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WRITERJANG

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7회> - 지방 면사무소에서 가족관계 조사

writerjang 2023. 2. 14. 02:28

  상대편이 누군지,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자료를 뒤적이며 건성으로 전화를 받던 정형사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바뀌며 전화에 집중하는 모습이 책상 너머로 보였다. 정형사는 간단하게 몇 마디 대답을 하더니 이내 전화를 끊었다.

  조형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정형사에게 외쳤다.

  "정형사! 무슨 전화야?"

 

  정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장에게로 다가와 통화내용에 대해 보고했다.

  "태산 권남우 박산데요, 내일 발표회에 참석할거냐고 묻네요."

  "아니, 그건 왜?"

  "글쎄요? 참석할 생각이라니까, 알았다며 바로 전화를 끊는데요."

 

  정형사 얘기를 다 듣고나서 조형사는 권남우 박사를 비웃는 말을 내뱉었다.

  "참 되게 싱거운 사람이네. 그것 때문에 전활한거야, 이 밤중에?"

 

  반장은 잠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정형사는 반장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머지 두 형사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반장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반장의 말이 시작됐다.

  "모두들 잘 들으라고. 오늘은 일단 여기서 취조를 마치고 손중선은 풀어주는 게 좋겠어. 출국금지시키는 것 잊지말고!"

  반장이 조형사를 쳐다보며 다짐을 받으려는 듯 강한 어조로 지시했다. 조형사는 손중선을 풀어주라는 말에 불만 섞인 눈초리로 반장을 쳐다봤다. 그러나 더 이상 반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일 두 시라고 했나?"

  반장이 이번엔 정형사에게 물었다.

  "발표회 말씀이시죠? , 내일 오후 2시 태산그룹 대강당으로 잡혀있어요."

  "그래? 그러면 모두들 내일 그쪽으로 모이도록 하지. 오전에 볼 일들 마저 보고."

  ", 알겠습니다!"

 

  반장이 태산의 발표회장으로 모이라는 지시가 정확하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형사들은 더 이상 질문없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25: 발표회

 

  동찬은 7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여관에서 나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길 거너편에 마침 문을 연 식당이 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백반을 시켜놓고 조간신문을 뒤적였다. 경제면에 태산의 발표회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기사에는, 오늘 오후 2시 태산그룹 대강당에서 역사적인 기념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한 대기업 그룹사에서 세계 최초로 정보통신의 역사에 획을 그을 탁월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세상에 내놓았다, 21세기 정보통신의 홍수 속에 빚어질 인류의 대혼란을 막을 귀중한 프로그램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이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태산에서 해냈다, 고 쓰여 있었다.

 

  거창하기 그지없었다. 신문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태산을 극찬하고 있었다. 물론 신문사는 태산 기획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토대로 내용을 요약해 기사화했을 것이다. 신문사에서 최대한 걸러냈을텐데도 이런 종류의 문구들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얘기는 그만큼 다가올 세기에는 무엇보다 정보통신 문제가 인류 초미의 관심사라는 것의 반증이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인류를 복되게도 하고 또 한편으론 정보의 범람이 가져올 대혼란으로 인해 해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찬은 8시 반쯤 식당에서 나와 군청으로 향했다. 아직 민원실 업무가 시작되려면 30분이나 남았다. 그러나 그 시간까지 기다릴 여유가 그에겐 없었다.

 

  동찬은 출근하는 직원들을 따라 군청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민원담당 직원들은 이미 출근해 있었다. 동찬은 그 중 직급이 좀 높아보이는 남자직원에게 다가갔다. 그는 동찬을 보더니 근엄한 표정으로 정색을 하며 말했다.

  "선생님, 아직 업무 시간이 안됐습니다. 30분 뒤에 와주세요."

 

  동찬은 공무원들의 오만한 태도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대도시나 지방이나 매한가지였다. 아니, 지방이 오히려 공무원의 세도가 더 막강한 편이었다.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이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요즘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그나마 단체장이 민선으로 바뀌면서 공무원들의 태도가 많이 좋아진 편이라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동찬이 말했다.

