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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48회> - 신경전으로 실마리를 얻어내려는 형사

writerjang 2023. 2. 6. 01:57

  "정신 똑바로 차려!"

  "."

  "권박사 입단속 잘 시키고. 애들 하나 붙여!"

  "!"

  "그리고 지하실 건은 어떻게 됐어?"

  "손중선 말입니까?"

  "그래."

  "저희들이 꽉 잡아놓고 있습니다."

  "그걸 지금 잘하는 짓이라고 나불대는거야?"

  "?"

  "당장 풀어줘, 냄새맡기 전에!"

  "? ,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 들어온 형사나부랭이는 웬만하면 건드리지 말고. 지금 자네한테 간다니까 연막 잘 쳐야돼, 알았나?"

  "!"

  "돌아가면 즉시 보고하고!"

  "!"

 

  전화를 끊자마자 바깥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곽부장이 인터폰으로 무슨 일인지 알아봤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무턱대고 들어가려해 제지하고 있는 중이라는 대답이었다.

 

  곽부장은 손님이 누군가 확인해보지도 않고 지시했다.

  "들어오시라고 해!"

  "......? 알겠습니다."

  인터폰에서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젊은 여자 하나가 문을 힘껏 열고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곽부장의 목소리가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사근사근했다.

 

  "기획부장이시죠?"

  ", 그런데요. 우선 앉으시죠."

  곽부장이 여유있는 태도를 보였다. 낌새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여기 시원한 걸루 두 잔만."

  곽부장은 인터폰을 눌러 음료수를 시키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그것보다 먼저 여기가 회사 맞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저 밖에 있는 사람들 직원인가요, 아니면 폭력배들인가요? 이거 공무집행방해에 해당된다는 거 몰라요?"

  "아하, 저 사람들이요. 직원은 아니고 하청업체에서 보낸 경호원들이예요. 애들이 무례하게 굴었다면 용서하세요."

 

  정형사는 곽부장의 가식적인 목소리를 금세 알아차렸다. 말투에서부터 조직폭력배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기가 누구라고 신분도 밝히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알아서 기는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만 봐도 이미 형사가 들이닥친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정형사는 이들에게 CD얘기는 꺼내봤자 본전도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뭘 가지고 이들을 요리할 것인가? 우선 운만 띄워보기로 했다. 그의 반응만 체크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 회사에서 정보통신 프로그램과 관련해 발표회를 개최하죠?"

  ", 그렇습니다만."

  역시 그는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으로 조금의 틈도 보이려 하지 않았다.

 

  "준비는 잘 돼갑니까?"

  "물론이죠. 신문에서 못 봤나요?"

  "봤죠. 그런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더군요."

  "뭐가요?"

  곽부장이 슬슬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래가지곤 태산이 정보통신업계를 주도할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부장님은 컴퓨터 잘 아세요?"

  보나마나 컴맹이 분명하다는 게 정형사의 직감이었다. 곽부장은 주눅든 사람처럼 맥없이 대답했다.

  "그냥 조금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말려들기 시작했다.

 

  "속시원하게 말씀 좀 해보시오, 뭐가 문젠지!"

  "저희 경찰의 컴퓨터 전문가들이 신문에 난 내용을 가지고 검토를 해봤어요. 그런데...... "

  "그런데......"

  "혹시 수성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거 아시죠?"

  "글쎄올시다.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곽부장은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베테랑이었다. 수성그룹이라는 실명이 거론되자 모르는 척 했다. 정형사에게 끌려가는 듯 하더니 다시 자기를 수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형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곽부장의 표정변화를 유심히 간파하고 있었다.

 

  "신문에 게재된 태산의 프로그램은 수성에서 개발한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세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예요."

  정형사의 말이 떨어지자 곽부장의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미 '포에버 21'을 확보해 뒀기 때문에 지금 형사의 말은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라는 게 순간 곽부장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형사는 그 표정변화 역시 놓치지 않았다. 곽부장은 자기의 표정이 형사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형사에게 연막을 치려는 의도에서 곽부장이 엄살을 떨었다.

  ", 그렇소? 그럼 이걸 어쩐다? 센터에 얘기해서 프로그램을 보완하라고 해야하나?"

  "그런 평가는 처음이신가보죠?"

  "물론이오. 처음이고말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기획한건데. 여기서 좌절되다니......"

  곽부장은 이제 눈물까지 글썽이며 억지연기까지 하고 있었다. 정형사는 이제 알아볼 건 다 알아본 셈이 됐다. 곽부장의 눈물겨운 연기를 속으로 비웃으며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애석하게 됐습니다. 어쩌겠어요, 정부가 지원하는 일인데 그냥 대놓고 맞설 수도 없지 않겠어요? 한다고 해도 이젠 시간이 너무 없네요."

  "그러게나 말이오."

  정형사는 곽부장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기를 비웃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맘껏 비웃어라, 고 속으로 외쳤다. 정형사가 마지막으로 곽부장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만일 이 일이 실패하면 부장님은 짤리나요? 그럼 앞으로 대책은 있나요?"

  정형사가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곽부장의 약을 올렸다. 곽부장은 어차피 형사나부랭이가 사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니까 참아야 한다고 몇 번이고 속으로 다짐했다.

 

  ", 어떻게 되지않겠소?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칠려구......"

  어려운 속담은 아니었지만 곽부장의 입에서 문자가 나왔다. 정형사는 깡패두목도 오래하면 유식해지는가 보라고 생각했다.

 

  정형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써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곽부장은 속으론 즐거운 마음으로 형사를 보내면서도 내내 슬픈 표정을 지으려 애를 썼다. 정형사가 돌아갔다.

 

  형사가 돌아가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제대로 잘 대처하긴 했는데 바싹 약이 올랐다. 그는 형사가 다녀가면 보고하라는 회장의 지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형사에게 보복할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곽부장은 인터폰을 눌렀다.

  "부르셨습니까, 부장님!"

  "! 방금 그 애숭이 손 좀 봐!"

  "?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이 자식이?"

  "부장님, 그래도 형산데......"

  "하라면 하지 뭔 말이 많아, 셰꺄!"

  ", 알겠습니다."

 

  곽부장은 기분이 상하면 제대로 자기통제가 안되는 인물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진정하려고 해도 분이 삭지 않았다.

  그 때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됐나?"

  ", 회장님. 형사는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래? 잘 해서 보냈지?"

  ", 염려 놓으십시오."

  "자네 말 믿어도 되나?"

  ", 회장님!"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곽부장은 여전히 분에 못이겨 혼자 씩씩거리며 방안을 누비고 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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