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WRITERJANG

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8회> - 프로젝트 개발 주체에 대한 진실

writerjang 2023. 2. 14. 02:40

  두촌면엔 오혜진의 동생 오남수의 호적원본이 없었다. 아니 손중선의 주민등록번호로 오남수의 호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두촌면은 손중선이 출생한 곳이다. 오남수와 손중선이 동일 인물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오남수의 호적원본을 찾아내 손중선의 주민등록번호와 대조해 봐야 했다.

 

  동찬은 두촌면 면사무소를 떠나 홍천읍 읍사무소로 왔다. 홍천읍은 정박사와 오혜진이 만나 사랑을 나누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동찬이 찾으려는 오남수의 호적원본은 없었다. 이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시 까지는 불과 4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읍사무소 직원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동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후 동찬은 난감해하던 표정을 거두고는 직원에게 말했다.

  "그럼 제가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볼게요."

  "? 아 네. 그럼 그러세요. 전 이만 제 자리로 가보겠습니다."

  직원이 손을 들었다. 자기 업무를 봐야한다는 이유였다. 직원이 서류보관실을 떠나자 동찬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만일 여기서 찾지 못하면 나머지 여덟 군데 면사무소를 전부 뒤져야 할 상황이었다. 다 돌아볼 충분한 여유가 동찬에겐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조그만 읍에도 오랜 세월 쌓인 호적원본의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다른 지역도 역시 마찬가지일게 분명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오늘 하루종일이라도 투자할 수 있겠지만 발표회엔 꼭 가봐야한다. 동찬은 빨리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궁리했다. 그러나 쉽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만월리 134 번지......'

  손중선의 출생지였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두촌면과 마찬가지로 이곳 홍천읍에도 오남수의 기록은 없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오남수의 가족이 홍천읍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마을인데 지금으로선 그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때 동찬은 정박사 컴퓨터에 쓰여져 있던 일기가 문득 생각났다. 노트북컴퓨터 케이스에 넣어둔 자료를 꺼냈다. 오혜진에 대한 얘기로 가득찬 일기 내용 속에서 뭔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기를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내려갔다. 동찬의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일기 어느 부분에선가 동찬의 시선이 고정됐다. 그 때 동찬은 쾌재를 올렸다.

  '그래 바로 이거야!'

 

  동찬이 읽은 내용은 바로 오혜진이 태어난 마을에 대한 묘사가 쓰여져 있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김에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시냇물이 흐르고 신록이 우거진 숲속의 마을. 오대산의 정기가 곳곳에 배어 흐르고 있는 곳. 옛날엔 고작 10가구도 살지 않았다던 마을이 이젠 꽤 번창했다. 그녀가 태어난 이곳은 그녀 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구나......'

 

  오혜진의 출생지에서 찾는다면 오남수의 입양전 기록이 있을 수도 있었다.

  동찬은 자료실에서 나와 호적담당 직원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동찬이 직원에게 물었다.

  "홍천에 오대산 자락이 이어지는 마을이 있나요?"

  "오대산이요......?"

  ", 확실하진 않지만 그곳이 제가 찾는 사람의 본적지일 수도 있어요."

  "오대산 입구는 내면 쪽에 있어요. 거긴 지금 아주 유명한 곳인데......"

  ", 고마워요."

  동찬은 대답을 하자마자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내면을 향해 차를 달렸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내면 면사무소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면사무소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낡은 호적원본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10시까지는 불과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동찬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칠 여유도 없이 한참동안 정신없이 호적부를 뒤지더니 마침내 두툼한 호적 뭉치 하나를 찾아냈다.

 

  비닐 커버 안에는 두 장의 낡은 호적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앞의 호적에는 신남숙이 호주였고, 그녀가 사망한 뒤에 재편된 호적에는 오혜진이 호주로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뒤의 호적에는 혼자 남은 그녀의 이름마저도 가새표가 그어져 있었다.

 

  두 장을 합치면 이렇게 정리된다.

  '본적, 강원도 홍천군 내면 월산리 8번지...... 호주 신남숙 1940514일 출생부....., 198566일 사망으로 인하여...... 자 오혜진 1963125일 출생, 1988228일 사망, 자 오남수 1968717일 출생, 1974415일 이적.........'

