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가의 창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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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글쓰기

장편/포에버 21 60

포에버 21 <24회> - 실마리를 던져준 괴한의 침입

"권박사는 일단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요. 곧 완성된 프로그램이 도착할거고 그때부턴 굽든지 삶든지 우리 고유의 상품으로 바꿔주기만 하면 되는 거요. 아니, 가공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내버려둬도 되요. 이름만 바꾸지 뭐." "......" 권박사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단지 그의 대담한 발상이 기막힐 뿐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분명 정일준 박사가 준비하던 '포에버 21'을 일컫는 게 분명한데. 그렇다면...... "뒷감당은 내가 알아서 할거요. 권박사는 아무 걱정 안해도 돼요. 프로그램을 개발하다보면 유사품이 나올수도 있고 또 처리방식이 똑같을 수도 있는 거지, 그것 가지고 트집잡는 놈이 있다면 그게 미친놈이지 뭐 별 수 있겠소?" 권박사는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하는 한회장을 바라보며 어처구니..

장편/포에버 21 2023.01.14

포에버 21 <23회>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동찬이 반장에게 말했다. "만약 컴퓨터 안에서 단서를 발견한다고 해도 좀 더 확실하게 수사를 하려면 역시 혐의가 있는 주변 인물들은 따로 각각 만나봐야 할 겁니다. 역할을 나눠서 만나보기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내일부터는 오늘 오후 회의때 얘기된 대로 형사들이 움직여줄 겁니다."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동찬이 먼저 반장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반장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8장: 음모 "야, 이 병신 새끼들아!, 이딴 일도 하나 제대로 못해, 응?" 곽부장은 CD를 케이스에 들어있는 통째로 바닥에 집어던졌다. 케이스 플라스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깨지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CD는 케이스에서 튕겨져 나와 한 쪽 구석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저, 그런 게 ..

장편/포에버 21 2023.01.14

포에버 21 <22회> - 조작된 살해 시간의 진실

반장과 조형사가 동시에 컴퓨터를 들여다봤다. 그러나 컴퓨터엔 단지 파일들만 나열되어 있을뿐 프로그램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조형사가 머쓱해져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괴한은 프로그램을 도난하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프로그램은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돼 쓸모없게 돼버렸잖습니까?" 반장이 컴퓨터 용어를 사용해 조리있게 물었다. 비록 기초적인 용어였지만 조형사는 반장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튀어나온 걸 본 적이 없었다. 조형사가 반장을 바라보며 놀라는 눈치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괴한은 이 프로그램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갔습니다. 그리고 또 그가 만약 돈으로 사주받은 도난범이라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든 말든 일단 물건만 가져다주면 일은 ..

장편/포에버 21 2023.01.14

포에버 21 <21회> - 간밤의 연구소 유린에 수사팀 비상

문이 열렸다. 복도에 설치된 녹색 비상등 불빛이 열려진 문틈을 비집고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경비원은 자세를 한껏 낮추고 안쪽으로 손전등을 한 번 휘익 돌려 비춰보았다. 손전등 불빛이 번쩍번쩍하며 연구실 안을 돌아 다니다말고 책상 위 컴퓨터 앞에서 멈췄다. 순간 잠수복은 '아차' 하고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후회했다. 컴퓨터 전원 내리는 걸 깜빡 한 것이다. 경비원은 문을 벌컥 밀어제치고 사주경계를 하며 안쪽으로 들어와선 딸깍, 하고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잠수복은 몸을 벽에 더욱 밀착시켰다. 천장에 붙은 형광등이 제각각 깜빡거리다가 일제히 불을 환하게 밝혔다. 실내는 대낮처럼 밝아졌다. 경비원은 눈이 부신지 잠시 머뭇거렸다. 경비원이 다시 고개를 돌려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직 잠수복의 사나이를 발견하지 ..

