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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포에버 21

포에버 21 <마지막회> - CD 원본의 행방과 살인사건의 종료

writerjang 2023. 2. 14. 03:09

  "당신은 아주 오랫동안 정박사를 노렸왔어요. 무려 12년 동안이나."

  동찬이 옛날 일을 같이 겪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회상하듯 얘기했다.

 

  "그러던 중 이왕이면 정박사가 가장 큰 성취감을 느낄 때 세상에서 없애버리자고 결심하고 프로그램이 완성되자마자 당신은 계획을 실행에 옮겼지.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침투시킨 게 바로 1단계 작업이었고. 정박사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즐기려했던 거였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박사를 살해할 좋은 기회를 얻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지."

 

  동찬이 이젠 손중선을 범인으로 단정짓고 있는 듯 반말조로 일관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억지일 뿐이예요."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CD를 관람할 때가 됐군."

 

  동찬이 CD를 컴퓨터에 넣었다.

  "이게 뭔지 알아보겠소?"

  "......"

  "바로 이 컴퓨터의 화상통신 프로그램에 들어있는 파일이지. 파일의 내용은 정박사가 살해되던 날 화상통신을 하고 있는 장면이고. 화면은 바이러스 영향 때문에 거의 안 보이지만 등록정보에는 정박사가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화상통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시간이 기록돼 있더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 상관이 아주 많지. 당신은 컴퓨터에 살해장면이 자동으로 저장된 걸 알고 범행 후 파일을 삭제했지만 백파일은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지. 살인을 저지른 후엔 누구나 그렇게 경황이 없게 마련이야."

  "저렇게 분명치도 않은 화질을 가지고 어떻게 저를 범인으로 단정하실 수 있죠?"

  손중선이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동찬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물론 화질도 나쁘고 또 범인이 복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 분간이 잘 안가는 게 사실이지. 그런데 당신은 정박사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만 생각하고 상대편의 컴퓨터는 미처 생각을 못했어. 그래서 내가 그쪽에 저장된 생생한 화면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그 때 반장이 노랑머리의 외국인과 함께 입장했고 조형사는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저기 오시는군."

  손중선이 고개를 돌려 출입구로 막 들어오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 이 분이 누군지 내가 소개하지."

  동찬이 노랑머리의 외국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손중선을 향해 말했다.

  "이 분은 정박사 유학시절의 대학 친구이자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공학팀 연구원으로 계시는 스텔스 스필버그 박사님이지. 정박사는 살해 당시 혼자 힘으로 바이러스를 해결하지 못하자 이 양반한테 통신을 접속해 구원을 요청하고 있었어. 그 때 당신이 나타난거지. 당신 아주 미남으로 나왔던데?"

 

  손중선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분이 가지고 온 화상통신 장면을 감상하실까?"

  동찬이 외국인에게 유창한 영어로 뭐라고 말하자 그는 가방에서 CD 한 장을 꺼내 동찬에게 넘겨줬다. 동찬이 CD를 받아들고 손중선을 향해 흔들며 말했다.

 

  "이게 바로 이번 사건을 속시원하게 풀어줄 마지막 작품이지."

  동찬은 컴퓨터에 CD를 넣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CD 돌아가는 소리가 드라이브에서 들렸다. 그 때 손중선이 고개를 숙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외마디 절규를 했다.

  "그만, 그만 하세요......! 내가 그랬어요. 이제 그만 하세요."

  손중선이 범행을 시인했다.

 

  "손중선, 아니 오남수! 당신 본명은 오남수였어. 정박사의 옛 애인 오혜진의 동생이지. 그리고 주희는 오혜진과 정박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당신은 아이를 낳다 죽은 누이와 불구로 태어난 조카를 보면서 복수의 칼을 갈았지. 만약 정박사가 누이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그런 불행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

  손중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찬이 물었다.

  "그런데 왜 살해 날짜를 오혜진이 사망한 날, 그러니까 조카 주희의 생일이 되겠지, 왜 하필 그 날로 정했지?

  "다 말씀드리죠. 사실 전 그 누구보다 교수님을 좋아했습니다. 누나가 사랑했던 사람이라서라기 보다는, 복수를 위해 접근했던 그에게서 남자인 나로서도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매료되어 갔어요. 그리고 그의 탁월한 재능도 아까웠죠. 단순한 복수심을 키워오던 난 내심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망설였어요. 그런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매력에 빠져들수록 나는 누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를 하루빨리 누나 곁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갔죠. 그래서 결심한 날이 바로 누나의 사망일, 주희의 생일날이었어요.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꼭 만나, 함께 나누라는 뜻에서 같은 날로 계획했던거예요. 마침 그 전날 프로그램이 완성됐고, 바이러스를 이용해 교수님을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두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라도 꼭 만나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어요."