 

  오혜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망일이 1988228일로 기록되어 있었다. 정박사가 살해당한 날짜도 228일이었다. 이건 우연일 수가 없었다. 동찬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남수의 생년월일도 손중선의 그것과 똑 같았고 일곱 살 때 입양을 떠난 것도 딱 들어맞았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만 했다.

 

 

 

  태산그룹 대강당은 정재계 인사들과 컴퓨터 관련자, 신문방송의 보도진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정확하게 오후 2시가 되자 발표회가 시작됐고 강당 안을 가득메운 참석자들은 세기적인 발표회에 집중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사회자의 멘트로 시작된 발표회는 먼저 한회장의 내빈에 대한 인사말로 막이 올랐다. 한회장은 그 특유의 뻔뻔스런 얼굴을 하고 참석자들을 향해 자신만만한 어투로 태산그룹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태산이 아니면 누가 이 과업을 이뤄내겠냐는 게 인사말의 요점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발표회가 시작됐다. 사회자는 권남우 박사를 발표자로 소개했다. 실내에 불이 모두 꺼지고 조명이 무대 위 주최측 자리에 앉아있는 권박사에게로 모아졌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됐다.

 

  조명이 자신에게 비추자 권박사는 잠시 앉아 숨을 고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쪽으로 걸어나갔다. 조명이 그를 따라 이동했다. 동시에 강당 연단 뒤편에서 흰색 스크린이 내려왔다. 강당 한 가운데 마련된 탁자 위에는 환등기의 불빛이 번쩍이며 권박사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권박사가 서 있는 단상 옆에는 시범을 하기 위한 통신시스템 프로그램이 놓여져 있었다.

 

  이제 권박사의 인사를 시작으로 태산의 역사적인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순서가 이어지게 된다. 권박사의 입에서 말문이 터지길 기다리며 장내는 적막이 흘렀다.

  권박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불을 켜주십시오."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였다. 한회장이나 기획실 곽부장은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 때 강당안에 불이 환하게 켜졌고 반대로 조명은 사라졌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태산그룹 컴퓨터시스템 연구센터 본부장 권남우입니다. 저는 오늘 어려운 결정 하나를 했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말에 한회장과 곽부장의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권박사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연단 위의 그에게로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저는 그동안 초고속정보통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온 정열을 불태웠습니다. 물론 태산그룹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지금부터는 나라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

 

  권박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터져나오자 한회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곽부장은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좌중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저는 이번 프로그램 개발에 실패했습니다. 오늘 발표하려고 하는 이 프로그램은 저희가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권박사는 CD 한 장을 꺼내 오른 손으로 치켜들며 말했다.

 

  좌중은 이제 흥분의 도가니로 번져가고 있었다. 그 때 한쪽에서 질문이 터져나왔다. 신문사 기자였다.

  "그럼 그 프로그램은 어디서 만든겁니까?"

  "바로 수성그룹 연구소입니다."

  "그걸 어떻게 여기서 가지고 있습니까?

  "태산의 기획실은 본래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 때 한회장이 입으로 뭔가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해 연단 뒤 문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곳엔 이미 노반장과 형사들이 서 있었고 걸어나오는 한회장에게 반장이 말했다.

  "한태산 회장! 함께 가셔야겠소!"

  반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형사와 정복 경찰 한 명이 그의 양팔을 붙들어 끌고나갔다. 끌려가는 한회장은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양형사는 정복 경찰 한 명과 함께 반대편 문쪽으로 뛰어 달아나는 곽부장을 복도에서 붙들었다.

 

  한편, 동찬과 정형사는 강당 옆쪽 통로에 서서 연단에서 좌중 앞에 고백하고 있는 권남우 박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정형사가 동찬에게 말했다.

  "역시 정박사 친구가 맞긴 맞는 모양이예요."

  "그렇죠? 과학자의 양심이란게 바로 저런건가봐요."

  "저는 권남우박사를 믿었어요."

  "그래요. 이번 건은 정형사가 애쓴 결과예요."

  동찬이 때아닌 칭찬을 하자 정형사의 볼이 붉어졌다.

  "! 이제 우린 수성 연구소로 가야겠죠?"

  "." (계속)

포에버 21 <59회>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