장편/포에버 21 2023.01.13

포에버 21 <20회> - 살인 현장에 침입한 잠수복

"먼저 조형사는 손중선이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도록 하지.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용의자네 마네 하지만 말고 구체적인 증거를 잡아오라구. 알리바이 뿐만 아니라 정박사와의 관계, 즉 연구소에서만이 아니라 사적인 관계까지도 캐보라구. 그리고 경비원이나 또 다른 야근자들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네." "정형사는 그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이제부턴 그 해컨가 뭔가 하는 걸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하구. 연구원들을 다시 한 번 만나보면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구 아까 여기 이 분 말씀을 꼭 참고하고. 잘 안될 것 같으면 같이 움직여도 되고. 괜찮겠죠?" 정형사에게 수사지시를 하다가 반장은 동찬에게 동의를 구했다. 반장은 동찬을 뭐라 불러야 할지 결정을 못한 듯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네, 물론이죠." "정형사 ..

장편/포에버 21 2023.01.12

포에버 21 <19회> - 특별 수사반의 역할 분담

동찬이 컴퓨터 얘기를 한참 하는 듯 하더니 얘기가 점점 누군가 프로그램을 망가뜨린 주범을 지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하자 드디어 반장이 질문의 포문을 열었다.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만, 방금 얘기하신 거로 봐서는 꼭 범인이 누군지, 아니 그 프로그램을 망쳐놓은 사람을 알고계신 것 같은데, 가만, 뭐라 그랬더라...... 아, 그 해커는 누구며, 그 사람이 이번 사건의 범인과는 어떤 관계로 연결지을 수 있다는 건가요?" "해커가 누군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같이 연구했던 연구원들, 같은 계통에 종사하는 정박사 친구들, 또는 정박사의 그 동안의 연구성과를 잘 알고 그 프로그램들을 아끼는 정박사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얘깁니다. 오늘 잠깐 동..

장편/포에버 21 2023.01.12

포에버 21 <18회> - 해커에 대해 좁혀지는 수사망

오늘도 어김없이 조형사에 대한 반장의 꾸지람이 시작됐다.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의식해선지 조형사가 평소와는 달리 그냥 고분고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조형사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대꾸를 했다. "네, 그건 내일 알아볼거구요, 제가 유력하다고 보는 건요, 그 친구가 퇴근하면서 왜 굳이 숙직실에 얼굴을 내밀었느냐는 점이예요. 일부러 얼굴도장이라도 찍으려고 한게 아니고 뭐냐구요. 알아봤더니, 그 경비원이 하는 말이, 평소엔 그 친구가 그랬던 기억이 별로 없다더라구요. 그리고 정박사 손목시계가 멈춘 시간이 1시 30분이란건 그 친구가 퇴근한 1시 5분하고 불과 25분 차인데, 만약에 그 친구가 1시쯤에 살해하고 시간을 30분 정도만 뒤로 돌렸다면 얘기가 맞아 떨어진다는 말이죠. 박사가 될 ..

장편/포에버 21 2023.01.12

포에버 21 <17회> - 경찰청 파견 수사관 공조수사 합류

오후 8시. 형사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반장이 정각에 형사과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반장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손에 조그만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쇼핑백을 자기 책상 밑에 내려놓고 난 뒤 반장은 회의실로 들어왔다. 수사회의가 시작됐다. 약 20여분 동안 각자가 조사한 내용을 브리핑했다. 모두의 조사내용을 다 듣고 나서 반장이 말을 꺼냈다. "다들 잘 들었고, 이제 조금 있으면 청에서 이번 사건에 투입된 사람이 올텐데 그 때 다시 자세하게 얘기하자고." "지금 온답니까?" 조형사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일단 이번 사건에 대한 공조수사에 대해 논의할 모양이야. 와봐야 알겠지만, 오늘 회의는 역할분담 때문인 것 같아." 반장의 얘기를 듣고 있는 형사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장편/포에버 21 2023.01.12

포에버 21 <16회> - 슬픔을 찾을 수 없는 영안실 분위기

반장은 곡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런 일을 당하셔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 곡을 할 때와는 달리 그녀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당돌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누구시죠?" "아, 이거 결례를 저질렀군요. 저희는 청량리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네....... 고생하시네요." 뭔가 불만이 섞인 말투였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불만인지 아니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기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반장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잠깐만 협조를 해주십시오." "네, 말씀하세요." "바깥양반에 대한 얘깁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했다거나, 누군가와 좋지 않은 일로 다투거나 한 적 혹시 없습니까?" "글쎄요....... 그 양반이 어디 누구와..

