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WRITERJANG

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3회> - 용산모임 수사에서 감을 잡은 정형사

writerjang 2023. 2. 12. 23:40

  동찬은 고개를 차 안으로 반쯤 들이밀고는 왼손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고 오른손으론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간편한 활동복 차림 속에 감춰진 그녀의 가냘픈 허리의 탄력이 동찬의 손가락 끝 말초신경으로 느껴졌다.

 

  몇 번 대면해보지 않았지만 여느 여자 경찰들과 달리 정형사가 평소 얌전하고 다소곳한 매력을 가진 인물이란건 느낄 수 있었지만 이렇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진 못했었다.

 

  동찬은 천천히 양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일으키려고 시도해봤다. 그러나 자세가 불안해선지 그녀를 쉽게 일으켜 세우지는 못했다.

 

  할 수 없이 동찬은 차 안으로 고개를 더욱 깊숙히 들이밀고 다시 시도해봤다. 이번엔 상체까지도 절반 정도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얼굴이 닿을랑말랑한 거리까지 근접했다. 야릇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동찬이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조금 일으키자 이윽고 두 사람의 얼굴이 포개질 정도로 아주 가까워졌다. 동시에 두 사람은 제각각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피했지만 포옹하는 자세를 모면하기는 어려웠다. 얼굴이 닿고 어깨선이 겹쳐졌다.

 

  그녀를 조금 더 들어올리며 밖으로 이끌어내려 하자 이젠 가슴 부위까지 포개졌다. 날씬한 몸매에 어떻게 이런 가슴이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는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뭉클하며 부딪히는 젖무덤의 부드러운 감촉이 두터운 옷속을 파고 들어 동찬의 온몸으로 전달됐다.

 

  그녀는 부끄러웠던지 얼굴에 홍조가 만연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몸을 동찬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쑥스러웠지만 여전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젠 거의 차 밖으로 나왔지만 두 사람은 마치 서로를 부둥켜앉고 키스라도 하려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몸이 차 바깥으로 빠져나올수록 그들의 자세는 점점 진한 포즈로 이어지고 있었다.

 

  동찬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끌어안았던 손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순간, 그녀의 몸이 스르르 무너지며 그에게 더욱 간절하게 매달렸다. 다리가 풀려 버틸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되겠어요. 이렇게 해봐요."

  동찬이 그녀의 한쪽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어 부축하곤 자기의 차가 있는 쪽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순식간에 야릇한 분위기가 깨지고 두 사람은 몽롱했던 정신을 수습했다.

 

  그녀를 먼저 조수석에 태우고 난 뒤 동찬은 운전석으로 달려갔다. 안전벨트를 멘 다음 동찬이 걱정스런 표정을 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겠어요?"

  ", 좀 놀라서 힘이 빠진 것 같아요.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죠."

  "아니, 그러면 안돼요.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갑시다."

  말을 마치자마자 동찬은 핸들을 꺾어 한강병원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니, 전 괜찮아요. 병원엔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나중에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어쩔려구......"

  "괜찮을 거예요. 제가 겉으론 이래봬도 몸이 아주 튼튼하거든요."

 

  정형사가 병원 가기를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동찬도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차를 청량리경찰서 쪽 방향으로 선회했다.

 

  "아니, 어떤 놈들이 이런 무모한 짓을 하죠?"

  "제 생각엔 태산의 곽부장 짓 같아요."

  "내 이 놈을 당장에 그냥!"

  동찬은 그를 요절낼 듯이 흥분했다. 그러나 동찬의 오버액션을 눈치빠른 정형사는 알고 있는 듯 했다.

 

  "아니, 그냥 놔두세요. 어차피 그들은 오래 못가요."

  정형사가 그를 말리며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왜요?"

  "제가 보기엔 놈들이 CD를 탈취해간 것 같아요. 곽부장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그가 왜 정형사에게 테러를 가하죠?"

  "그를 떠보려고 태산 기획실에 들러 약을 좀 올렸거든요."

  동찬이 정형사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용산엔 어쩐 일로......"

  "용산모임 사무국장을 만나고 가는 길이었어요."

  "네에."

 

  두 사람의 대화가 잠깐 끊기자 정형사는 휴대폰을 꺼내 교통계에 전화를 걸었다. 사고지점과 차량을 견인할 장소를 차분하게 알려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굉장히 차분하네요?"

  "아니 뭐, 어차피 처리해야 할 일이니까요."

  "사무국장에게선 뭔가 좀 얻어냈나요?"

  "아직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나는 용산모임 회장을 만났는데......"

  "그러세요?"

  "우리 어디 잠깐 들러서 그 얘기나 마저 하고 갈까요? 몸도 좀 회복시킬겸."

  "......"

  ", 싫어요?"

  "아니요. 저야 뭐......"

  정형사는 여전히 기운이 없는게 맘에 걸리는 듯 했다.

 

  동찬은 숙대입구에 들어서자 차를 오른쪽으로 꺾어 골목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세우더니 가까운 카페로 그녀를 이끌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이제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차렸다.

 

  두 사람은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찬은 문가에서 제일 가까운 테이블을 골라 의자를 빼고는 그녀가 먼저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녀의 동작은 이제 거의 회복된 듯 자연스러웠다.

 

  "사무국장이란 자가 뭐랍니까?"

  동찬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그의 얘기보단 행동이 좀 이상했어요."

  "그래요? 어떻게요?"

  "뭔가 맘에 걸리는 점이 있는 것 같았어요."

  "어떤 점이요?"

  "그가 자기 가게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길래 뭘 하는지 물어봤더니......"

  "물어봤더니?"

  "정보통신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기에 좀 보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몹시 당혹스러워 하더라구요. 뭔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네에."

  "완성이 안돼서 보여주기가 좀 곤란하다고는 하던데, 문제는 그의 표정이었어요."

  동찬이 정형사의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미완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 생각엔 '포에버 21'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그가 CD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 CD는 이미 그들 손에 없잖아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회장 말로는 사무국장이나 자기나 두 사람만큼은 언제든 그 CD를 꺼내볼 수 있도록 보관했었대요. 최소한 CD를 탈취당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회장이나 국장이 혹시 그 CD를 복사해뒀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죠."

  "그런데 사무국장이란 자는 CD가 회장 책상서랍에 들어있어 마음대로 꺼내볼 수 없었다던데요?"

  "그렇게 거짓말을 하니까 그게 더 이상한거죠."

  "정말 그렇네요. 그 표정에다, 거짓말까지...... 그럼 그가 제보한 이유는 자기의 죄를 은폐시키기 위해서였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잃어버린 CD를 찾기만 하면 그 문젠 금방 알 수 있게 되겠죠."

  "네에......"

  "권박사를 만난 일은 잘 됐나요?"

  "글쎄요, 권박사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문젠."

  "그의 마음이 움직여줄까요?"

  "두고 봐야 알겠죠."

  대답을 하면서 정형사는 살짝 미소를 띄웠다.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의 미소는 더욱 아름다웠다. 동찬이 빨려들 듯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계속)

포에버 21 <54회>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