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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1회> - 미완성 프로젝트를 수정하는 용산모임

writerjang 2023. 2. 12. 00:40

  정형사는 순간 재빠른 동작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떼면서 속도를 줄이며 옆 차선으로 비켜 달렸다. 소나타엔 검정색 정장차림의 사내가 핸들을 잡고 있었다. 무턱대고 대로로 뛰어든 소나타 승용차는 주저함도 없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차선을 비켜 피하긴 했지만 소나타의 상태로 봐선 언제 다시 달려들지 모를 기세였다. 정형사는 룸미러로 뒤쪽 상황을 힐끗 살폈다. 뒤에선 회색 그랜저가 고속으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정형사의 차가 속도를 줄이며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그랜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정형사의 차를 들이받기라도 하려는 듯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 빠르게 질주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운전이라면 정형사도 만만치 않았다. 정형사는 핸들을 굳게 잡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소나타를 추월해 지나갔다. 차가 급속히 가속됐다. 두 차량이 모두 뒤로 멀어졌다.

 

  정형사는 구름다리를 넘어 유유히 용산으로 진입했다. 상가에 진입하자마자 정형사는 룸미러를 올려다 봤지만 이젠 회색 그랜저도 청색 소나타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정형사는 아무 의심도 없이 요즘 애들 운전습관이 다 저래, 하고 금세 잊어버렸다.

   

  동찬은 이제 명단에 마지막 하나 남은 오남수의 호적을 찾기 위해 마포구로 향했다. 동찬의 머리는 복잡했다. 이제 사건 수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사건 당일날의 정황, 주변 인물들의 움직임, 사건 당일 화상통신이 저장된 백업파일, 백업파일 문서요약에 기록된 미국 전화번호, 그리고 아직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포에버 21'이 고스란히 담긴 CD의 등장은 수사를 절정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속시원하게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자못 마음 걸리는 게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또 다치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태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들 조직은 때에 따라선 사람의 목숨을 아주 가볍게 여긴 전례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선 입막음을 위해 제거해야만 하는 대상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그 대상은 권남우, 손중선, 그리고 어쩌면 수성그룹 연구소 소장이 될 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마포구청 호적부 열람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명단에 기록된 오남수를 찾아봤지만 오혜진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양자로 입적되면서 호적을 완전히 옮겨간 모양이었다. 이제 희망은 오피스텔에 전송됐을 팩스밖에 없었다. 주소지나 호적지가 지방인 오혜진과 오남수의 호적부가 지금쯤은 보내졌을 것이다. 동찬은 가는 길에 용산에 들러볼 생각으로 핸들을 틀었다.

 

  정형사는 용산모임 임시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은 상가의 다른 가게들 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로 아주 비좁았다. 사무실엔 전화받는 여직원 혼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기 사무국장님 좀 만나러 왔는데요."

  ", 그러세요? 국장님은 지금 가게에 계신데."

  여직원은 정형사를 위아래로 훑으며 대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가게가 어디죠?"

  ", 밖으로 나가시면 오른 쪽 맨 끝에 '경성전자'라고 쓰인 간판이 보일 거예요. 바로 거기가 국장님 가게예요."

  ", 그래요? 고마워요."

 

  정형사는 경성전자라 쓰인 간판을 찾아 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직원이 손님인 줄 알고 상냥하게 인사했다. 직원은 한 명 뿐이었다.

  "어서오십시오!"

  ", 다른 게 아니라 사무국장님 좀 만나러 왔는데요......"

  "사무국장님 이라면...... 아하, 저희 사장님요?"

  ", 그렇게 되나요?"

 

  미모의 아가씨가 자기네 사장을 만나러 왔다는 소리를 듣고 이제 갓 스무살이나 넘었을 나이로 보이는 직원이 빙긋 미소를 흘렸다. 정형사를 사장과 무슨 특별한 관계로 보는 것 같았다. 정형사는 직원의 야릇한 미소에 기분이 좀 나쁘긴 했지만 그냥 받아 넘겼다.

 

  "사장님! 누가 찾아오셨어요!"

  그 좁은 가게의 뒤쪽으로 사장실이 있는지 직원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고 나서 직원은 뚜껑을 열어놓은, 속이 들여다보여 조금은 볼썽사나운 컴퓨터를 여기저기 만져가며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해!"

 

  칸막이 너머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이란 사람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 나오기는커녕, 고개도 내밀지 않은 채 손님보고 오라가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물건을 사러온 고객이 아니라 자기를 따로 만나기 위해 온 친구쯤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불쾌하기 짝이 없는 태도들이었다. 또 소리는 왜 그렇게 안팎에서 질러대는지. 원래 전자상가가 좀 시끄러운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굳이 소리를 질러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녕하세요?"

  정형사가 나타났는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에 열중하고 있던 사장이란 사람이 정형사의 인사를 듣자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아 네, 어서오세요! 난 친군줄 알고 그만...... 실례했습니다. 죄송해서 어쩌죠? 컴퓨터 보시게요?"

  정형사에게 말할 틈도 주지않고 쏟아붓는 사장의 변명을 듣다말고 정형사는 웃음이 절로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사장의 안절부절 못하는 순진한 모양새가 그녀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아니, ...... 왜 그러시죠?"

  "아니예요, 아무 것도. 용산모임 사무국장 맞죠?"

  ", 맞는데요?"

  "전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 ......"

  사장의 표정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포에버 21' 프로그램 CD 때문에 온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앉으시죠."

  ", 그래요."

  정형사는 사장이란 사람이 생각보다 젊어 부담이 덜했다. 말도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장사는 잘 되나요?"

  "경기가 워낙 안좋아서...... 보시다시피 이렇게 파리 날리고 있지 않습니까? 문 닫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용하다고들 합니다."

  사무국장이라는 김성운은 생각보다는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용산모임 일을 좀 하느라......"

  "무슨 일인데요?"

  "프로그램을 좀 짜고 있었어요."

  "정보통신 프로그램인가요?"

  "......"

  "그거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어요?"

  정형사가 말을 하며 컴퓨터쪽으로 고개를 쓰윽 내밀었다.

 

  "아니 저...... 지금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

  정형사가 그냥 한 번 던져본 말에 김성운이 퍽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완성이 안됐으면 안된거지 이렇게 당황하는 건 또 뭐란 말인가, 하고 정형사는 의아심이 생겼다.

 

  "저희 반장님을 만나셨다구요?"

  ", 제가 그 때 다 말씀드렸어요."

  사장이란 직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이에 맞게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전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 왔어요."

  "......"

  "국장님도 '포에버 21' CD를 받고 난 뒤에 프로그램을 살펴봤죠?"

  ", 회장님 하고 저하고 같이 봤어요."

  "프로그램은 어떻던가요?"

  "제가 보기엔 거의 완벽했어요. 특히 정보전달력과 대규모 수용능력이 아주 탁월한 프로그램으로 보였어요. 특수한 집단이나 연구소가 아니라면 감히 만들어낼 수 없는 그런 거였습니다."

  "그럼 수성 연구소에서 만들어진게 확실하다는 얘기죠?"

  "물론이예요. 국내에선 그런 프로그램을 어느 집단도 흉내낼 수 없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하던가요?"

  "그럼요."

 

  '포에버 21'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김성운은 컴퓨터를 하는 사람답게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음 속에 있던 생각까지 술술 털어놓았다.

 

  "제 생각에 그런 작품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힘들거예요."

  "CD가 탐나진 않던가요? 잘 하면 큰 돈을 벌 수도 있을텐데."

  "......."

  갑자기 김성운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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