  "저는 선생이 아니라, 경찰입니다."

  동찬이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혔지만 그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어차피 상대가 경찰이라 해도 같은 공무원일 뿐이라는 생각에서였을 지도 모른다.

 

  동찬이 한마디 덧붙였다.

  "급하게 알아볼 일이 있어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말은 대번에 먹혀들어갔다. 그건 바로 지방 공무원들이 중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 그러세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여기 이 사람을 찾고 있는데, 본래 이곳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서울로 입양된 사람이예요."

  남자직원은 동찬이 내민 메모지를 유심히 들여다봤다. 메모지엔 손중선의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었다. 물론 이름은 오남수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동찬의 생각이 맞다면 오남수의 호적원본에는 손중선의 생년월일이 기재돼 있어야 했다.

 

  "생년월일이 68년도니까 74년도에 입양갔네요? 벌써 25년 전 일이면 기록이 지워졌을 수도 있겠네요. 나머지 식구들이 살고 있는 주소는 알고계신가요?"

  "그의 모친은 벌써 사망했고, 누나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 살고있지는 않아요."

  "그러면 호적원본을 찾아봐야 하는데 여기선 알 수가 없어요. 읍이나 면사무소에 직접 가보셔야겠네요. 그런데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서 지금은 원본 마저도 말소됐을 수가 있어요. 어쨌든 우선 목록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두촌면 만월리 134 번지라......"

 

  직원은 컴퓨터 단말기를 두드려댔다. 동찬이 준 정보를 가지고 한참동안 입력하더니 직원은 모니터를 보면서 동찬에게 말했다. 그의 무덤덤하게 말했다.

  "역시 컴퓨터상에는 기록이 없네요. 호적지가 바뀐거 같아요 "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요?"

  "두촌면에 가셔서 알아보는게 더 빠를 것 같네요. 그곳에서 원본을 검토해보세요."

  "......"

  동찬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장소를 옮겨다니며 시간을 마냥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태산의 프로그램 발표회 시간까지는 서울에 가 있어야 했다. 최소한 10시 쯤에는 서울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군청에서는 알아낼 방법이 더 이상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든지 이 문제를 풀기 전에는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동찬은 서둘러 두촌면 면사무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촌이라 이동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길을 찾느라 20분을 헤매고 나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면사무소는 규모는 작았지만 생각외로 깔끔했다. 직원 세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찬은 그 중 한 직원에게 다가가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기꺼이 돕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군청에서 와는 달리 공무원들의 태도에 순수한 면이 있었다.

 

  "자료실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걸릴겁니다. 같이 가보시죠."

  호적계 직원은 동찬에게 말하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걸어갔다. 동찬이 뒤따랐다. 직원은 육중한 철제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도서관의 서고처럼 서류철이 책꽂이에 빽빽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직원이 동찬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당시엔 이 주소에 살고 있었겠죠?"

  ", 그럴 거예요."

  "당시 호주가......?"

  "신남숙입니다. 그 사람 어머니예요."

  "만약 본적지가 다른 곳이라면 여기서는 찾아봐야 소용이 없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홍천에서 살았다니까 그가 태어난 두촌면이 아니더라도 본적지는 아마 홍천군 어디로 돼 있을 거예요."

  동찬이 짐작으로 말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아무런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본적지가 두촌면이 아니면 여기 있는 옛날 호적부를 다 찾아봐야 할거예요."

  직원이 먼지가 뽀얗게 쌓인 호적원부를 몇 번씩이나 뒤져보더니 이내 동찬에게 말했다.

  "여긴 없네요."

  "없어요?"

  동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제 홍천읍을 포함한 면소재지 10개를 모두 뒤져야한다는 얘기다. 동찬은 너무 막연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속)

포에버 21 <58회>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