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WRITERJANG

소박한 글쓰기

2023/01/17 3

빛바랜 이력서 - 단편소설 -

후줄근하게 젖은 작업복 밑동을 꼭 쥐고 툴툴 털어냈다. 언뜻 보기엔 앞가슴에 들러붙은 먼지구뎅이를 털어내려는 행동으로 보였지만 정호의 의도는 딴 데 있었다. 두어 시간째 나르고 있는 한 컨테이너 분량의 박스를 퇴근 전까지 모조리 창고에 쟁여넣느라 온몸이 후끈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중국산 여행용 가방이 빼곡히 담긴 박스였다. 두 달 전에 선적돼 머나먼 뱃길을 달려온 컨테이너가 산페드로 부두에서 다른 회사 수입품에 엮여 쿼터 초과 시비로 싸잡아 걸려드는 바람에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발이 묶여 있었다. 오늘 간신히 빼내오긴 했는데 오후 네시쯤에야 겨우 풀려 이제사 창고까지 배달됐다고 한다. 물론 사장의 엄살섞인 넋두리를 귀동냥해서 알게된 정보였다. 사장은 부득이 퇴근시간이 늦어지더라도 몽땅 창고 깊숙이 쟁여넣..

단편 2023.01.17

포에버 21 <27회> - 피해자 지인 탐문 대상 권남우

"다시 한 번 자세히 생각해보세요! 본부장님이 그 프로그램이 완성됐다는 얘기 정도는 해줬을 것 같은데....... 그래야 발표회 일정을 비서실에서도 알고 준비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아니, 그런 얘긴 전혀 없었어요. 본부장님 일정은 제가 전부 알고 있는데 이번 만큼은 아무 말씀도 안해주셨어요. 이것 보세요. 확실해요." 비서는 말을 하면서 일정표를 내밀어 정형사에게 보여줬다. 그곳에도 3월 7일자에는 아무런 일정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기가 개발한 프로그램에 대한 발표회 날짜를 몰랐을 리도 없고 비서에게 일정을 얘기해 주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더욱이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라면 회사 내에선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는 얘긴데, 어째서 컴퓨터시스..

장편/포에버 21 2023.01.17

포에버 21 <26회> - 형사과로 걸려온 한통의 제보 전화

이제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컴퓨터를 끄려다 말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동찬은 윈도우 배경화면에서 아이콘 하나를 클릭했다. 오락프로그램이 실행됐다. 지뢰찾기. 그가 언제나 하루의 운수를 점치는 자기만의 방법이었다. 한 번에 풀어내면 운수가 아주 좋은 날, 두 번째에 풀면 보통, 세 번째는 그저 그런 날, 그리고 네 번째 이후는 무조건 악재가 겹치는 날이었다. 그런데 지뢰찾기 게임은 사실 서너 번째에도 풀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턱대고 찍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역시 한 번엔 풀지 못했다. 두 번, 세 번......... 결국 네 번째도 그대로 풀지 못하고 넘겼다. 지뢰찾기 만큼은 75초만에 풀어낸 신기록을 자랑하는 그였지만 오늘은 어째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장편/포에버 21 202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