

  ", 맞아요, 그러니 빨리 비밀번호나 좀 알아봐줘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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