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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5회> - 피의자와 닮은꼴의 주변 사람들

writerjang 2023. 2. 14. 01:45

  그러나 동찬은 자신의 입술에 더 이상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여기까지가 자신이 용납할 수 있는 상한선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냥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때 정형사가 깨어났다. 마치 마법에서 풀려난 동화속의 공주처럼 그녀는 커다란 눈을 살며시 뜨고 세상에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다만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입술을 손등으로 살짝 문질렀다. 좀 이상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려 주위를 둘러보며 동찬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이제 피로가 좀 풀렸어요? 여긴 한강고수부지예요."

  "아니, 여기엔 왜......?"

  "글쎄요. 공주님 침실을 마련하다 보니 마땅한 데가 없어서라고 하면 변명거리가 좀 될까요?"

  ", 죄송해요. 깜빡 잠이 들었어요."

  "별 말씀을. 소인은 공주마마가 원하시는 일은 뭐든지 오케입니다."

  동찬의 스스럼 없는 농담에 긴장이 풀리는지 그의 눈을 미안스럽게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 그럼 이제 출발하겠습니다요!"

  고수부지를 빠져나와 청량리경찰서로 향하는 차 속에서 동찬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한 마디 던졌다.

  "피곤했었나봐요."

  "...... 덕분에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

  그녀의 안색이 훨씬 밝아졌다. 동찬은 그런 정형사를 바라보며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동찬은 경찰서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정형사는 차문을 열다말고 동찬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가실거예요? 지금 손중선을 체포해 취조하고 있다던데."

  ", 맞아. 그랬죠? 어떻게 되고 있는지 들어갔다 가야겠네요."

 

  동찬은 핸들을 꺾어 정문을 통과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나란히 형사과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형사과 사무실엔 반장이 혼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녕하셨어요, 반장님?"

  ", 어서오세요!"

  "어떻게 됐습니까?"

  "글쎄, 잘 안되네요."

  "얘기를 안합니까?"

  "그런게 아니라 증거가 너무 부족해요. 사건 당일 정황이나 지금껏 수집한 자료는 그가 범인이란 걸 말해주는데, 결정적인 게 없어요. 특히 그 CD."

  "그렇겠네요. 제가 한 번 들어가보죠."

 

  동찬이 정형사의 안내를 받아 취조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취조실에 들어가자 그렇잖아도 비좁은 공간이 사람으로 가득찼다. 양형사가 눈치껏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동찬과 정형사는 조형사 뒤켠에서 취조장면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조형사의 신문이 계속됐다.

  "그래도 이 친구가! 계속 그렇게 오리발 내밀꺼야!"

  조형사의 말투는 욕만 안했을 뿐이지 시종일관 거친 반말이었다. 박사고 뭐고 일단 경찰에 끌려온 이상 그런 건 신경 안쓴다는 투였다. 동찬과 정형사는 그런 취조장면을 조용히 지켜보고 서있었다.

 

  "......"

  "그럼 며칠간 종적을 감춘 이유는 뭐야? 수사망을 피해 미국으로 가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겠지!"

  조형사가 질문하고 대답하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일인이역을 다 해가며 울그락불그락 하고 있었다.

 

 

  "저도 알고보면 피해자예요. 태산이 그 통장을 일방적으로 보내주고선 프로그램을 건네주지 않는다고 저를 감금했어요. 저는 통장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프로그램만 내놓으면 된다고 닦달을 했어요. 저는 이제 프로그램은 못쓰게 돼버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몇 번이고 그들에게 포기하라고 종용했어요."

  "그 감금 장소가 어딘데?"

  "눈가리개를 했기 때문에 저도 어딘지는 정확하게 몰라요. 다만 서울이라는 것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래?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어. 그렇게 혼자서 훌쩍 떠나버리면 고아원에 있는 조카는 어쩔 생각이었어?"

  "지금 제 능력으론 어쩔 수가 없어요. 원장님께 다음에 형편이 좋아지면 찾으러 온다고 부탁을 해놨어요."

  "나 참! 그러니까 당신이 형편없는 사람이란 얘기야! 그 불쌍한 애를 두고 저 혼자 살겠다고 떠나, ?"

  "......"

  "그리고 김경호는 또 뭐야? 뭔가 걸리는 게 있으니까 가명을 쓴거잖아!"

  "그런 사생활까지도 들먹일 필요가 있나요?"

  "아니 그래두 이 친구가......?"

  손중선의 반격에 조형사는 말문이 막혔다. 손중선은 때를 만난 듯 오히려 조형사에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 이름은 그냥 굳이 저를 알리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쓴거예요, 됐나요?"

  "어쨌든 당신, 잘 생각해야돼. 버티면 버틸수록 죄가 더 커지는 거 알아?"

  "......"

  "좀 있다 다시 올테니까 어디 그 때 한 번 해보자구!"

  그리고 조형사는 자리를 떴다. 동찬이 손중선에게 뭔가를 얘기하려다가 그만뒀다. 동찬과 정형사도 취조실을 나갔다.

 

  동찬이 조형사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손중선의 조카가 고아원에 있다는 게 무슨 말이예요?"

  "모르셨어요. 제가 알아보니까 손중선이 누나 딸이래요."

  "그래요? 그 얘기 자세하게 좀 해주시겠어요?"

  조형사는 동찬에게 고아원에 찾아가 알아본 내용들을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아이가 선천성 소아마비라는 사실까지도. 그리고 묻지도 않은 고아원의 환경이며, 생활상을 얘기하며 불쌍한 애들이라는 얘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조형사는 그렇게 한참을 혼자 떠들다말고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동찬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손중선이하고 꼭 닮았어요. 지 딸이라고 해도 속겠더라니까요?"

  조형사의 말을 듣고나서 동찬은 혼잣말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닮았다...... 닮았다? 얼굴이 닮았다? , 그렇지!"

  동찬은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 장단까지 맞추며 좋아했다. 그리고 형사과 사무실로 달려가 양형사를 불렀다.

  "양형사님!"

 

  양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찬에게 대답했다.

  "! 부르셨습니까?"

  "기억나세요? 며칠 전에 만난 이단비. 그 정박사 내연의 여인."

  ", 기억납니다. 그런데 무슨......?"

  "혹시 처음 봤을 때 꼭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나요?"

  "좀 받았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영화배우나 탤런트, 뭐 그런 사람들 중에도 비슷한 사람이 없는거 같았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죠."

  "그런데 그건 왜.......?"

  "아니예요 아무 것도. 하여튼 분명히 그런 느낌을 받았죠?"

  ", 확실합니다."

  "잘 알았어요. 일 보세요."

 

  동찬은 양형사와 얘기를 마치고 반장에게 다가갔다.

  "반장님, 그를 풀어주는게 좋겠어요."

  "누구, 손중선 말씀이세요?"

  "."

  "아니 왜요?"

  "지금 그를 취조해봐야 나올 게 없어요."

  "난 도무지 무슨 말인지......"

  "곧 알게 될 겁니다. 조사를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네에......"

  "그럼 전 이만."

 

  동찬이 반장에게 간단하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 물론 오늘도 역시 정형사에게 눈인사를 하는 건 빼먹지 않았다. 저 사람은 아무래도 카사노바 뺨칠 위인이라고, 형사들은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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