 

  손중선의 얘기를 들으면서 형사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기가 막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이들의 사랑과 복수가 너무도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장이 형사들에게 명령했다.

  ", 이제 가지!"

  "."

 

  조형사와 양형사가 손중선에게 달려들어 양팔을 붙들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끌려가는 범인의 초라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던 동찬은 외국인 박사를 소파로 이끌고 가서 마주 앉았다. 그 광경을 반장과 정형사가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뭔가 쑥덕거리며 흥정을 하는 눈치였다.

 

  이윽고 동찬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고는 외국인 박사에게 만원짜리 몇 장을 뽑아 건네줬다. 돈을 받자마자 외국인 박사는 동찬에게 인사를 하고 급히 밖으로 사라졌다.

 

  정형사가 희안한 광경에 영문을 몰라 동찬에게 따져물었다.

  "먼데서 온 분을 그렇게 대접해도 괜찮나요?"

  "저 사람은 먼데서 온 사람이 아니예요. 지금은 여기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정형사가 동찬의 태도를 나무라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은 엑스트라예요. 이태원 근처에 살고 있는 미국인이죠."

  "그래요? 그런데도 손중선이 속아넘어가네요?"

  "그럼요. 알아봤더니 손중선은 순전히 국내에서만 공부했더라구요. 그래서 스필버그 박사 얼굴을 모를 거라고 판단해 이런 연극을 연출한 거예요. 얼굴만 비치면 되는 걸 바쁜 사람을 오라가라 하기가 좀 곤란해서요."

  "그러셨군요. 그럼 그 CD도 가짜......?"

  "물론이죠. 이건 그냥 게임 CD예요."

  동찬이 말을 하면서 멋쩍은지 눈을 징긋했다. 정형사가 동찬의 재치에 감탄하는 눈치였다.

 

  동찬에게 정형사가 물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건 원본 CD를 어디서 찾아내셨냐는 거예요."

  "그거요? 용산모임 김성운 사무국장한테서요. 태산에서 탈취해간 CD는 복사본이었어요."

  "역시 그 사람이 원본을 가지고 있었군요?"

  "맞아요. 낌새가 이상해 김성운일 족쳤더니 쉽게 내주던걸요?"

  "네에......"

 

  이번엔 반장이 동찬에게 물었다.

  "그런데 손중선이 정박사 옛애인의 동생이란 건 어떻게 알게 된겁니까?"

  "그거요......? 그러고 보니 정박사는 애인도 많네?"

  동찬이 부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박사 내연의 여인인 이단비를 처음 봤을 때 어디선가 낯이 익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손중선 하고 닮은 거였어요. 그리고 고아원에 있는 주희도 손중선과 닮았고. 정박사의 일기에 이단비를 오혜진으로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다고 쓰여있었거든요. 그래서 연결시켜보니까 손중선과 오혜진, 그리고 주희가 닮은꼴이라는 데서 힌트를 좀 얻게됐죠, ."

  ", 그렇군요."

 

  정형사는 이제 동찬을 존경스런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반장이 정형사에게 말을 꺼냈다. 명령이 아닌 부탁조로.

  "정형사! 내일 아침엔 김밥을 좀 싸오는 게 어떨까? 나도 마누라쟁이한테 음식 좀 준비하라고 해야겠어."

  ", 그럴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말고 동찬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데없이 김밥에 음식은 또 뭔가? 동찬은 궁금한 건 그냥 참고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동찬이 정형사에게 물었다.

  "이 팀은 사건을 해결하면 어디 야외로 소풍이라도 가나요?"

 

  동찬의 눈치없는 질문에 정형사가 피식 웃으며 답답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서경감님은 어떻게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천사의 집을 방문하자는 얘기죠."

  "아하, 그래요? 나도 끼워주는 거죠?"

  "물론이죠."

  정형사 대신 옆에 있던 반장이 대답했다.

 

  동찬이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정형사를 힐끔 돌아다 봤다. 그런데 이번엔 정형사가 뭔가 고민이 있는 듯 동찬에게 물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중에 궁금한 점이 또 한 가지 있어요."

  "그래요? 그건 또 뭔데요?"

  "태산그룹의 비리를 제보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요."

  "글쎄요, 다음에 저한테 술 한잔 사면 한 번 알아볼게요."

 

  옆에서 듣고 있던 반장이 동찬과 마주보며 정형사를 놀리듯 웃었다. 정형사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반장님, 우리 사건 쫑파티라도 하러 갈까요?"

  동찬이 반장에게 소주잔을 꺾는 시늉을 하며 청했다.

 

  "그럽시다."

  반장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급작스런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던 정형사에게 동찬이 한마디 던졌다.

  "거기 그러고 서 있으면 귀신나와요!"

  "어멋!"

  정형사가 화들짝 놀라 문 밖으로 한 걸음에 달아났다. 반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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