장편/포에버 21 2023.01.10

포에버 21 <15회> - 피해자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수사

인기척이 나자 손박사는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문쪽으로 돌려 힐끗 바라보더니 낯선 인물임을 발견하자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동찬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누구시죠?" 손박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 미안합니다. 경찰입니다. 손중선 박사시죠, 수석연구원으로 계시는?" 동찬은 먼저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물론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자기가 누군가에게 노출돼 있다고 생각하면 그 상대를 쉽게 대하진 못한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그럴듯한 논리였다.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힌 자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손박사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아, 예...... 그런데 오전에 이미 조사가 끝난 거로 알고 있는데........

장편/포에버 21 2023.01.10

포에버 21 <14회> -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돼버린 프로젝트

동찬이 소장실 문을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갔다. '꽝' 하고 문닫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바로 그때, 동찬은 미모의 아가씨와 문밖에서 마주쳤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맞닥뜨렸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시선이 순간 상대방의 눈동자에 고정됐다. 정형사는 사내가 화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오자 마치 자기가 남의 말을 엿듣다 들킨 사람처럼 당황스러웠다. 동찬은 자신의 흥분한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무안해졌다. 동찬이 먼저 정신을 수습했다. 그냥 모른 체 하고 가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미모였다. 노총각 동찬의 끼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동찬은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지금은 취재하기 어려울 거요. 소장은 지금 상태가 별로예요." "상관없어요." 정형사의 좀 쌀쌀맞은 대답이었다. 속으론, 벌써 기자들이 ..

장편/포에버 21 2023.01.10

포에버 21 <13회> - 21세기 정보통신 국가 경제발전 계획

소장이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요는 이겁니다. 정부는 2천년을 기점으로 3단계 발전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즉 정보통신분야의 활성화시기를 2천년 이후로 보고 이를 전후로 나눠 준비단계와 실행단계,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는 21세기엔 튼튼한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다는 발전단계를 계획했습니다. 벌써 시작됐지만 곧 정보통신의 세계적인 범람이 예견되고 이로인한 혼란도 예상됩니다. 이를 하나로 묶어낼 획기적인 프로그램이 절실한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정부의 생각은 이러한 정보통신의 범람을 역으로 활용해 국가발전의 호기로 삼자는 얘기죠." 소장의 장황설이 시작됐다. 동찬은 필요한 내용만 요약했다. "그럼 정부 지침서라든지 공문 같은 것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소장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장편/포에버 21 2023.01.10

포에버 21 <12회> - 살인사건 보다 더 중요한 국가 프로젝트

5장: 출동 동찬은 경찰청 주차장 한쪽 구석에 주차해 놓은 차를 가지러 갔다. 무려 2년 동안이나 그대로 세워놓았는데 시동이나 제대로 걸릴지 궁금했다. 역시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쪽은 그런데로 멀쩡했는데 중앙으로 노출된 쪽은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많았다. 다른 차들이 드나들면서 낸 상처가 분명했다. 그래도 2년 동안에 이 정도 상처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면서 원격시동 리모트컨트롤 1번 스위치를 눌렀다. '삑삑' 소리를 내면서 도어잠금장치가 풀렸다. 다행히도 배터리는 멀쩡한 모양이었다. 2번 시동스위치를 눌렀다. 트렁크를 열고 먼지떨이를 꺼내 들었다. 차 윗 부분부터 먼지를 털어나갔다. 앞 유리, 보닛, 운전석 쪽 창과 문짝을 순서대로 털어내면서 초읽기를 시작했다. "십, 구, 팔, 칠,..

장편/포에버 21 2023.01.09

포에버 21 <11회> - 외부인의 침입과 내부인의 범행 가능성

중국집 꼬마가 퇴장하는 것으로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제일 먼저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은 역시 반장이었다. "양형사, 아까 현장조사에 대해 뭐 할 말 있어?" "네, 저......." 양형사는 아직도 소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아니면 현장조사에서 별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해선지 대답을 주저했다. "없으면, 얘기를 종합해보지." "반장님, 저...... 자장면 다 붓겠는데요." 언제 먹거리로 관심사가 옮겨갔는지 거구는 참을성 없게도 반장의 심각함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금방 끝나니까 마저 얘기하고 먹자구." 조형사의 얼굴에 머쓱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늘 조사한 내용만 놓고 봤을 때 범인은 내부인일 확률이 높아. 굳이 외부에서 침입한 것처럼 흔적을 남기려고 어설프게 위장했다는 점 때문이지. 이..

