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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6회> - 급 물살을 타는 사건 수사현황

writerjang 2023. 2. 14. 02:13

24: 타임머신

 

  동찬은 오피스텔로 돌아와 데스크탑 컴퓨터를 확인했다. 팩스를 보내기로 한 지방의 관공서에서 보내온 14명의 오혜진과 오남수의 본적을 살펴봤지만, 역시 예상했던대로 그가 찾는 인물은 없었다. 지금까지 조사한 대상 중에 동찬이 찾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사실 제대로 가려낼 방법은 없었다. 오남수가 25년 전에 다른 집에 양자로 입적됐다면 호적도 함께 옮겨갔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이 남매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방법은 필요가 없게됐다.

 

  동찬은 컴퓨터를 경찰청 전산자료실 메인서버에 연결했다. 모두들 퇴근했을 시간이었다. 역시 이런 시간대엔 언제나 연결이 빨랐다. 다이얼톤이 울리고 신호음이 가고 메인서버의 첫화면이 컴퓨터 모니터에 떴다.

 

  인물 검색란에 들어갔다. 검색메뉴 중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차례대로 입력시켰다. 청량리경찰서에서 받아온 손중선의 주민등록번호였다.

  '성명 손중선, 주민등록번호 19680717-1069219'

 

  컴퓨터가 검색작업을 시작했다. 잠시 후 내용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손중선 1968717일생. 주소,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호주, 세대주 손중선 본인.'

 

  주민등록상엔 그가 호주이자 세대주로 올라가 있었다. 본적열람 아이콘을 찾아 클릭했다. 잠시후 본적 조회내용이 올라왔다.

  '손중선 1968717일생. 본적,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호주 본인, 전 호주와의 관계, 부 손호진, 모 최양선, 1986819일 부 손호진의 사망으로 인하여 본호적을 편제......'

 

  동찬은 내용을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본적지는 서울, 호주는 손중선...... 아버지의 사망으로 손중선이 호주로 올라갔고......"

  차례대로 내용을 읽어나가던 동찬의 눈이 중간쯤에서 고정됐다. 그는 바로 이걸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만월리 134 번지에서 출생부 서기 일구육팔년 칠월 삼십일 신고.'

 

  동찬은 다시 자세히 읽어봤다. 손중선의 출생지는 홍천군 두촌면이었다. 정박사의 고향 홍천. 그가 고향에 두고온 옛 애인 오혜진. 그리고 어렸을 적 양자로 간 그녀의 남동생 오남수. 공교롭게도 손중선의 출생지가 이들과의 연관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 수 있을까? 우연치고는 너무도 딱 들어맞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손중선과 오남수를 동일인으로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확실한 증거라고 말하기는 일렀다.

 

  동찬은 인쇄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계를 올려다 봤다.

  저녁 9. 지금 출발한다면 홍천까지 자정 안에는 도착할 수 있다. 우선 밤사이 현지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움직여 조사를 하면 다음날 2시에 시작되는 태산의 발표회 시간까지는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동찬은 달력에서 다시 한 번 날짜를 확인했다. 내일이 37일이니까 발표회 날짜가 맞다.

 

  동찬은 갑자기 바빠졌다. 간단한 세면도구와 속옷을 출장가방에 챙겨넣고 옷을 입었다. 프린트 된 용지를 챙겨 노트북 컴퓨터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가방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출발시켰다.

 

  서울을 빠져나가 경춘국도를 달리면서 동찬은 정일준 박사와 오혜진, 그리고 손중선의 관계를 사건과 연결시켜 생각해보았다. 국내 최고의 컴퓨터 계통의 권위자 정일준 박사. 그의 옛날 애인 오혜진. 그녀의 남동생 오남수. 그리고 선천성 소아마비로 태어난 오혜진의 딸 주희.

 

  그러고 보니 그 아이가 지금 열두 살이면, 아이가 태어날 당시엔 정박사와 오혜진이 한참 열애에 빠져있을 때였거나 헤어지고 난 직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희는 정박사의 아이일 확률이 높다. 어쩌면 정박사는 주희가 자신의 분신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박사 일기 어느 구석에도 주희에 관한 얘기는 쓰여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정박사 일기에는 오혜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단비가 꼭 닮았다고 써 있었다. 그렇다면 이단비와 생김새가 비슷한 손중선과 주희는 오혜진과 닮았다는 얘기가 되고, 결국 이들은 피가 섞인 혈육이 분명했다.

