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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2회> - 경찰들이 바라본 초라한 장례식 풍경

writerjang 2023. 1. 28. 02:46

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발신인이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고 하셨죠?"

  "."

  "지금 우편물 봉투는 가지고 오셨나요?"

  "아니요. 그것도 CD와 함께 빼앗겼답니다."

  "연락처를 좀 주시겠어요?"

  "."

 

  김성운은 가게 전화번호와 용산모임의 전화번호를 모두 적어주었다. 남자는 용산모임의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다고 했다.

 

17: 장례

 

  새벽부터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렸다. 날은 그래도 많이 풀린 편이었다. 이제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모양이다. 새벽에 잠깐 내린 비 때문인지 세상이 온통 맑고 투명한 빛이 완연했다.

 

  날씨는 장례를 치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화장을 치르고 뼛가루는 북한강에 뿌리기로 했다는 유가족의 얘기를 전해들었다. 장례시간은 오전 11시였다.

 

  반장은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아침부터 부산했다. 참석이라기 보다는 수사의 일환이라고 해야 옳았다. 장례식 풍경을 지켜보다 보면 고인 생전의 생활을 읽을 수도 있고, 간혹 단서가 될 만한 인물을 만날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장은 피살자의 장례식은 웬만하면 자신이 직접 참여하곤 했다.

 

  정박사의 명성과 사회적 지위와는 달리 장지인 구암리 북한강 나루터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십여명이 그의 장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기야 명을 다하지 못한 사람의 장례에 무슨 좋은 일이 있어 문상객이 들끓겠는가마는 평소 정박사와 그의 부인의 대인관계가 어느 정돈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동찬은 반장보다 먼저 와서 소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장이 모습을 나타내자 동찬과 소장이 아는 체를 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직 유가족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유가족이라고 해야 미망인과 열살짜리 아들밖에 없지만.

 

  반장이 동찬에게 잠깐 보자는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은 소장을 피해 강가에서 몇 걸음을 걸어나왔다. 반장이 동찬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수석연구원이 보이지 않네요?"

  ", 소장 얘기론 그가 오늘 연구소에도 출근하지 않았다는군요."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손중선은 조형사가 수사하고 있죠?"

  ". 조형사도 그를 만나려 했지만 그게 잘 안된 모양이예요. 어제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네에."

  "조형사는 손중선을 가장 유력한 혐의자로 보고 있는데 어제 그의 집에서 통장 하나를 발견했다는군요. 일시불로 3억원이 입금된 통장이었다는데."

  ",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걸?"

  반장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손중선에 대해선 이미 몇 가지 조사해놓은 게 있어요."

  ", 그러세요?"

  "3억원은 더 자세히 조사해봐야겠지만 제 생각엔 프로그램을 특정 단체에 넘겨주는 대가로 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네에.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가 광명시에 있는 고아원에 거의 매주 찾아가다시피 했다는군요. 봉사활동 차원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데, 오늘 조형사가 자세히 조사하기로 했어요."

  "네에...... 그 결과가 나오면 제게도 좀 알려주십시오."

  ", 그러죠."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에 장례가 시작됐다. 유가족이 배에 오르고 사공이 서서히 노를 저어 강 안쪽으로 배를 움직였다. 미망인이 상자에서 뼛가루를 한 주먹씩 꺼내 강물에 뿌리기 시작했다. 미망인은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열살짜리 아들만 훌쩍훌쩍하며 낮게 아빠를 불러댔다.

 

  동찬은 그 풍경을 지켜보다 문상객으로 온 정박사 고향친구들 곁으로 다가갔다. 친구라고는 딱 두 사람 뿐이었다. 전에 양형사가 가정부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했던가? 이들이 바로 부인이 만나지 못하도록 극구 말렸다던 그 친구들인가보라고 동찬은 생각했다. 동찬이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정박사 고향친구분들이죠?"

 

  두 사람이 수근대다말고 동찬이 말을 걸자 일제히 돌아보며 동찬을 위아래로 훑었다.

  "누구시죠?"

  그 중 한 명이 다짜고짜 동찬의 신분을 물었다.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는 한 마디에 기가 죽는 모습이 역력했다. 역시 농촌사람들은 순수했다.

 

  "뭘 좀 물어봐도 되죠?"

  ", 그러시죠."

  "오혜진이란 여자분 아시죠?"

  "오혜진이라면......"

  "같은 고향사람일텐데요. 정박사하고 예전에 어떤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 거예요."

  "오혜진...... , 혜진이!"

  고향친구 중에 트럭운전을 한다는 박달수가 생각난 듯했다.

 

  "혜진이라면 고향 후배죠. 일준이 하고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어요."

  "그 여자분은 아직 홍천에 살고 있나요?"

  "아니요, 벌써 이사갔죠. 저희도 못 본 지 꽤 오래 됐어요. 85년 쯤인가, 홀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혜진이도 서울로 이사가고 그 뒤로는 소식이 없었어요. 홍천에도 발을 뚝 끊었죠. 가끔 일준이한테 들은 얘기로는 서울에서도 두 사람이 만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사이였나요?"

 

  이번엔 농사를 짓는다는 강만식이 대답했다.

  "일준이 얘기론 대학을 마치면 혜진이랑 결혼할 거라던데, 막상 졸업을 하고 청첩장이 왔길래 보니 다른 여자더라구요."

  "어떻게 된 일이죠, 그게?"

  "일준이가 저 여자를 좋아해서 결혼한 게 아니예요."

  친구들도 역시 정박사의 부인 황미주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황미주가 자신들을 기피하고 정박사에게 고향친구들을 만나지 말라고 종용하던 내용들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 왜 황미주씨와 결혼을 하게 된 걸까요?"

  친구들은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말못할 사연이 있는 듯 했다. 동찬이 넘겨짚었다.

  "오혜진씨를 버리고 황미주씨를 선택한 것은 돈 때문이었지요?"

 

  박달수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얘기를 꺼냈다.

  ", 맞아요. 돈 때문이었어요. 그 땐 일준이 어머님이 중병을 앓고 계셨는데 무척 위독하셨거든요. 수술비도 없고 입원을 할 상황도 아니고. 어머님은 일준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일준이가 어떻게 알 게 됐는지 결혼 전에는 홍천에 뻔질나게 오더라구요."

  "그랬군요."

  "저희들은 말렸죠. 그래도 사랑을 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 어머님 수술비야 다른 방법으로도 만들면 되지 않겠냐, 평생 후회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면서 결사적으로 말렸지만 일준인 그 방법밖엔 없다더군요. 결국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예요."

 

  "오혜진씨는 홀어머니 말고 다른 가족이 또 있나요?"

  "홀어머니 말고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어렸을 때 서울 어느 집에 양자로 갔지 아마?"

  박달수가 얘기를 하면서 강만식의 동의를 구했다. 워낙 오래된 얘기라 확신이 없는 듯 했다.

 

  "맞을 거예요. 그 애 이름이 남수였어요. 오남수. 일곱살 쯤이니까 철이 다 들어서 양자로 간거죠. 그 뒤에도 지 누나하고는 몇 번은 만났던 것 같은데, 고향엔 영 찾아오지 않았어요. 잘 살고 있겠지 뭐!"

  ", 그럼 오혜진이나 그 동생, 누구라 그랬더라...... 오남수는 모두 서울에 살고 있겠군요?"

  "그렇겠죠. 그런데 서울이라는 것만 알지 고향에는 통 발길을 주지 않으니 소식을 알 수가 있나, 쯧쯧."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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