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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1회> - 용산 전자상가로 우송된 프로젝트 CD

writerjang 2023. 1. 26. 23:03

  반장은 그제서야 찾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고는 호출해 달라고 부탁하고 커피숍 안쪽으로 몸을 돌려 손님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남자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두 군데의 테이블이 눈에 들어와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성운'이란 이름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커피숍 전체에 울려퍼지기를 몇 차례 거듭했지만 손을 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자기가 그 사람이라고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손님, 만나기로 하신 분은 아직 안오셨나보네요."

  "그래요. 그럼 그 쪽에서 내 이름을 모르니까 혼자 온 남자가 있으면 김성운씨냐고 물어보고 내게 안내해줘요."

  반장은 종업원이 안내하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사이 시간이 흘러 약속시간에서 5분이 지났다. 반장은 의레 차가 막혀 늦어지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30분이나 흘렀는데도 반장이 들어온 뒤로 커피숍에는 혼자 온 남자는커녕 들어오는 손님이 아예 없었다. 반장은 불안해졌다. 장난전화를 혼동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서장에게 시달리다보니 판단력까지 흐려졌던 것은 아니었나?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제보하려다 들켜 변이라도 당한 것은 아닐까? 반장은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약속을 정하고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역시 이런 만남은 딱 질색이었다. 온다는 보장도 없는 사람을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이런 종류의 약속을 반장은 아주 싫어했다. 용의자를 붙잡아다 취조실에 앉혀놓고 큰소리 치는 일은 많이 해봤지만 제보자를 직접 만나러 나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반장은 마냥 자리에 앉아 시간만 때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1번을 길게 눌렀다. 전화번호가 메모리 된 대로 조형사가 나왔다. 현재 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조형사는 지금 경찰서로 들어가는 중이며 반장과 상의할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뭔가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입수한 모양이었다. 조형사와의 통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장은 형사들에게 한 번씩 돌아가며 상황보고를 받고난 뒤에도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자리를 뜨겠다고 마음먹고 이번엔 2번을 길게 눌렀다. 긴 신호가 한 번 갔다. 그 때 커피숍 문이 열리고 머쓱한 표정의 30대 남자가 들어왔다. 전화 목소리 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보였다. 남자는 청바지에 파커를 걸친 캐주얼한 차림에 좀 마른 얼굴이었다. 반장은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남자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종업원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반장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성운씨?"

  "."

  "우선 앉죠."

  "."

 

  반장과 남자가 자리에 앉자 그를 안내한 종업원이 커피 두 잔을 주문받고 돌아갔다. 반장이 먼저 자기 이름과 직책을 밝혔다.

 

  "저는 형사과 노형석 반장입니다."

  "네에."

  "어떻게 저희가 그 사건을 맡고 있는지 알게됐나요?"

  "가까운 경찰서에 연락했더니 그 사건은 다른 곳에서 담당하고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줬습니다."

  "아 그랬군요. 수성그룹 연구소 살인사건에 대해 하실 말씀이란게......"

  "......"

  얘기가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는 말을 못하고 또 망설였다. 전화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부담 갖지 말고 얘기하셔도 돼요. 뭐 얘기하기 곤란한 점이라도 있나요?"

  "아뇨...... 꼭 그렇지는 않은데, 잘못하면 죄없는 사람들이 다칠까봐......"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보를 들어도 저희가 확실하게 조사해서 진실을 밝혀내기 전에는 누구라도 벌을 줄 수가 없어요."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이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용산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컴퓨터 상가에서?"

  반장은 굳이 남영동에서 만나자는 그의 제안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뚜렷하게 알게 됐다.

 

  ", 전자상가에 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산에는 작년에 단체가 하나 생겼어요. 잘 아시겠지만 '한국 정보통신 발전을 위한 용산모임'이란 민간단체예요."

  "그런데요?"

  반장은 사실 이 단체에 대해 금시초문이었다.

 

 

  "이 단체에서는 정보통신의 세계를 주도할 핵심적인 프로그램 개발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어요."

  "네에......"

  "이 단체는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컴퓨터 기술과 물량을 보유하고 있는 용산이 앞장서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로 몇 몇 젊은 업주들이 모여 전 용산 차원에서 결성된 겁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가 코앞에 닥쳤는데 저희 기술력으로도 아직 똑부러진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뜻을 함께하는 젊은 업주들이 모여 단체를 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론 각자의 가게 일이 바쁘고, 어찌보면 참가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마지못해 참가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실정이라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겠군요."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최근에 발신인이 없는 우편물 하나가 우리 용산모임 주소로 날아와 단체 임원들이 함께 개봉을 했는데 그 안에 수성그룹 연구소에서 개발했다던 그 '포에버 21' 프로그램을 담은 CD가 들어있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반장의 눈이 둥그래졌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

  "프로그램은 멀쩡하던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혹시 프로그램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불완전한 건 아닌지 묻는 거예요."

  "아니요, 프로그램은 아주 멀쩡한 거였어요."

  반장이 놀라운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다.

 

  ", 그런데요?"

  "그런데 오늘 저희 회장이 그걸 가지고 나갔다가 강도를 당했어요. 아까웠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우리 게 아니었으니까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고 간부회의에서 결론이 났지만 전 아무래도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찾아왔어요."

  "네에......"

 

  용산의 남자는 반장의 반응을 살피느라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만약 그 CD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신고를 바로 하지 않으면 무슨 죄에 적용되나요?"

  남자가 말하길 꺼렸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반장은 생각했다.

 

  "글쎄요. 그게 죄가 된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어디서 훔친 것도 아니고 우편물로 날아온걸 보관했다고 죄가 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남자의 안색이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좀 더 일찍 신고를 해줬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 하지만 저희도 그게 왜 저희한테 보내졌는지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고, 오늘 CD를 빼앗기고 나서야 그게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모른 체 하고들 있지만 전 왠지 이걸 밝히지 않으면 문제가 더 커질 것 같아서......"

  남자가 얘기를 술술 털어놨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떤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연락을 하게 된 겁니다."

  ", 아주 잘 하셨어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혹시 그 CD를 강탈한 괴한이 누군지 알고 있나요?"

  "아니요, 그것까진 모르겠어요. 다만 저희는 그들이 아마도 초고속정보통신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회사나 단체일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예요."

  "그렇겠군요."

  반장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고민에 빠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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