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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59회> - CD 복사과정에서 드러난 습관

writerjang 2023. 2. 14. 02:54

26: 미끼

 

  손중선이 연구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초췌한 얼굴을 하고 정박사 연구실로 들어온 그를 맞은 사람은 동찬과 정형사였다. 동찬이 그에게 먼저 말했다.

  "이렇게 오라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니, 뭐 별말씀을......"

  손중선이 의아한 눈빛으로 동찬과 정형사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런데 저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가......?"

  ", 다름아니라 '포에버 21'을 한 부 복사해야할 일이 생겼는데, 저희가 임의로 하기는 좀 뭣해서요. 지금 CD에 좀 담아주실 수 있겠어요? 좀 급한데."

  동찬은 말을 하며 공CD 한 장을 손중선에게 내밀었다. 손중선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길로 동찬을 바라보며 CD를 받았다.

  "직접 받아가셔도 되는데......"

  "아니요, 그럴 순 없죠. 본래 팀장이 없으면 수석연구원이 책임자 아닙니까? 그래서 박사님께 부탁하는 거예요. 빨리 좀 부탁합니다."

  "이건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젠 쓸모가 없을텐데......"

  손중선이 주저하며 계속 말을 꺼내 시간을 끌었다.

 

  "프로그램을 사용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수사에 참고자료로 보관하려고 하는 겁니다."

  "네에......"

  그래도 손중선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컴퓨터를 켜고 CD를 라이터기에 넣었다. 프로그램을 불러내 화면에 띄웠다. 이어 메뉴에서 '쓰기' 아이콘을 눌렀다. 컴퓨터를 만지는 그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컴퓨터가 이름표를 입력할 것을 요구했다. 손중선은 빠른 손동작으로 자판의 영문 S 소문자를 세 번 연달아 쳤다. 이름표에는 'sss'라고 찍혔다. 이어 그는 실행명령을 내렸다.

 

  손중선이 고개를 들고 동찬을 쳐다봤다. 동찬도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손중선이 말했다.

  "이제 30분쯤 뒤에 CD만 꺼내가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전 이제 가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잠깐만요!"

  동찬이 손중선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 얘기 좀 합시다."

  의아한 표정으로 동찬을 바라보며 엉거주춤 되돌아 오는 손중선의 모습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무슨......?"

 

 

  동찬이 그런 그에게 컴퓨터 옆에 의자를 갖다 놓으며 앉으라고 권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정형사는 곁에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중선씨,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으세요."

  동찬이 갑자기 박사라는 호칭을 쏙 빼고 자기 이름을 부르자 손중선은 심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지금 두 장의 CD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 복사되고 있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세 장이죠. 여기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궁금하죠?"

  "그게......"

  ", 그럼 이제부터 여기에 뭐가 담겨있는지 설명을 하죠. 이 첫 번째 것은 당신도 알겠지만 용산모임이 보관하고 있던 '포에버 21' 원본 CD예요. 누군가 이 컴퓨터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에 복사해 보낸 거지요."

  동찬은 컴퓨터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말했다. 손중선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러나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썼다.

 

  "그게 어떻게 된거죠?"

  "잘 모르시나보네요. 여기 수성그룹 연구소 연구원들 중 한 명이 정박사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전에, 그러니까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전날 이 CD를 만들어 용산모임에 발신인이 없는 우편으로 보낸거죠."

  "그건 말도 안돼요. 교수님이 안계시면 이 연구실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돼있어요. 열쇠도 교수님만 가지고 계시고, 행정실에 있는 마스터키는 절대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아요."

  "알고 있어요. 나는 범인이 이 연구실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하진 않았어요."

 

  손중선은 물론 정형사도 동찬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범인은 이 연구소 내부 인트라넷을 사용해 이 연구실엔 들어오지 않고도 정박사 컴퓨터에 있는 프로그램을 불러내 복사를 할 수 있었어요."

  "......"

  손중선은 말이 없었다.

 

  "사건 전날 정박사는 프로그램을 완성했고, 연구원들과 함께 퇴근하는 중에 정문에서 연구원 한 명이 뭔가를 두고 왔다며 다시 연구동으로 돌아갔어요. 그는 정박사 연구실, 즉 이방엔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정보통신 연구팀 방에서 작업을 했어요."

 

  손중선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 반문했다.

  "그날 다시 연구팀 방으로 돌아온 건 바로 전데, 그럼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다시 방으로 돌아간 이유가 뭐였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깜빡 잊고 놓고간 제 수첩을 가지러 갔던 거였어요."

  "그래요? 그런데 시간이 30분이 넘게 걸렸나요? 당일 정문에서 근무한 경비병이 그 날의 상황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던데."

  "믿지 않으시겠지만 전 그 방으로 와서 수첩을 찾아 가방에 넣고 난 뒤 이 연구소도 이젠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자리에 앉아서 지난 날을 회상하느라 시간이 걸렸던 겁니다. 곧 유학일정이 잡혀 있었으니까요. 그동안 연구했던 파일도 들쳐보고."

  "좋아요.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여기 이 CD는 당신이 만든 작품이라는 증거가 있어요."

 

  그 때 복사작업이 끝나고 종료 메시지가 컴퓨터 화면에 떴다. 동찬이 계속 말을 이었다.

  "! 이제 왜 이게 당신이 복사한 건지 증명을 해보도록 하지요."

  동찬은 지금 막 복사를 끝낸 CD를 꺼내 CD드라이브에 넣었다. 컴퓨터 마우스를 오른손으로 잡고 내컴퓨터 아이콘을 클릭했다. D드라이브에서 등록정보를 불러냈다.

 

  ", 잘봐요. 여기 이름표에 영어 알파벳 소문자 's' 가 세 개, 'sss'가 새겨져 있지요? 그럼 이번엔 용산모임에 보내졌던 원본 CD에 기록된 등록정보를 봅시다."

 

  동찬은 CD를 바꿔 넣었다.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등록정보를 찾아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이름표엔 'sss'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여기 CD 등록정보의 이름표를 잘 봐요. 사람들은 대부분 프로그램을 복사하거나 컴퓨터에 인스톨시킬 때 이름표에 제목을 써넣기 보다는 특정한 영문자를 한 번이나 두 번 연달아 입력시키는 습관이 있어요. 아마 대부분은 영문자 a를 한 번이나 두 번 입력하지요. 그런데 특이하게도 당신은 이름표에 'sss'를 타이핑하는 습관이 있어요. 이 세상에 영문자 s를 세번씩이나 입력시키는 사람은 아마 당신 말고는 없을 거예요. 그건 당신이 남들과 차별성을 두려는 생각에서 오래전부터 습관을 들여온 게 아닌가 하는데. 어쨌든 방금 전에도 그랬지만 사건발생 전에 '포에버 21'을 복사할 때도 당신은 이 'sss'를 입력했어요."

 

  손중선은 동찬이 체계적으로 증거를 대가며 얘기하자 변명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손중선은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반론했다.

  "좋아요, 그건 제가 부인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건 태산에서 섭외를 해왔기 때문에 갈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놓고 결국 양심을 팔 수 없어 용산모임에 보내게 된 겁니다."

  "알고 있어요. 그게 바로 과학자의 마지막 양심의 발로였겠죠."

 

  동찬이 자기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알고 손중선은 의기양양해서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것도 죄가 된다면 제가 벌을 달게 받겠어요."

  "아니요, 그것까지 벌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왜냐면 이제부턴 다른 증거물로 당신이 저지른 행위를 증명해보도록 할테니까요."

 

  손중선은 동찬의 확신에 찬 말투에 다시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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