 

 

  동찬은 공교롭게도 이단비의 얼굴에서 힌트를 얻어 얼굴이 닮은 세 사람의 혈육관계까지 유추하게 됐다. 이것이 제대로 연결된 그들의 관계라면 과연 정박사는 누구에 의해, 왜 죽음을 당해야 했을까? 주희가 고아원에 맡겨져 있다면 오혜진은 아이를 낳고 난 뒤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가?

 

  문제 해결의 열쇠는 수석연구원 손중선이 정박사의 옛애인 오혜진의 동생 오남수인가를 확인하는 것에 달려있다. 정박사 친구들이 그랬던가? 정박사가 그토록 사랑하던 오혜진을 배반하고 황미주의 돈을 택했다고. 그들의 12년 전은 어땠을까? 동찬은 지금 12년 전으로 돌아가 그들을 만나기 위해 타임머신에 몸을 실은 기분이었다. 아니, 오남수가 입양되던 해가 74년도라면 25년 전이겠지.

 

  11시 반쯤 동찬은 홍천군 경계선으로 진입했다. 늦은 시간에도 손님을 받는 여관을 찾기 위해 군청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대부분의 여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동찬은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렵게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동찬은 주인여자가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지방의 여관은 허름했다. 현상유지를 하기에도 빠듯한 시골여관에 오랜 세월동안 쌓여온 퀴퀴한 냄새가 여관 곳곳에 배어있었다. 그러나 동찬은 오랜만에 맡아보는 시골냄새가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동찬은 샤워를 마치고 그동안 수사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박사 컴퓨터에서 발견한 일기도 내용을 요약해 정리했다. 사건 발생일부터 오늘까지 수사의 흐름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도 이미 전화를 걸어 정박사와의 화상통신 내용을 확인했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

 

  저녁 10시 반. 늦은 시간임에도 청량리 경찰서 형사과는 아주 분주했다. 여전히 형사들은 돌아가며 취조실을 들락거렸다. 그러나 손중선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손중선 보다 형사들이 더 지친 표정들이었다.

 

  취조에 나서지 않고 있는 정형사만 자기 자리에서 내일 개최될 태산의 발표회에 대해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반장과 두 형사가 형사과 사무실에 모여앉아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조형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정말 질긴 놈인데요. 이 정도 증거를 대면 불어야 되는거 아니예요?"

  "아니, 우리가 가진 증거물이라는 게 너무 약해."

  "약하다니요? 사건 당일날 손중선이가 현장에 있었고, 여기 태산과 거래한 흔적도 있고, 그리고 또 수사망을 피해 달아날 계획까지...... 모두 그가 살인범이라는 완벽한 증거가 아니고 뭡니까?"

  조형사가 오른 손으로 통장을 흔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억지로 꿰맞추면야 그렇게 시나리오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의 섣부른 추리에 불과해. 결정적으로 그가 현장에서 살인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아직은 없어.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가 태산에 CD를 넘겨주지 않았다면 그를 범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 않겠어?"

  "누가 CD를 유출시켰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 아닙니까?

  양형사가 말했다.

 

  "모르지. 제보자의 얘기론 용산모임에 발신인도 없이 CD가 배달됐다니까. 하지만 정황으로 봤을 때 내부인의 소행일거라 생각하는데. 누가 감히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경비가 삼엄한 연구소까지 들어가 프로그램을 빼냈겠으며, 더욱이 그 어렵게 빼낸 프로그램을 아무런 이득도 취하지 않고 용산모임 같은 시민단체에 넘겼겠느냐 말야."

 

  반장의 대답에 양형사가 한 마디를 더했다.

  "그러니까 손중선의 소행일 가능성이 많은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그것도 역시 알아낼 방법이 없잖아."

 

  조형사가 참다못해 그들의 대화중에 끼여들었다.

  "태산 기획실 놈들을 잡아다 족치면 안될까요?"

  "무슨 명목으로 그들을 잡아와?"

  "......"

  조형사는 반장이 강하게 반문하자 대답을 못했다.

 

  "일단 그들이 CD를 탈취해갔다는 건 우리 추측일 뿐이고, 손중선을 납치했었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부인하는데 우리로선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잖아."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자기 자리에 앉아있던 정형사가 벨이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들었다.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에 형사들은 모두 예사롭지 않았던지 대화를 멈추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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