장편/포에버 21 2023.01.08

포에버 21 <10회> - 사건현장 초동수사 후 첫번째 회의

"어떻게?" "책상 밑바닥엔 먼지가 조금 쌓여 있었는데 자국이 그 위로 나 있더군요. 오래전에 생긴 자국이라면 먼지가 덮어버렸겠죠." "그래? 그건 아주 민완답게 잘 본거야." 반장이 자신에게 민완이란 칭호를 붙여주자, 조형사는 기분이 퍽이나 좋았는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반장 앞이건 말건 아예 후배형사를 큰소리로 불러가며 명령까지 했다. "사진기로 촬영까지 해뒀어요. 양형사, 이따가 그 필름 뽑아와!" "네....." "그러면 자넨 그 자국을 보면 범인이 누군지도 알겠네?" 그런데 이건 웬 비아냥거림인가. 다시 반장의 반격이 시작된 것일까? "아니, 저......" "그래서 자네는 문제야. 하난 알고 둘은 모른다고." 다시 반장의 꾸지람이 시작됐다. "그 자국을 보면 범인은 환기통으로 침입한게 아니잖아...

장편/포에버 21 2023.01.08

포에버 21 <9회> - 연구소 비상 연락처는 경찰청 특수과

초동수사를 위해 현장에 출동했던 반장과 양형사, 조형사와 정형사가 각각 짝을 이뤄 두 대의 차량에 분승해 청량리경찰서로 이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살해현장에 사체를 그대로 남겨두고 철수하는 일은 경찰생활 십년 만에 처음보는 일이었다. 조형사는 차를 운전하면서 내내 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시라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 보려고 먼저 정형사에게 말을 꺼냈다. "정형사, 아까 그 소장 아는 사람이야?" "아니요, 개인적으론 모르지만 그 사람 원래 유명하잖아요.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고. 우리나라 물리학에서는 최고의 권위자예요." "정형산 모르는 게 없어." "아녜요, 그냥 텔레비전을 자주 보다보니까......." 양형사가 운전하는 차를 뒤따라 가다 조형사는 회기 전철역..

장편/포에버 21 2023.01.08

포에버 21 <8회> - 경찰청으로 복귀한 동찬의 첫 출근

같은 시각, 5호선 마포 지하철역 앞. 청바지와 면티, 그리고 오리털 파카 차림의 30대 초반의 사내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나와 느긋하게 인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엔 노트북 컴퓨터가 하나 달랑 들려 있었다. 이제 3월 1일. 이쯤 됐으면 날씨가 따뜻한 게 정상이 아닌가. 어제 공항을 빠져나올 땐 그래도 봄기운이 완연했는데 오늘은 추위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서초동 원룸 오피스텔을 나와 전철역까지 걸어가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몸이 지하의 푸근한 온기에 잠깐 녹는가 싶더니 마포역에서 내려 바깥으로 나오자 냉기가 엄습했다. 정오가 넘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도로 양편엔 눈이 쌓여 있었다. 곳곳에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지 인도를 걷는 행인들은 곡예를 하듯 넘어지지 않으려고 양팔을 젓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

장편/포에버 21 2023.01.08

포에버 21 <7회> - 갑작스런 현장 철수 지시에 당황한 강력반

조형사는 정형사에게 지문을 채취한 내용물을 받아 감식반 요원들에게 넘겼다. "나으리, 이거 빠짐없이 다 채취한거지?" 정형사가 '나으리'란 별명을 아주 싫어한다는 사실을 벌써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감식반 형사들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상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우리나라 여자 이름들은 본래 하나같이 비슷하지만 정형사 이름은 좀 특이했다. 그녀는 한글이름이 유행하기에 앞서 신세대에 어울리는 이름으로 지어준 부모들에게 언제나 고맙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리'라는 이름은 놀림감으로 사용되기에 충분한 어감을 가지고 있어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나으리'란 별명을 달고 다녔던 정형사는 어른이 되면 설마 점잖은 사람들이 그러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나를 입사하자마자 ..

장편/포에버 21 2023.01.07